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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클러스터 일자리 346만개 생긴다는 정부, 수치 부풀렸나

한국은행 고용유발계수 대입시 110만개…전문가들 “세부적인 근거 없이 장밋빛 전망만” 비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경기도 수원 장안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자연과학캠퍼스 반도체관에서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 주제로 열린 세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4.01.15. ⓒ뉴시스
정부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부풀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가 제시한 수치는 346만개다. 한국은행이 산출한 고용 창출 지표를 대입한 수치는 110만개로, 격차가 크다.

16일 정부에 따르면,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서 창출되는 직간접 일자리는 총 346만개로 전망된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는 2047년까지 23년간 총 622조원이 투입된다. 삼성전자가 500조원, SK하이닉스가 122조원을 투자한다. 경기 남부 일대 2,102만㎡ 면적에 총 16개의 반도체 공장이 구축된다. 2030년 기준 770만장의 웨이퍼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산업단지로 계획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 반도체관에서 연 민생토론회에서 “앞으로 20년에 걸쳐서 양질의 일자리가 최소 300만개는 새로 생길 것”이라며 “당장 올해부터 향후 5년 동안 158조원이 투자되고, 직간접 일자리 95만개가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고용 창출 효과가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임금근로 일자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임금근로 일자리는 2,058만개로, 전년 동기 대비 38만개 늘었다. 정부 전망으로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서 매년 15만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건데, 한국에서 한 해 동안 생기는 일자리의 40%에 달하는 셈이다.
반도체는 고용 창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은 산업이다. 한국은행의 최신 통계인 2019년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고용유발계수는 1.8명이다. 모든 산업을 통틀어 고용유발계수가 반도체보다 낮은 산업은 담배(1.26명)와 석유정제(0.99명) 등 소수에 불과하다. 자동차 산업은 6.2명이다. 반도체 산업 고용유발계수는 제조업 평균 4.7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산업 평균 7.4명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자본집약 산업인 반도체로 대규모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니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반도체 투자가 향후 한국 일자리 창출의 반 정도를 떠맡게 된다는 뜻이고, 앞으로 한국은 고용 문제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된다”며 “수치가 지나치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통상적인 고용 창출 효과 산출 방식을 대입해 보면, 숫자가 안 맞는다. 고용유발계수는 특정 산업에서 최종 수요가 10억원 발생할 때 모든 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임금근로자 수를 이른다. 가령 자동차 산업 경우 투자가 이뤄지면 완성차뿐 아니라 타이어(고무) 등 부품 생산에 따른 고용유발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투자 금액인 622조원에 반도체 산업 고용유발계수 1.77명을 적용하면, 110만명 수준이다. 정부 전망치의 3분의 1도 안 된다.

 

 

 
정부 제시 수치 가운데 상당수는 공장·전력망 공사 인력으로 추정

정부가 산출한 신규 일자리를 분야별로 보면, 직접 고용 창출 효과로 193만명을 제시했다. 클러스터 내 공장 건설이 진행되면서 공장에 들어갈 반도체 장비 생산이 늘고, 원자재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인근 상권 활성화와 도로·전력·용수 등 인프라 건설 확대를 들면서 간접 고용 창출 효과를 142만명으로 전망했다. 다만, 구체적인 인과관계와 산출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인근 상권이 얼마나, 어떻게 활성화된다는 건지, 그로 인해 어떤 일자리가 얼마나 생긴다는 건지 불명확하다. 공장 운영 전문인력으로는 11만명을 잡았다.

일반적으로 고용 창출 효과를 평가하는 지표인 고용유발계수에서 직접적으로 유발되는 노동량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인력에 한한다. 즉, 공장 운영 전문인력 11만명이 이에 해당한다. 간접적으로 유발되는 노동량은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기업이 구입하는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의 일자리를 의미한다. 정부가 임의로 ‘직접 고용 창출 효과’라고 이름 붙인 193만명 가운데 공장 건설 인력을 제외한, 반도체 산업 내에서의 소부장 분야 인력이 포함된다.

정부가 ‘간접 고용 창출 효과’로 제시한 142만명은 고용유발계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기업이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야 고용유발계수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도로·전력·용수 등 인프라는 투자금 측면에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와 별개의 사업이다. 정부는 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대규모 전력망을 구축할 계획인데, 비용이 총 12조 5천억원으로 추산된다. 동해안에서는 원전·석탄화력발전 전력을, 호남에서는 태양광발전 전력을 끌어온다.

정부가 전망한 346만개의 고용 창출 효과 상당수는 반도체 공장과 전력망 구축 건설 인력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 2일 평택시 고덕산업단지 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배관 연결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7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윤 대통령이 말한 ‘양질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만 놓고 보면 고용 유발 효과가 그렇게 안 나올 것”이라며 “나머지 건설 설비 투자에서 늘어나는 인력을 종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높지 않아 직접적인 고용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며 “세부적인 근거 없이 장밋빛 전망만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산업통상자원부


향후 투자 집행 여부도 불확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대한 기업 투자가 계획대로 이뤄질지도 불확실하다. 반도체는 기술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경기 변동의 영향도 많이 받아, 20년이 넘는 장기 투자 계획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정부 발표는 새로운 게 아니라, 기업의 기존 계획을 모아서 내놓은 것”이라며 “투자 계획이 얼마나 지켜질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프라 구축을 비롯해 양산 검증을 위한 테스트베드와 인재 확보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미중 갈등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대응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투자는 국내외 여건이 조성돼야 현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고용 창출 효과를 부풀린 데에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전날, 당초 올해 종료 예정인 반도체 세액공제를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시설투자에 대해서는 대기업 기준 15%의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지난해 3월, 이른바 ‘K칩스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세액공제율이 8%에서 대폭 상향됐다. 정부는 최근 3년간 연평균 투자 금액 대비 투자 증가분에 대해 10%p를 추가 공제하는 임시투자세액공제도 연장할 방침이다.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지난해 종료된 상태다.

대기업 투자에 25% 고율의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특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투자 유인 효과가 미미해 기업의 기존 투자 계획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세로 세수가 줄어, 정부의 재정 여력도 약화되는 실정이다. 정부로서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고용 창출 효과를 내세워 반도체 세액공제 연장의 정당성을 강조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전날, 반도체 세액공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기업 퍼주기다’ 이런 얘기들이 있지만, 이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정세은 교수는 “정부가 감세를 강행하면서,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든다는 이유로 대기업에 과도한 이익을 몰아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우려된다”며 “투자 효과를 과장해,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 미미하고 부의 쏠림이 심화되는 문제를 덮어버리겠다는 태도로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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