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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는 잘못된 권력자 비판해야... 침묵은 본분 저버린 것"

[특별인터뷰] 강우일 주교의 '윤석열 시대' 진단

23.10.10 07:13최종 업데이트 23.10.10 07:13

▲ 인터뷰 하는 강우일 주교 제주교구장에서 은퇴한 후에도 인권 평화 생명을 화두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강 주교는 비판적 예언자로서의 사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 황의봉

 
힘든 시절이다. 정치는 실종되고 압수수색이 일상이 돼버렸다. 대통령은 철 지난 이념을 외쳐대고, 장관들은 어떤 경우에도 책임질 줄 모른다. 국회는 거부권과 시행령에 무기력해졌다. 경제는 연속 적자행진을 기록 중이다.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으니 각자도생만이 살길이라는 비명이 들려온다. '자고 나니 선진국'이란 자부심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이런 시기에 강우일 주교(78)를 만났다. 3년 전 천주교 제주교구장에서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현실을 직시하며 비판적 예언자로서의 사제의 역할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원로다.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와 일본 상지대를 거쳐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9세에 사제 서품을 받아 신부가 되고, 1986년 41세에 주교가 되었으니 속된 말로 출세가 빨랐다.강우일 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 신부로 일했고, 한때는 김 추기경의 뒤를 이어 한국천주교 최고지도자가 될 1순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장이나 추기경 임명 때마다 로마교황청의 낙점을 받지 못했고 2002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제주교구장에 임명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강주교는 "그냥 하느님의 뜻이거니 하고 받아들였다"라고 했다.

강 주교는 인권과 생명 존중, 환경 보존, 평화를 위한 행보에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모두가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제주 4·3의 아픔을 알리고 치유하는 데 헌신하고, 예멘 난민을 보듬고, 베트남전쟁 피해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통진당 해산과 강정 해군기지 건설, 4대강 개발사업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그는 한 시사주간지가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 가톨릭 인물 중 만나고 싶은 사람 1위에 꼽히기도 했다.

지난 9월 27일 제주시 아라동의 주교관에서 만난 그에게 제주교구장 은퇴 후의 근황부터 물었다.
 

▲ 주교 서품 1974년 신부가 되고 1986년 주교서품을 받은 강우일 주교는 김수환 추기경 비서, 서울대교구 교육국장과 홍보국장 등으로 오랫동안 김 추기경을 가까이에서 보좌했고, 가톨릭대 초대총장 주교회의의장 등을 역임했다. ⓒ 강우일 주교 비서실

 
"제주교구에 본당이 30개 가까이 되고, 신부님들도 50명이 넘고 해서 항상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또 교구장으로서 입장문이나 서한을 발표할 일도 많아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만, 이런 일들에서 벗어나니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사려니숲을 자주 걸으며 건강 유지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강우일 주교와 함께 걷고 듣는 제주 이야기'라는 모임을 정례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육지에서 성당 주보 등을 보고 신청한 신자들이 20명에서 많으면 80명까지도 오는데, 한 달에 1∼2회 행사를 합니다. 제가 4·3과 관련한 강의를 하고 함께 사려니숲을 걷습니다. 4·3 강의를 하고 나면 다들 그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다고 해요. 강정마을에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를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었는데, 2년 전 내려놓았습니다."


강우일 주교는 또 2016년 한베평화재단이 설립될 때부터 이사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재단의 설립 배경과 사업이 궁금했다.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일들을 부정하고 안면몰수하는 것에 대해 많은 한국인이 분노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역시 베트남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베트남 피해자들에게 송구스러웠고, 가슴 아파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아시아 주교회의연합회 총회가 베트남에서 열렸는데, 그때 제가 '이 자리를 빌려 베트남 국민에게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싶다'라고 했더니 아시아 각국 주교들과 베트남 주교들이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이 일이 알려지면서 마침 과거 한국군 주둔지역에서 의료봉사하시던 분들과 베트남전쟁에서 우리가 저지른 부끄러운 일을 한국 사회에 알려온 구수정씨 등이 재단법인을 만들어 좀 더 체계적인 활동을 펴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으고는 저에게 초대 이사장을 맡아달라고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맡게 됐습니다.

