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이 17일 저녁 '우크라이나 전쟁 평가 및 북러관계 전망'주제의 '2023년 10월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기존 제국주의적 질서에 거대한 변화 조짐이 보인다며 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이 17일 저녁 '우크라이나 전쟁 평가 및 북러관계 전망'주제의 '2023년 10월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기존 제국주의적 질서에 거대한 변화 조짐이 보인다며 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게 변화하고 있는 국제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국제질서가 완전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평가 및 북러관계 전망'주제의 '2023년 10월 [통일뉴스] 월례강좌'

소셜미디어를 통해 복잡한 국제관계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과 식견을 펼쳐 온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은 먼저 "우리가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지역이지만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그동안 구축되어 아직까지 변하지 않던 기존 자본주의 질서, 형식적으론 독립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지상태였던 제국주의적 질서에 뭔가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거대한 변화의 대표적인 특징은 유엔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유명무실한 존재가 됐다는 것.

중동사태를 계기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지만 사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안보리를 비롯해 유엔총회도 이미 기능이 거의 정지된 상태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 다음 눈여겨 볼 일은 유럽의 안보구도에서 역할이 커져왔던 나토(NATO)의 역할이다. "만일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게 되면 나토는 붕괴와 다름없는 해체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상황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특징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해 온 가장 중요한 축의 하나인 중동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 지배 과정에서 각종 층위별로 다양한 체제를 구축해 왔는데, 그런 것들이 일거에 형식만 남고 그 가치나 의미는 없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짚었다. 

국제관계의 모든 건 힘의 관계를 통해 결정되는데,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와 G7(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간 협의체)의 격차를 보면 분명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기존 체제의 붕괴 징후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하는 일은 아프리카의 변화이다. 제국과 기존 체제의 붕괴는 중심부보다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2023년을 경과하면서 브릭스 국가의 총생산 규모(GDP)가 G7을 넘어서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사진출처-IMF]

아프리카에서 싹트는 반제국주의 혁명

먼저 아프리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필두로 과거 민족주의 투쟁이 격화되던 곳도 아니었는데 느닷없이 2020년 8월 말리를 시작으로 '사헬(Sahel)지대'(세네갈 북부에서 수단남부까지 동서 약 6,400km 폭의 사막화가 진행중인 점이지대)의 최빈국들인 브루키나 파소, 니제르, 기니 등에서 잇달아 '군대가 주도한 사회주의혁명'과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2020년 말리에서 시작해 2~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벌어진 이런 현상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단정해서 말하긴 어렵지만 특히 지난해부터 이들 나라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중요한 건 역시 이 지역 사람들의 각성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프랑스에 완전히 예속돼 있던 이들 나라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각성이 시작되었는데, 그 폭발적 계기가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나 서구 유럽과도 '한번 해볼만 하겠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그런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2020년 이전부터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이곳에 보내서 영향력 확대를 위한 사전 작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나라들은 쿠데타 성공 이후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에 의한 치안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수십년간 영향력을 행사하던 프랑스의 철군을 요구하고 대신 바그너그룹과 손잡기로 하는 등 친러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반제국주의 혁명'으로 볼만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제국주의적 지배질서의 붕괴-사헬 지대 쿠데타 벨트의 확대 [사진-한설 제공]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중동의 반격

다음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무력충돌로 시작해 확전 일로에 있는 중동사태.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중동사태의 배경으로 이 지역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주도권 경쟁에 주목했다.

두 나라 모두 중동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이지만 경로가 달랐다. 중국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를,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꾀했다.

그런 점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손잡는 순간 더 이상 존립근거와 희망이 사라지는 하마스는 초기 공격만으로 1차적 전략목표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스라엘은 '진퇴양난'의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왕정수호와 국가안보가 핵심 관심사인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아랍 세계로부터 배척받지 않기 위해서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아랍 세계와 타협하지 않고서는 존속 가능성이 없는 이스라엘은 당장의 기세와 달리 중동 전체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상황이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특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75년간 국가를 유지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아랍과의 공존을 모색하지 못하면 이번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국가의 소멸을 염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결정적 순간에 그에 걸맞는 결정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란은 전쟁을 회피할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하마스의 공격을 지원하기도 했고 이번 기회를 통해 중동에서 미국을 몰아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이 보유한 미사일 전력이나 드론의 공격력은 저비용에 강력한 타격력을 갖추고 있어 동지중해에 배치된 미국의 항공모함에도 불의의 습격을 가할 수 있다고 했다.

전선이 가자지구를 넘으면 이란은 물론 이라크와 시리아도 참전할 것이기 때문에 미군은 더 이상 그곳에 주둔하기 어렵게 된다.

무엇보다 전 세계 이슬람사회로 확대되는 반이스라엘 시위는 미국으로서도 견딜 수 있는 상황을 넘을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하고 중요한 순간에 물러설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 미국은 그걸 못하기 때문에 붕괴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이스라엘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해법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롯한  호전적 시오니스트들이 퇴진하고 그 이후 아랍 세계와 관계 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이스라엘은 지도상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더 높고 미국은 향후 5~10년 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앞으로 국제질서는 어떻게 형성될까?

그렇게 미국의 패권이 붕괴되면 어떤 새로운 질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극적 질서의 도래를 예상하는 견해가 많다. 다극화라면 최소한 다양한 정치제도와 종교, 이념이 두루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 미국이 행사하던 패권을 여러개로 나누는 것에 그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질문이 많아진다.

