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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좋은 선생님 될 수 없을 것 같아” 숨진 대전 초등교사가 생전 남긴 글

대전교사노조, 숨진 교사가 직접 제보한 괴롭힘 사례 공개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대전 초등학교 교사의 발인이 거행된 9일 유가족들이 교사가 근무했던 학교 교실로 고인의 영정을 들고 들어서고 있다. 칠판에는 학생들이 적은 추모문구가 보이다. 2023.9.9 ⓒ뉴스1
지난 7일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대전 모 초등학교 교사 A씨가 생전 자신이 학부모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사례를 직접 제보했던 것으로 9일 확인됐다. 2019년 1학년 담임을 맡았던 A씨는 학생 생활지도를 하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이 과정에서 교사 생활에 무기력감을 느껴 지난 3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대전교사노동조합은 이날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A씨가 직접 제출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A씨가 2019년 1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당시 A씨 학급에서 4명의 학생이 A씨 지시에 불응하고, 같은 반 학생을 괴롭혔다. 이중 A씨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B학생 학부모의 경우, A씨의 생활지도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갈등이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A씨에 따르면 학기 초부터 B학생은 친구의 목을 팔로 조르거나 발로 차고, 꼬집는 등 친구들을 괴롭히는 행동을 이어갔다. B학생 학부모와 상담도 해봤지만, 학부모는 ‘아이가 문제가 있을 때는 따로 조용히 혼을 내던지, 엄마에게 문자로 알려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후에도 다른 학생을 때리는 등의 행동이 반복돼 A씨가 생활지도에 나섰다. 그러자 B학생의 학부모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지도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왜 모두가 보는 급식실에서 지도했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급식실에 누워서 버티는 B학생을 일으켜 지도한 일을 두고도 ‘억지로 아이의 몸에 손을 댔고, 전교생 앞에서 지도를 했다’며 불쾌해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B학생 학부모는 이를 아동학대 사건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B학생의 문제 행동에 학기 말에는 교장 선생님에게 지도를 부탁해야 하는 일까지 생겼다. 그러자 하루 뒤 교무실로 찾아온 B학생의 학부모는 A씨의 사과를 요구했다. A씨는 당시 함께 있던 교장·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도 지적했다.

이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A씨는 병가를 냈음에도 학부모는 국민신문고와 경찰에 A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교육청 장학사의 조사 결과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지만, 아동학대 조사기관(세이브더칠드런)은 ‘정서학대’로 사건을 경찰서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A씨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B학생 명의로 아동학대 고소장까지 접수됐다. 수사 결과 무혐의(증거불충분)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A씨는 그 시간 동안 큰 무기력감과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지난 7일 숨진 대전 모 초등학교 교사 A씨가 생전 자신의 교권침해 피해 사례를 제보하며 남긴 글. ⓒ대전교사노조

A씨는 “그 학생과 약 1년의 시간을 보낸 후 저는 교사로서의 무기력함, 교사에 대한 자긍심 등을 잃고 우울증 약을 먹으며 보내게 되었다”며 “3년이란 시간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다시금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을 보고 그 공포가 떠올라 계속 울기만 했다”고 밝혔다.  

A씨는 “저는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어떠한 노력도 제게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라며 “그 당시에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결국 저 혼자 저의 가족들 도움을 받으며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토로했다.

A씨는 “다시 돌아보며 매우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면서도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어 교사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다시 안겨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대전교사노조는 A씨가 1학년 담임을 마친 후에도 학부모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던 정황도 추가로 공개했다.

대전교사노조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6학년 체육 전담 교사를 맡게 됐는데 B학생 학부모와 친한 C씨의 자녀를 가르치게 됐다. 그런데 C씨 자녀의 체육 수행평가 결과가 ‘노력요함’으로 나오자, A씨가 개인적 감정으로 안 좋은 평가를 줬다는 취지로 교육청과 학교에 민원을 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확인 결과 체육 수행평가는 필기시험이었고, C씨의 자녀가 필기시험을 제대로 풀지 않고 거의 백지상태로 낸 것을 확인했다고 대전교사노조는 부연했다. A씨는 지난해 2월 “저의 평가 권한이 저런 식으로 폄하되는 상황이 너무 화가 난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당해야 할지 몰라 메일 드린다”며 교권 상담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대전교사노조는 “대전 모 초등교사의 극단적 선택 뒤엔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아동 학대 고소가 있었다”며 “대전시교육청은 앞장서서 진상을 규명하고 순직 처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더 이상의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하루빨리 교권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남소연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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