피해지역 마을에 가면 희생자들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미마을이나 퐁니마을 같은 피해지역 분들이 기일이 되면 공동으로 마을제사를 지냅니다. 이때 저희가 재단 이름으로 조화를 보내드리거나 사람을 파견해 제사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지역 초등학교에 자전거나 컴퓨터를 기증하고 어린이 놀이공원을 만들어 주기도 했어요. 또 비석이 세워진 곳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포장할 때 재정적 지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평화기행단을 모집해 피해지역을 방문하고, 현지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는 행사를 진행해왔습니다. 저도 현지를 방문해 제사에 참석하기도 했고요."


"윤석열 정권의 '친일적' 태도, 이해할 수 없어"
 

▲ '베트남 피에타' 제막식 2017년 4월26일, 한베평화재단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희생자인 어머니들과 아기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서귀포시 강정마을내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 세웠다. ⓒ 강우일 주교 비서실

   
한베평화재단 이야기를 들으니 강우일이라는 한 성직자의 참모습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과거 베트남전쟁에서 저지른 비극적 사건들을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꺼리는 풍토에서 그가 종교인으로서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들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건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현 시국에 대한 강 주교의 진단과 성찰을 들어볼 차례다.

- 윤석열 정권 출범 1년 반도 안 지난 시점에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심지어 억압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생겨난 말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요?

"한 나라 안에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노동자도 있듯이 다양한 계층과 영역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는 그 다양한 면을 포괄적으로 바라보고 다각도에서 판단하면서 정책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현 정권은 너무 단편적으로, 순간순간 결정해 버리고 발언을 해버리기 때문에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생기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각자도생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지요.

지금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기업에 각종 지원을 해주고 세금을 감면해 줘서 이익을 많이 내면 그 낙수효과로 다른 분야에도 혜택이 돌아가지 않겠냐는 식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데, 이미 세계 경제학계에서도 그런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끄는 정책입안자나 학자들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이 그걸 아직 모르는 것 같아요.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 개념을 가지고 나라를 이끌려고 하니까 이곳저곳에서 아프다는 소리가 터져나오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은 정말로 무엇이 소중한 가치인지, 그 가치의 서열을 제대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철학이 있어야 하겠지요.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를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판단하는 그런 철학이 필요합니다."

- 대통령, 장관 등이 걸핏하면 이념을 내세워 사회 각 분야의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뉴라이트 논리로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독립운동가를 부정하는 등 역사 왜곡 발언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어떻게 보면 이런 흐름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 후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아오다가 경제적으로 부흥하면서 1980∼90년대에 이르러 국력에 맞게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느냐, 자학적인 역사관을 뛰어넘자며 이른바 역사 수정주의가 대두했어요. 그리고 우경화 보수화 경향이 짙어지면서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점점 경직된 태도를 보이게 됐고요.

미국에서도 9·11 테러 이후 어딜 가나 성조기가 펄럭이고 애국심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대 세력에 대해 철저하게 힘으로 짓누르면서 우위에 서겠다는 미국 제일주의 또는 국수주의적인 경향이 급격히 증대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고, 트럼프 시대에 너무 나간 것 같으니까 용케도 바이든이 당선됐는데, 다음 선거에선 다시 트럼프가 우세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과 미국은 그런 배경이 있어 설명이 가능한데 우리나라가 왜 지금에 와서 이념을 부르짖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념을 강조하고 나선 집권층을 보면 그 이념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거기에 반대되는 길을 가는 사람을 적대시하는 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요. 제가 보기엔 그 이념이란 게 실체가 없는 허구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뭐가 있는 것처럼 신기루 같은 걸 설정해 놓고 자신들과 안 맞는 사람들을 그 카테고리 속에 몰아넣고는 공격하고 비난하고 단죄하는 식입니다."

