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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봄’ 반란군 ‘전두광’의 적반하장…재판에서도 ‘뻔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12/09 09:51
  • 수정일
    2023/12/09 09:5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군사반란 막으려 했던 ‘이태신’ 사령관 등의 행위가 “반란”이었다는 ‘전두광’ 일당

영화 서울의봄 포스터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 누적 관객 수가 7일 기준 547만 명을 넘었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이끌고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다뤘다. 영화를 관람하고 나면 착잡한 마음에 일어나기도 힘들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사실에 바탕을 둔 정도가 아니라 ‘극사실주의’에 가깝다. 문민정부로 교체되고 어렵게 군사반란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면서 채택된 공식적인 증거들과 비교해도, 이 영화는 극사실주의다. 극 중 ‘전두광’(영화에서의 전두환 이름, 황정민이 연기)이 청와대 사무실을 수사하던 중 9억을 발견하고 6억은 유가족에게 주고 1억은 계엄수사비로 남겨놓은 뒤 2억은 육군참모총장에게 내밀었다가 “일을 마음대로 처리한다”는 주의를 들은 일, ‘전두광’ 같은 정치군인이 한직으로 인사 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 일 등 거의 모든 영화 속 장면이 재판기록에도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다.

답답한 역사는 그래도 군사반란 이후 17년이 지난 뒤 대법원판결로 일부 바로잡혔다. 중간에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면서 불기소처리하면서 재판이 열리지 않을 뻔 했으나, 다행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재판에서 전두환 측은 뭐라고 하면서 군사반란을 정당화했을까?

전두환 일당은 군사반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사반란을 막으려고 했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극 중 ‘이태신’, 정우성 연기) 등의 행위가 “반란행위였다”라는 주장을 꺼냈다. 1심과 2심을 거치면서 군사반란의 혐의가 명확해진 이후에는 “상관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전두환은 최후진술에서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여, 그 정권의 정치적 시각과 역사관으로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시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태우(극 중 ‘노태건’, 박해준 연기)는 최후진술에서 “어제의 일을 오늘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군사반란 세력의 ‘적반하장’
“정승화 체포 막으려던 것이 반란”

 
영화 서울의봄 스틸컷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도 그렇고, 실제로 전두환 일당은 총격전을 벌이면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극 중 ‘정상호’, 이성민 연기)을 체포했다. 이 범죄행위에 대한 전두환 일당의 항변은 다음과 같았다.

전두환 일당은 정승화 총장 체포에 대해 “적법한 직무집행”이었다고 주장했다. 군사반란 성공 후 정 총장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냈기 때문에 정당한 체포였다는 주장인데, 이 자백은 장기간의 구금과 고문 끝에 받아낸 것이었다. 즉, 고문으로 거짓자백을 받아내 사건을 조작했던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자백은 불법구금과 고문에 못 이겨 한 것임이 인정되므로 증거능력 없음이 명백하다”며 전두환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전두환 일당은 “적법했다”는 주장에서 더 나아가, 군사반란을 막으려고 했던 세력의 행위가 “반란”이었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일당은 “육군본부 측이 정승화 총장 체포를 방해하고, (체포한) 정승화 총장을 탈취하기 위해 제9공수여단을 출동시키고, 제26사단 등에 출동준비명령을 하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으로 하여금 제30경비단에 대한 공격을 기도하게 하여, 우리와 대통령 및 국민의 안전에 위협을 가한 것이 반란행위였다”라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채택된 여러 증거와 진술을 종합해 당시 육군본부가 취한 조치에 관해 “국군조직법에 따라 정 총장을 대행하여 육군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갖게 된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취한 정당한 직무집행”이라고 판단했다. 또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병력출동 요청이나 공격기도 행위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행위”라며 “이는 대통령령에 규정된 수경사의 임무이자, 미리 수립해 놓은 방어계획”이라고 짚기도 했다.

