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무능일까요? 은밀한 뒷거래일까요? 법이 유독 의사들, 의료기관에게만 더욱 관대해 온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검사가 ‘살려준’ 의사들> 기사를 보고 한 시민이 남긴 댓글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화이트칼라’ 엘리트 계층으로 꼽히는 의사와 검사. 그런데 의사는 범죄를 저질렀고, 검사는 그 결과를 보건복지부에 알리지 않았다. 이로써 의사 면허는 취소되지 않았고, 이를 이용해 돈도 벌었다.
그동안 셜록의 기사에는 불법 안마방을 운영하며 약 40억 원의 수익을 낸 의사(관련기사 : <안마방으로 40억 번 의사, 검찰 덕에 면허취소 피했다>)와 ‘영적인 힘’에 기대 환자를 죽게 만든 한의사(관련기사 : <‘영적인 힘’ 믿다가… 환자는 죽었고 한의사는 살았다>)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검찰의 잘못으로 의료면허 취소 처분이 수년간 지연됐다.
기사를 본 시민들은 쉽게 그들 둘 사이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 의심했다. 위에 소개한 댓글 외에도, “의사와 법기술자들은 무슨 잘못을 해도 다시 살아나는가”, “공짜 없는 세상이죠. 저 검사들과 가족의 계좌가 궁금해지네요”라는 댓글들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시민들은 손쉽게 하는 이런 의심을 정작 검찰은 하지 않았다. 더욱이 감사원으로부터 두 차례나 지적을 받고 나서도.
그 의심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셜록이 나섰다. 셜록은 의료면허 취소 위기의 의료인들을 ‘살려준’ 검사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고발했다.
셜록은 20일, 검사 44명을 직무유기 혐의(형법 122조)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유죄를 확정받고 의료면허 취소 대상이 된 의료인 등(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약사, 한약사)의 재판 결과를 보건복지부에 통보하지 않은 검사들이다. 셜록은 직접 작성한 고발장과, 취재를 통해 수집한 증거자료 약 1500장을 공수처에 제출했다.
검찰에겐 유죄 확정 의료인 등의 재판 결과를 보건복지부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대상자는 ‘의료 관련 법령 위반으로 금고 이상 형을 확정받은 사람’.(11월 20일부터 의료사고를 제외한 모든 범죄로 확대)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의료면허 취소 처분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통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보건복지부는 유죄 판결을 받은 의료인 등의 면허를 취소하지 못했다. 감사원을 통해 밝혀진 사례만 총 47건이다.(사건 중복에 따라 담당 검사는 44명으로 집계)
▲ 공수처 고발을 위해 고발장에 증거자료를 첨부하는 모습. ⓒ셜록
셜록이 직접 고발에 나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각각의 사건에서 검사는 왜 의료인 등의 의료면허 취소 사건을 주무관청에 통보하지 않았는지 우선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두 번째, 그중에서도 왜 ‘특정 인물’이 피고인인 사건의 결과만 통보되지 않았는지도 밝혀야 한다. 같은 검찰청 내에서도 어떤 사건은 정상적으로 주무관청에 통보가 된 반면, 일부 사건은 통보가 이뤄지지 않았다.
각 관할 검찰청은 모두 같은 시스템에 따라 일한다. 이들 모두 ‘인·허가 관련 범죄통보 지침’(대검찰청 예규)에 명시된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도 통보 의무가 뒤죽박죽 이뤄진 건 의아한 지점이다.
결국 통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검사들과 해당 사건의 피고인인 의료인 사이에, 유착 관계 혹은 ‘숨은 비리’가 있는 건 아닌지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검찰의 미통보로 면허 취소가 늦어지는 동안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은 의료인 및 약사 중 일부는 ‘취소되지 않은 면허’를 이용해 상당한 수익을 벌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와 환자들이 낸 병원비가 포함됩니다. 이 사건의 경우, 유독 특정 의료인에 대해서만 통보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통보가 되지 않음으로 인해 국민에게 피해가 발생한 때에도 해당합니다.(셜록의 공수처 고발장 일부)
셜록은 지난 9월부터, 감사원이 지적한 사례 47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 취재를 시작했다.(관련기사 : <‘검사가 살려준 의사들’ 47건 리스트, 모두 공개합니다>)
감사원은 2021년과 2023년 정기 감사보고서에서 검찰의 재판결과 미통보로 인해 의료면허가 취소되지 않은 의료인 등 총 47명을 확인해 지적한 바 있다. 이중 25명은 ‘취소되지 않은 의료면허’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 여기엔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와 환자들이 낸 병원비 일부가 포함된다.
16곳의 불법 안마방을 운영한 의사도, ‘영적인 힘’에 기대 환자를 죽게 만든 한의사도 그 47명에 속한다. 또한 △징역 3년의 중형을 받고도 의료면허가 즉각 취소되지 않은 한의사 △유죄 판결 이후 3년 8개월이나 지나도록 면허를 유지한 약사 △취소되지 않은 의료면허를 가지고 매달 8602만 원씩 돈벌이를 계속한 한의사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검찰의 잘못으로 의료면허 취소 처분이 수년간 지연됐다. 다른 기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다면, 영영 취소 처분을 내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검찰이 통보해야 할 사건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것도 아니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면허취소 대상이 되는 의료인의 수는 1년에 평균 20명도 되지 않는다.
2017년부터 2020년 4월까지, 3년 4개월 동안 의료면허 취소 대상이 된 의료인은 고작 65명. 그중 검찰의 미통보로 의료면허가 취소되지 않은 의료인이 15명이다. 네 명 중 한 명 꼴, 약 23%다. 면허취소 대상 전체 의료인 수에 비해, 검찰이 통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건 비중이 너무 높은 상황이다.
▲ 20일 셜록의 고발장을 접수한 공수처는 일주일 내로 담당 부서와 검사를 배정할 예정이다. ⓒ셜록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들에게 ‘생명연장의 꿈’을 선물한 검사들. 이들은 합당한 책임을 졌을까. 셜록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대검찰청에 △감사원이 지적한 미통보 사건 담당 주임검사들에 대한 징계 여부와 △감찰 계획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지난 13일, 징계 및 감찰 계획에 대해 “대검찰청 정보공개 세부시행지침 제5조에 따라 비공개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셜록이 직접 고발에 나선 건 그 때문이다. 검찰 스스로 해당 검사들에 대한 징계나 감찰 계획을 밝히지 않기 때문. 공수처 고발과 별개로, 셜록은 대검찰청이 책임 검사들을 직접 징계하고 감찰을 진행하는지도 끝까지 추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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