- 위안부나 징용자 배상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용인 등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저자세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3월 20일 전주에서 첫 시국미사를 가졌을 때 나온 성명서의 시작도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안 등에 나타난 대일 문제의식이 일본 극우들의 망언, 망동에 뒤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한일관계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저는 윤석열 정권이 이념을 들고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친일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옛날에 잠깐이라도 일본에서 살아봤기 때문인지 아니면 일본을 잘 알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보다는 미국이 오래전부터 일본과 잘 지내도록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압력 비슷한 외교적 태도를 보여왔잖아요. 여기에 현 정권이 미국의 뜻대로 한미일 삼각편대를 잘 꾸리고 거기에 의지하면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서는 것으로 착각한 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2차대전 패전 후에도 그대로 유지된 천황제가 오늘날의 비정상적인 한일관계의 뿌리가 아닌가 합니다. 사실 2차대전 전쟁 책임이 천황, 즉 일왕에게 있는데 무조건 항복의 조건으로 전쟁 책임을 군부와 정부의 실세에게만 묻고 넘어가도록 미국과 일본이 타협한 것이죠. 일본 천황의 가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서기 600년 이전은 신화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천황으로 상징되는 일본이라는 국가는 신의 나라가 됩니다. 이 신의 나라는 절대로 망해서도 안 되고, 잘못할 수도 없다는 게 특히 일본 관료들의 의식 안에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집권 자민당의 정치세력과 신사 책임자들이 모인 협회가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신사참배가 국제적인 비난을 사면서도 지속되는 배경입니다.

이처럼 일본의 정치인과 관료들의 기본적인 자세가 변하지 않는 한 한일 간의 허심탄회한 대화나 교류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양국의 시민들이나 문화예술인 종교인들 차원에서 서로 접촉하면서 교류와 일치와 협력의 틈을 확대해 나갈 때 양국 관계가 진정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미일 삼각동맹,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꼴"
 

▲ 제주4.3 UN 인권 심포지엄 기조발제 

2019년 6월20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해 기조발제를 한 강우일 주교. 바로 옆 좌석에 앉은 이가 브루스 커밍스 전 시카고대 석좌교수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미국의 4.3 책임문제가 집중적으로 토의됐다. ⓒ 강우일 주교 비서실

 
- 현 정부에서는 미국과의 핵 공유에 집착하고 압도적 군사력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지난 정부의 협상을 통한 북한과의 공존, 평화 정책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주교님은 강정마을에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를 만들고 이사장도 맡으셨습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세나 정책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핵으로 평화를 가져온다는 건 정말 너무나 무지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끼리도 손에 돌을 들면 상대와 싸우겠다는 것인데, 국가 간에 서로 무기를 잔뜩 움켜쥐고 겨눠보고 있을 때 거기서 무슨 평화가 이루어집니까. 지금 정권이 자꾸만 힘을 강조하는데, 힘이 축적되면 그걸 과시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히틀러의 나치나 일본제국주의도 힘이 축적되다 보니까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망해버린 것 아닙니까.

핵무기로 상대를 압박해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미국이 수많은 핵을 가지고서도 끊임없이 전쟁을 계속하고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힘으로 평화를 이루겠다는 반역사적인 망상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남북을 비교하면 사실 경제력이나 문화적 혹은 국제적 위상으로 봤을 때 남한이 북한보다 몇십 배의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차이가 있음에도 거기에 더해 우리보다도 몇백 배 힘을 가진 미국과 합쳐 북한을 향해 연합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는 건, 마치 국가대표 선수가 유치원생에게 뭐라고 하는 격입니다. 우리가 진정 북한과 평화의 관계를 만들어 가려면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우리의 자세를 낮추어야 합니다.

북한에 남은 건 자존심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으로서, 한 나라로서의 자존심 자긍심을 존중해 주면서 대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신뢰가 쌓이고 교류가 이루어지면 서서히 평화 체제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게 핵무기 하나인데, 그거 내놔 하면 쉽게 내놓겠습니까. 그러니까 상대방 입장에 맞춰가면서 대화를 시작하면 조금씩 조금씩 풀려나가지 않을까 합니다."

- 한미일 동맹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까요?

"일본 지식인들을 만나 보면, 일본이 미국의 한 주가 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이 하라는 대로 한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자위대를 재무장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법적 시스템을 만드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이는 정말로 위험한 짓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는 여론이 있습니다.

일본의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중국과 대만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미국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라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의 양식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일본의 움직임에 커다란 불안과 두려움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저는 느낍니다. 지금 운위되고 있는 한미일 삼각 동맹체제도 결국은 미국과 중국의 대만 유사시 한국이 자동으로 말려들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꼴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제 역할을 못 하는 언론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정권의 눈치를 보고 진실 보도를 외면한다거나 흘려주는 정보를 받아 쓰는 데 급급하다는 질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비판적인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일상화되고 있기도 한 상황입니다. 최근 언론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역대 정권이 언론을 이용해서 정권 운영의 하수인 노릇을 시키려고 애써왔고, 실제로 언론이 그런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빚어진 사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권력이 이렇게 독재화될수록 언론이 위축되고 언론인들이 제대로 객관적인 사실 보도를 못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언론의 자유는 한 나라 정권의 민주성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비민주적인 역주행을 하고 있어서 언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엔 유튜브를 통해 개인 발 이야기들이 넘쳐나니까 그 속에서 뭐를 믿어야 좋을지 판단하기가 극히 힘들어진 언론 무질서의 시대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요. 그러나 시대가 또 바뀌면 언론도 국민의 힘으로 바로 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4.3에 대해 더 알아야"
 

