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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로켓배송 택배 기사에 ‘월급 160만원 삭감안’ 들이민 쿠팡

2024년 배송 수수료 협상 나선 쿠팡CLS, “합리적 조정” 강조하지만 실상은 수익 재분배…연 800억 이상 비용 절감·수익 확보 가능할 듯

쿠팡 물류센터 자료사진 ⓒ뉴시스
쿠팡이 로켓배송 대가로 택배 영업점에 지급하는 수수료 삭감을 추진 중이다. 삭감 폭은 최대 30%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택배 기사 소득 감소 우려가 커지고 있다.

6일 ‘민중의소리’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 배송 담당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최근 택배 영업점과 로켓배송 단가 삭감 협의를 진행 중이다. 삭감 폭은 10~30% 선이다. 기존 로켓배송 단가가 건당 900원이었다면 최소 810원에서 최대 650원까지 줄어드는 것이다.

쿠팡CLS와 단가 협상이 마무리된 일부 영업점은 소속 택배 기사들에게 삭감 방침을 통보하고 있다. 이르면 이달 25~26일부터 삭감된 내년도 배송 단가가 적용된다. 하루 평균 배송 개수가 300개인 택배 기사 수입은 경우에 따라 한 달 최대 160만원 이상 줄어들 수 있다. 쿠팡 택배 기사 단체 SNS 대화방에서는 “일을 시켰으면 돈을 줘야지. 누굴 X호구로 아나나”, “단가 적용되면 쿠팡을 떠나야겠다, 사람 귀한 줄 모른다”는 등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단가 삭감이 ‘형평성과 공정성 확립’이라는 쿠팡CLS

쿠팡CLS는 최근 ‘2024년 단가 조정 협의의 건’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다수 택배 영업점에 발송했다. 메일엔 ‘배송 난이도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해, 어려운 지역 인상을 포함, 수수료를 조정하고자 한다’고 적혔다. 단가 인상과 인하 등 합리적 조정 절차를 통보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쿠팡CLS와 협의했던 수도권의 A 영업점 대표는 “대부분 지역이 삭감 대상”이라고 말했다.
쿠팡CLS가 보낸 A 영업점 단가 조정(안)을 보면 전체 30개 구역 중 인상 지역은 단 두 곳뿐이다. 나머지 28개 지역은 모두 삭감 대상이 됐다.

인상률은 낮고, 삭감률은 높다. A 영업점에서 배송 단가가 인상된 두 곳의 인상 폭은 5% 남짓인 데 반해, 나머지 28개 지역 삭감률은 최소 10%에서 최대 27%에 달한다.

인상된 두 곳은 빌라·단독주택 밀집 지역이라는 게 A 영업점 대표의 설명이다. 기사들 사이에서는 ‘올지번’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언덕이 많은 빌라 지역이라 배송 난도가 높은 데 반해 배송 물량은 적어 기사들이 꺼리는 곳이다. 주간 배송 단가 910원이었던 이곳은 50원 올라(5.4% 인상) 960원이 됐다.

A 영업점이 배송하는 나머지 28개 지역 단가는 삭감됐다. 아파트 단지가 한 곳 이상 포함된 곳이 대부분이다. 인상 지역보다 배송 규모가 월등히 큰 지역들이 모두 삭감 대상이 됐다. 개당 850~900원이었던 배송 단가는 100~250원 삭감돼 최저 650원으로 주저앉았다.

A 영업점은 쿠팡CLS로로부터 받은 배송비에 수수료 100원을 차감한다. 기존 900원일 때 택배 기사가 받는 배송 단가는 개당 800원이었다. 삭감안이 적용되면 택배 기사 몫은 배송 단가 650원에서 수수료 100원을 뺀 550원이 된다.

A 영업점 B 배송구역(주간, 000_C·D, 일 물량 300개, 영업점 수수료 100원 제외) 담당 기사 수입은 월 624만원에서 462만원으로 161만원 줄어들 수 있다.

