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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규제 해제? 의무 다하지 않는 경영자들이 '킬러'

[인권의 바람] 윤석열의 킬러규제 해제는 '산재 킬러'들에 대한 면죄부

 
 

 

 

8월 25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따른 1심 판결과 검찰의 기소가 있었다. 전자는 만덕건설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판결이다. 후자는 SPC 계열사 공장에서 벌어진 제빵 제조과정에서의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기소다.

 

만덕건설 사고는 굴착기 주변에 안전 펜스 등을 설치하지 않아 주변에서 일하던 작업자가 사망한 사건임에도 재판부는 만덕건설 대표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해당 사고 이전에 중대재해가 없었고, 피해자의 과실이 있었으며, 유족들이 처벌을 원치 않아서'라고 감형 이유를 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이전과 같다. 당시 많은 재판부는 해당 이유를 들어 산재사망을 발생시킨 경영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이제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업무상과실치사 위반만이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인 상황인데도 재판 결과는 변함이 없다. 중대재해처벌법 6조에는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경우 징역과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경영책임자의 처벌'은 또 다시 유예됐다.

 

검찰의 '늦장기소'와 '원청 경영자 책임 빼기' 

 

재판부도 문제지만 검찰의 수사지연과 늦장기소, 무혐의 처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작년 검찰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건 278건 중에서 22건만 기소했다. 기소율이 10%도 되지 않는다. 검찰공화국임에도 검찰은 중대재해 경영자는 기소하지 않고 있다. 

 

8월 25일엔 SPC 계열사에서 일어난 산재사망에 대한 기소 결과가 10개월 만에 나왔다. SPL 평택 공장에서 소스배합을 하던 20대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이게 벌써 작년 10월의 일이다. 당시 SPC불매운동이 일어났을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센 사건이었음에도 검찰은 늦장기소 한 것이다. 

 

 

 

 

기소 결과는 어떤가. 검찰은 혼합기 내부에 손을 집어넣고 작업한 경우가 다수 확인됐고, 덮개가 개방된 채 가동했고, 사고위험이 높은데도 SPL 강동석 대표이사가 재발방지대책 수립과 이행, 안전·보건 의무 이행 여부 반기 1회 이상 점검, 관리 감독자 업무수행을 위한 조치 등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기소했다. 해당 사업장은 최근 3년간 유사한 기계끼임 사고가 12건이나 있었음에도 재발방지책을 수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은 원청경영자인 SPC는 빼고 기소했다. SPC는 삼립, 샤니, 파리바게뜨 등 한국에서 여러 제빵업체 등을 거느린 대기업이다. SPL도 SPC의 계열사다. 검찰은 "SPL은 별도의 법인으로서 대표이사가 안전보건 업무를 포함한 사업 전반에 관해 실질적·최종적 결정권을 행사하는 경영책임자"라며 "(SPC 허영인 회장은) SPL 사업을 대표하거나 안전보건 등 업무에 관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경영책임자로 보기 어려워 혐의없음 처분했다"고 밝혔다. 작년 사망사고 때 SPC 허영인 회장이 사과할 정도로 사업 전반에 대한 권한이 있는 사람은 SPC 원청 대표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SPC의 산하 계열사나 공장을 넘나들며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사업총괄의 권한을 갖고 있다. 최근 SPC 계열사에서 또 산재사망사고가 나 50대 노동자가 사망했는데도 원청을 무혐의처분한 것이다.

 

검찰이 재벌 대기업의 경영자를 불기소하거나 그들 혐의를 무혐의로 처리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서울동부지검은 'LG전자 에어컨 수리기사 추락사'와 관련해 LG전자 자회사인 하이엠솔루텍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분을 결정한 바 있다. 심지어 울산지검은 에스오일(S-Oil) 사건에서 에스오일 대표이사를 빼고 이민호 CSO(안전경영책임자)만 기소하기도 했다.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 전권을 위임받은 경영책임자'라는 억지 주장을 검찰이 수용한 것이다.

