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하는 강우일 주교 제주교구장에서 은퇴한 후에도 인권 평화 생명을 화두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강 주교는 비판적 예언자로서의 사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 황의봉
힘든 시절이다. 정치는 실종되고 압수수색이 일상이 돼버렸다. 대통령은 철 지난 이념을 외쳐대고, 장관들은 어떤 경우에도 책임질 줄 모른다. 국회는 거부권과 시행령에 무기력해졌다. 경제는 연속 적자행진을 기록 중이다.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으니 각자도생만이 살길이라는 비명이 들려온다. '자고 나니 선진국'이란 자부심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이런 시기에 강우일 주교(78)를 만났다. 3년 전 천주교 제주교구장에서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현실을 직시하며 비판적 예언자로서의 사제의 역할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원로다.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와 일본 상지대를 거쳐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9세에 사제 서품을 받아 신부가 되고, 1986년 41세에 주교가 되었으니 속된 말로 출세가 빨랐다.강우일 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 신부로 일했고, 한때는 김 추기경의 뒤를 이어 한국천주교 최고지도자가 될 1순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장이나 추기경 임명 때마다 로마교황청의 낙점을 받지 못했고 2002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제주교구장에 임명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강주교는 "그냥 하느님의 뜻이거니 하고 받아들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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