쿠팡CLS 측은 단가 삭감과 관련 “노선 특성에 따른 형평성과 공정성을 갖춘 수수료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배송 난이도 등을 고려, 수수료를 합리적으로 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익 재분배 나선 쿠팡CLS

쿠팡CLS는 ‘형평성과 공정성을 갖춘 수수료 체계’ 수립이라고 포장하지만, 갑인 쿠팡CLS가 을(영업점)과 병(택배 기사) 수익을 강제 환수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쿠팡CLS와 계약을 맺은 영업점, 영업점과 계약을 맺은 택배 기사 수입은 최근 꾸준히 상승해 왔다. 쿠팡이 온라인쇼핑 시장 점유율을 늘리면서 로켓배송 물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A 영업점 B 구역의 경우, 연초 배송 물량은 5천5백개 수준이었는데, 10개월 뒤인 지난달 배송 물량은 7천개 가량으로 약 27% 늘었다. 쿠팡CLS가 통보한 B 구역 단가 인하 폭과 배송 물량 증가 규모가 일치한다.

최근 쿠팡CLS와 단가 협상을 한 서울지역 C 영업점 대표는 “본사(쿠팡CLS)에서는 ‘택배 기사 수입은 줄어들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배송 단가가 줄지만 내년도 배송 물량이 늘어날 테니 수입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쿠팡 택배 기사들이 “누굴 X호구로 아냐”고 반발하는 지점이다. 택배 기사 소득은 저절로 늘어나지 않는다. 더 빨리, 더 많은 로켓배송을 해야 딱 그만큼만 소득이 늘어날 뿐이다. A 영업점 B 구역 물량이 10개월 사이 2천개 늘어났지만, 배송 기사가 추가로 배치된 적은 없다. B 구역 배송 기사 한 명이 노동 강도를 높여 늘어난 물량을 소화한 대가로 소득이 늘어난 것이다.

택배산업 고질병인 단가 하락 부작용이 쿠팡CLS에서 반복되는 모양새다. 온라인쇼핑이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던 2003년 택배 단가는 개당 3,200원 선이었다. 10년 뒤인 2013년에는 2,400원이 됐고, 2018년 2,200원까지 꾸준히 하락했다. 늘어난 택배 물량을 수주하기 위해 택배사끼리 경쟁적으로 가격 인하에 나선 탓이다.

같은 기간 택배 기사 수입은 오히려 늘어났는데, 가격 하락보다 배송 물량 증가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택배 기사들은 주당 72시간씩 배송하며 가격 하락을 만회하며 소득을 끌어 올렸다. 20여명의 택배 기사는 이 과정에서 과로사로 생을 달리했다.

택배 기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했고 사회적 합의가 도출됐다. 택배 기사 노동 시간을 60시간 이내로 한정했다.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한 비용은 소비자와 택배사가 나눠 부담했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던 택배 배송 단가는 사회적 합의가 나왔던 2021년에서야 상승세로 돌아섰다. 택배 단가 인상은 배송 기사들의 목숨이라는 매우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얻은 교훈이었다.

쿠팡CLS는 사회적 합의 1년 뒤인 2022년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관련 규정 준수를 거부하고 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이주한 변호사는 “쿠팡의 단가 삭감은 택배 과로사 문제 해결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몰각하는 행위”라며 “쿠팡의 시장 지배력이 늘어날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배송 단가 삭감으로 쿠팡CLS 수익성은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쿠팡CLS와 간접 계약 관계에 있는 택배 기사는 대략 1만5천명 규모로 추정된다. 택배 기사 한 명이 하루 300개를 배송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배송 규모는 16억4천만개다. 쿠팡CLS가 이들에게 지급하는 배송료를 개당 50원씩만 줄여도 연간 820억원 규모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쿠팡CLS 매출은 7,684억원 규모였다. 단가 삭감으로 연 매출 10%에 달하는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셈이다. 
 

“ 홍민철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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