전두환 일당은 군사반란을 사전에 모의한 적도 없고, 반란을 지휘하거나 가담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채택된 증거를 보면 ① 전두환과 노태우가 먼저 정승화 총장 체포를 모의한 다음 이학봉, 허삼수 등을 통해 구체적인 체포계획을 수립했고 ② 전두환 일당은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구성하기로 하고 실제 구성했으며 ③ 비상계엄인데도 상급부대 지휘관의 허가 없이 병력을 행선지조차 알리지 않고 집결시켜 놓았다가 반란에 동원했다 ④ 보안사 상황실을 거점으로 다른 지휘관들의 전화를 도청하여 부대의 동향과 병력이동 정보를 수시로 공유하기까지 했다. 이에 재판부는 전두환 일당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두환 일당은, 재판 과정에서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도 꺼냈다. 하지만, 이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결론이 난 사안이었다. 반란과 상관살해 등의 공소시효는 15년인데, 전두환이 대통령을 한 기간 7년5개월과 노태우가 대통령을 한 기간 5년을 각각 제외하여 공소시효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故 김오랑 살해 가담한 박종규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영화 서울의봄 스틸컷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 또한 실존인물(故 김오랑 중령)이다. 전두광과 직속상관의 명령을 받고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러 갔다가 형과 아우처럼 가까웠던 오진호 소령을 살해하는데 가담한 ‘박수종’(박종규의 극 중 이름, 배우 이승희가 연기) 또한 실존인물이다.

극 중 ‘박수종 중령’의 실존인물은 ‘박종규 3공수 15대대장’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3공수’는 5.18 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도 투입된 부대다. ‘조갑제닷컴’에 게시된 박종규의 ‘광주 진압 공수부대 대대장 手記(수기)’를 보면, 박종규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역에서 시민을 향해 직접 총을 발포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또 해당 글에서 박종규는 광주 시민들의 시위를 강경진압하지 않고 물러나는 행위를 “6.25 戰史(전사, 전쟁역사)의 3군대 ‘패퇴’에 못지않은 치욕”이라고 표현했다.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는 시민을 ‘적’으로 여긴 것이다. 이 글의 결론에 명시된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가해자의 설명이 피해자의 절규에 파묻혀 버려서는 안 될 것”이라며, 광주시민이 ‘가해자’이고 공수부대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사반란 재판에서 뭐라고 했을까?

박종규는 최후진술에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최세창 3공수 여단장의 지시를 따라 행동했을 뿐이며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라고 주장했다. 1심에 불복해 항소할 때도, 그는 “전두환과 직속상관의 명령이 정당한 것으로 알고 수행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 박종규는 원심이 판단한 바와 같이, 피고인 최세창(3공수 여단장)이 자신의 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반항하여 부대를 출동시키려고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므로 정병주를 체포하라는 최세창의 지시가 위법한 지시라는 점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1심과 마찬가지로 2심 재판부도 “군인이라도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상관인 최세창의 위법한 명령을 받고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상당한 시간 고민하다가 명령에 따른 것” 또한 혐의의 근거가 됐다.

박종규는 2010년 12월 7일 식도암으로 투병 중 사망했다. 박종규는 죽기 전 故 김오랑 추모사업회 측에 전화해 “올해 식도암 4기를 선고받았다, 하늘의 벌인지도 모르겠다”며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자칫하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재판
극 중 전두광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재판서 전두환 “성공한 쿠데타 처벌할 수 없다”
검찰 “성공한 쿠데타 처벌할 수 없다”

 

영화 서울의봄 메인예고편 장면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전두환 일당이 12.12 쿠데타로 후퇴시킨 역사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일부나마 바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군사반란에 대한 시민들의 고소고발 운동으로 검찰수사가 이루어졌지만,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전두환 등 관련자를 불기소처분했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도 전두광(영화에서의 전두환 이름)이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전두환 측이 재판과정에서 내세운 논리와 동일했다. 판결문(서울고법 96노1892)을 보면, 전두환 측은 12.12 군사반란 등에 대해 “형식적으로 내란에 해당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정당한 행위로서, 소위 ‘성공한 쿠데타’에 해당하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군사반란 이후 전두환 측뿐만 아니라 사건을 수사한 검찰도 영화처럼 판단했던 것이다.

다행히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가 ‘성공한 군사반란도 형사 처벌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재판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는 “성공한 쿠데타의 처벌문제는 법의 효력이나 법의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집행의 문제인 것이고, 바꾸어 말하면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인 것”이라며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대법원에서도 다수의견으로 “헌법질서 아래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며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는 처벌의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 이승훈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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