▲ 4.3특강 강 주교는 요즘 '강우일 주교와 함께 걷고 듣는 제주이야기'에 참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매달 1~2회 제주4.3 관련 특강을 하고 있다. ⓒ 강우일 주교 비서실

 
강우일 주교는 2002년 10월 제주교구장으로 부임한 이래 21년째 제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교구장 시절이나 은퇴한 이후에도 제주 사회의 이슈나 환경문제에 대해 섬세하면서도 준열한 비판을 멈추지 않아 왔다. 특히 4·3문제에 대해서는 토론회나 세미나 등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주제발표를 하는 등 전문가이기도 하다.

- 2002년 뜻밖에도 제주교구장이 되어 제주로 내려온 데 대해 "아픈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것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도록 하느님이 저를 보내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난 21년의 제주살이를 통해 제주라는 섬과 역사, 사람에 대해 느끼고, 깨닫게 된 점을 요약하신다면 어떤 것일까요?

"제주도가 육지로부터 겪어온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제주인의 영혼은 항상 두려움과 피해의식, 아픔 같은 것들이 뒤범벅돼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짓눌린 채 온전히 가슴 펴고 살지 못한 백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피해를 안겨준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은 그런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했지요. 저 역시 육지에서 왔을 때만 해도 잘 몰랐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육지에서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은 그냥 자연이 아름다운 관광지로만, 놀러 오기 좋은 땅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 같아 저로서는 참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육지에서 손님이 찾아오거나, 기회 닿을 때마다 항상 4·3 평화공원에 가서 제주에서 있었던 일을 좀 들여다보라고 권합니다."
 

▲ 제주4.3평화상 시상 4.3평화상위원회 위원장인 강우일 주교가 2023년 제5회 수상자로 선정된 개렛 에반스 전 호주 외교부장관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 강우일 주교 비서실

 
- 4·3의 진상이 많이 알려졌고 특별법이 제정되고, 피해보상도 진행 중입니다만, 그런데도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교님이 생각하는 향후 4·3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제가 제주에 와서 4·3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고 속을 들여다보려고 하니 관련 자료들이 너무도 부족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4·3 관련 책도 쓰고 했지만, 아직도 다양한 각도에서 4·3을 바라보는 그런 자료들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피해를 겪은 당사자들이 거의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을 최대한 발굴해 내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지금 4·3평화재단에서 미국의 자료들을 열람하면서 번역작업도 하고 있는데,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이를 토대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4·3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앞으로 젊은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 4·3의 역사적 배경과 경위와 그 전후 맥락을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4·3이 제주도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사실 제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4·3은 한반도 전체의 문제가 농축된 축소판이고 또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4·3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제2공항 건설, 제주 1/4 망가진다"  

- 제주도의 환경문제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고 그 위험성을 누누이 강조해 오셨습니다. 현재 환경문제 심각성을 어느 정도로 보고 계십니까?

"제가 처음 제주도에 온 20여 년 전만 해도 인구가 50만 조금 넘은 수준이었는데, 이제 70만이라고 합니다. 제주도는 화산토로 덮여 있어서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고 밑으로 빠져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용수나 농업용수를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는데,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어요. 전에는 바닷가에 용천수가 솟아 나오는 곳이 많았는데, 이게 많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바닷물이 역류해 염분농도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 상수도로 쓰려고 취수하는 물도 오염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생활하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바다로 내보내는 상황이어서 제주를 둘러싼 연안 해수가 오염돼 백화현상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 성당을 사목 방문하면서 해녀분들을 만나 대화를 한 적이 있어요. 10년 전 제주바다 속에서 건진 돌과 요즘 건져낸 돌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돌이 그런대로 거무칙칙했는데, 요즘엔 이렇게 하얗게 변했습니다' 하는 거예요.