 

그동안 이런 주장을 한 기업들이 다수 있었으나, 22곳의 기업 모두 경영책임자(대표이사)를 기소한 것을 생각하면 확연히 다른 케이스다. 대검찰청의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서에도 "복수의 대표이사가 있는 경우 회사 내에서 직무, 책임과 권한 및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으로 최종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결국 '대기업이라서' 특별대우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대표이사가 에스오일의 '대주주인 외국기업이 선임한 외국인'이라는 점을 불기소 사유로 든 것은 더욱 황당하다. 대한민국 법은 속지주의를 원칙으로 하므로, 에스오일 대주주가 외국기업이라거나 대표이사가 외국인이라는 점이 면책의 사유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검찰의 불기소, 대기업 경영자 빼주기가 개별 지검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크레인 작업을 하다 사망한 동국제강의 산재사망사건에 대해서도 동국제강 포항공장장과 하청업체 창우이엠씨만 검찰로 송치됐다. 원청인 동국제강 장세욱대표이사는 빠졌다. 대검찰청의 지시에 지검이 따랐다고 한다. 대검찰청은 본인들이 직접 해설책자에 쓴 것과는 다르게. 대기업 원청의 책임을 빼도록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다. 

 

▲1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샤니 제빵공장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등 관계자들이 SPC 샤니 성남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 은폐 의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의 킬러규제 해제는 '산재 킬러' 면책방안 

 

검찰공화국인 한국사회에서 검찰이 기업주의 중대재해에 대해 불기소 면죄부를 주고 있다. 검찰이 정쟁사건 대하듯이 중대재해 사건도 제대로 수사하고 기소한다면 중대재해는 줄어들 것이다. 검찰공화국에서 검찰의 직무유기는 단순 유기가 아니라 의도된 것이기에 권한 남용에 가깝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4일 '킬러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산업단지 입지 규제, 외국인 노동자 수 제한 등을 완화하라고 지시했다. OECD 국가 중에서 산재 사망률이 가장 높은 현실임에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명안전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기업규제 완화 대상으로 지목한 화평법은 노동자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과도 직결된다. 화평법은 화학물질의 등록과 신고, 유해성과 위해성에 관한 심사와 평가, 유해화학물질 지정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법이다. 2013년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계기로 화학물질이 노동자나 시민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화평법이 제정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로 병에 걸리고 사망한 것으로 신고한 사람이 2021년 기준 7천 명이다. 사회적참사위원회가 구성될 정도로 피해규모가 큰 재난참사다. 시민들은 '집조차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막겠다'고 화평법을 만들었다. 이렇듯 정부가 말하는 '규제'는 노동자, 넘어서 시민의 안전과 생명과 직결된 것이 다수다. 정부가 말하는 킬러 규제란. 사실은 기업이 산업재해라는 ‘살인’을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이다. 킬러는 규제가 아니다.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영자들이 킬러다. 

 

최근 철근을 빠뜨리고 지은 자이 아파트, 철근이 콘크리트 밖으로 나온 캐슬 아파트까지 대기업이 시민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대기업의 안전의무에 대한 감시와 규제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시점에서 원청의 책임을 완화하겠다고 하는 것은 기업의 지지는 받을지언정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 윤석열의 킬러 규제 해제는 '산업재해 킬러', '시민재해 킬러'에게 면죄부를 주는 면책방안일 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와 시민재해가 기업의 범죄임을 명확히 한 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업주에 대한 불기소나 늦장기소, 그리고 솜방망이 처벌로 사회적 비판이 많았는데 정부는 이를 더 노골적으로 후퇴시키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 이전부터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구성해 법을 개악하려고 했다. 지난 5월 17일에 열린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 위원장은 강연회에서 원청 대표이사가 처벌 대상이 된 것에 대해 "대표이사라고 무조건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기업에 친화적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있는 TF가 내놓을 방안이 어떨지는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2022년 고용노동부의 발표로 산재사망자는 49명이나 늘어난 874명이다. 오송지하차도 참사처럼 시민재해도 늘고 있다. 중대재해에 대한 기소와 처벌이 되지 않고 있기에 산재가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기업주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어도 산재가 줄어들지 않으니 법이 필요없다며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을 떠들고 있다.

 

법대로 기소하고 법대로 처벌하면 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데 법이 소용없다는 전도된 평가를 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킬러규제 해제가 아니라 중대재해의 킬러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그래야 죽음의 행진을 멈출 수 있다.

 

▲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왼쪽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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