그는 세계를 운영하는 근본 시스템 자체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향후 세계가 집단서방과 글로벌사우스로 분리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방향이며, 글로벌사우스는 러시아, 중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브릭스는 2020년 중반 이후 사우디아라이비아, 아르헨티나, 이란, 이집트, 에디오피아, 아랍에미레이트 등이 가세하며 이미 G7을 추월하기 시작해서 2030~40년대에 들어서는 G7이 따라갈 수 없는 역전이 기정사실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브릭스와 G7의 향후 예상 GDP 격차 [사진-스탠스베리리서치 갈무리]  
브릭스와 G7의 향후 예상 GDP 격차 [사진-스탠스베리리서치 갈무리]  

다시 말하지만, 국제정치에선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을 얼마나 왜곡하지 않고 정확하게 보느냐가 초점이고 그 이후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의 경쟁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서도 벌어지고 있고 이에 대해 우리는 나름의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북한, 지정학적·전략적 요충 

그런 점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향후 전략적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먼저 기존 해양 질서 중심 세계에서 유라시아 대륙 중심 세계로 넘어가는 변화의 과정을 이해하거나 최소한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각국이 추구하는 이익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러시아가 작년부터 수송을 시작한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 International North-South Transport Corridor)과 중국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북극항로(Polar route) 개척 등이다. 

INSTC는 상트베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이란의 테헤란, 인도 뭄바이까지 연결하는 운송망으로, 유라시아 대륙 횡단 회랑과 종단 회랑이 교차하고 페르시아만의 항만을 아우르며 국제 물류의 중심으로 성장 가능성이 주목되는 프로젝트이다.

일대일로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대륙내 소통이 형성된다는 의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가까워졌지만 이 두 나라가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유라시아 세계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INSTC와 일대일로가 완성되면 고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지를 무대로 활동하던 스키타이인들과 같이 자유로운 공간 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해양세력이라는 것도 결국 빠르고 제한이 없는 수송을 위해 바다를 이용하면서 만들어 진 것 아닌가.
 
또 하나 생각해 볼 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길을 기존 수에즈운하가 아니라 북극을 경유하려는 북극항로이다. 로테르담을 기준으로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기존항로(2만100km)를 이용하면 부산항에서 24일이 소요되지만 북극항로(1만2,700km)를 이용하면 열흘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호기롭게 부산을 그 출발점으로 그리고 있지만 실제로 그 항로를 이용할 중국의 이익을 계산하면 북한의 나진·선봉이나 블라디보스토크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 중에서도 중국과 가까운 나진·선봉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

국제남북운송회랑 개념도 [사진-한설 제공]
국제남북운송회랑 개념도 [사진-한설 제공]

결국 INSTC와 일대일로, 북극항로를 실현하는데서 중국과 러시아는 손을 잡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렇게 되면 지중해 시대는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북한은 우리가 유라시아로 진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분단된 한국은 지금 섬나라인데 북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유라시아로 진출하겠냐는 것이다.

여기서 북한의 지정학적·전략적 중요성을 다시 살펴보자.

북한은 지리적으로 중국의 베이징, 다렌, 옌타이 등 중요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는 발해만(보하이만)과 러시아가 가장 취약한 극동 연해주를 보호할 수 있는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또 핵보유국이라는 국제정치적 위상으로 인해 북한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어느 한쪽이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러관계에서 적극적인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 중소분쟁때 거중조정을 하며 생존을 위한 등거리외교를 할 때와는 달라진 상황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은 미국보다는 중국이나 러시아 입장에서 훨씬 더 커졌다는 것. 만약 미국이 북한과 손을 잡았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해보면, 미국은 '북한'이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상실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데 실패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북한을 놓친 것이라고까지 지적했다.

미중 경쟁 상황에서 북한이 중립적인 위치에만 있어도 중국은 위협으로 느낄텐데, 더 나아가서 미군이 북한 지역에 주둔하는 사태까지 진척이 있었다면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으테니 말이다. 

반제국주의, 새로운 세계질서 위한 북러의 협력

한설 전 소장은 복잡한 정세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질서의 향방을 살피면서 나름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한설 전 소장은 복잡한 정세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질서의 향방을 살피면서 나름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이제 한국과 북한의 상황을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보자.

그는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수평적 관계라고 설명했다. 세 나라 모두 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은 미국이 선두에 있고 일본이 그 다음에 있는 질서의 끝에 있는 수직적, 계서(階序) 관계에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스스로 머리 숙이고 그 체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제 절대로 한국하고 이야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북한의 대화 상대가 되기 어렵다고 그는 진단했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정책결정권자가 아무런 자율권도 없는 한국과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는 것.

그는 지난 9월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난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반제국주의 공동전선에서 힘을 합치겠다'는 것이었다고 하면서, 그저 '레토릭'으로만 나온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니제르의 쿠데타 지지시위 현장에 북한 국기가 등장하고 부르키노파스에 북한군이 들어가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그저 가볍게 볼 일은 아니라며, 앞으로 북한은 새로운 국제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미국이 중요한 나라라고 해서 군사주권마저 다 내주거나 무조건 나가라고 주장하는 일, 경제적 의존이 높은 중국을 배척하는 일,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는 자해행위 등.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일까? 

결론은, 복잡한 정세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질서의 향방을 살피면서 나름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