이게 백화현상인데, 이렇게 되면 산호라든가 해조류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물고기 어획량도 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하고요. 쓰레기장도 포화상태여서 이제 더 이상 버릴 곳도 없는 지경입니다. 제주도가 가진 생태계의 용량이 이제 숨이 목까지 차버린 그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는 엄청난 위협입니다. 일단 방류해서 바닷물과 섞이게 되면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를 1500배로 희석해서 내보내고 또 바닷물에 섞이면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렇게 희석된다고 해도 먹이사슬에 의해 방사능이 농축되고 최종적으로 사람이 물고기 등을 먹으면 내부 피폭을 겪게 됩니다.

이런 내부 피폭으로 인체에 어떤 해가 있을 수 있는지 아직 연구도 제대로 안 돼 있어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 정책 결정하는 사람들은 몇십 년 후면 다 세상을 떠날 겁니다. 그 후에 방사능 효과가 나타나면 우리 후손들은 정말 이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제주의 최대 현안인 제2공항 건설이 점점 기정사실로 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러면 앞으로 빚어질 갈등과 혼란이 강정 사태 이상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제2공항의 타당성 여부 그리고 이 문제가 일으킬 갈등의 심화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저는 제2공항이 거론될 때부터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반대를 했어요. 제주도정이 제2공항을 구상할 때 제주 입도객을 연간 4000만 명까지 예상했거든요. 그렇다면 이건 제주도 전체를 완전히 유원지화하겠다는 발상이라고 저는 봅니다.

생태계라는 게 한번 망가지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사전타당성 조사 같은 걸 하면서 보호해야 할 희귀 동식물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방안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건 자연을 너무 모르는, 말도 안 되는 발상입니다.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 지역에는 지하동굴도 많고 희귀 동식물 개체도 많은데, 공항이 들어서고 부대 시설이 생기고 도로포장이 되고 나면 제가 볼 때 제주도의 4분의 1은 망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제주도민과 전 국민이 나서서 뜯어말려야 하는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침묵은 목자로서의 본분을 저버리는 것"
 

▲ 강정 생명 평화 천막미사 서귀포시 강정 해군기지 입구 도로변에서 매일 11시 천막미사가 열리는데(일요일엔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강우일 주교는 매달 1회 천막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 강우일 주교 비서실

 
이제 긴 인터뷰를 정리할 시간인 것 같다. 시국 상황이 엄중하고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분출하는 이즈음 평소 성직자의 사회에 관한 관심과 행동을 촉구해 온 강우일 주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 하느님의 뜻과 배치되는 일들이 일어날 때 고발하고 비판하고 싸우는 게 성직자의 본질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연관 지어 본다면, 성직자의 본질에 비춰볼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구약성서를 보면 예언자들의 가장 중요한 본분은 이 세상이 잘못돼 가고 있을 때, 권력자들이 잘못했을 때, 권력자들을 향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현대의 종교인들도 권력자들이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사회정의에 반하는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하면 이를 비판하는 예언자 역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종교인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왜 성직자들이 조용히 기도나 하지 사회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느냐'며 비난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성직자의 핵심적 사명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성직자는 하느님이 손수 다스리는 나라처럼 이 세상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그 시대에 힘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서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씀하시고 또 행동하셨거든요.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우리의 관심사이고 관여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 특히 가톨릭의 경우 사회교리가 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성직자의 사회참여가 인정되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가톨릭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최근에도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가 있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가톨릭 사제들이 사회 현안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신자들 역시 사회적 관심사를 애써 외면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가족끼리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갈라질 수 있다는 말씀도 하셨거든요. 정의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고서 유지되는 그런 평화는 깨뜨려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님도 결국은 제자들에게 버림받으시고 마지막에는 혼자 남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말씀까지 하신 걸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제들이 사회정의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교회공동체 안에 다른 의견을 가진 신자들이 있다 보니 자칫 분란이 일어나고 분열되지나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나 정말 우리가 꼭 해야 할 말은 제때 해야지 어떤 이유로든 침묵하는 것은 목자로서의 본분을 저버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옛날부터 이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을 보면 대부분 성당에 와서 미사 전례에 참여하거나 무슨 단체에 가입해서 회합을 하는 등의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당 문을 나서면 일반 사회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고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을 사회문제와 연결해서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나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예수님의 관심사였듯이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그 관심을 끄고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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