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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적용 확대가 ‘격차해소에 위배된다’는 한동훈의 궤변

3년 전 정반대 주장 펼치며 중대재해법 반대한 권성동 “왜 큰 기업만 골라서 하나?”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반대하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과 2024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연장 주장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민중의소리

 

 

“충분한 자력과 인력을 갖춰 이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조치를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대규모 사업장이나 대기업들이 있다. 반면, 그럴 자력과 인력을 갖추지 못한 50인 미만 사업장이 있다. 이 양자 간 격차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당의 생각이다.” - 2024년 1월 25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 말이다.

‘대기업’과 ‘50인 미만 기업’은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인데, 한 비대위원장의 주장은 2021년 1월 해당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대하며 내세운 논리와 정반대다. 법이 통과될 때는 ‘곧바로 적용되는 대기업 노동자’와 ‘3년 뒤 적용되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사이에 격차가 발생한다며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적용 시기를 달리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가, 막상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시기가 되자, 이번에는 사업장 규모를 고려해 유예기간을 더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를 위한 주장을 펼치다가 정반대의 논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해당 법안은) 우선적으로 50인 이상 기업에만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안전사고라는 것이 종업원이 많고 큰 기업만 골라서 발생합니까? 피해자 입장에서는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사망하는 피해자나 50인 이상의 기업에서 사망하는 피해자나 죽음이라는 결과는 동일합니다.” -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2022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 2223명
법 시행 후 사업주 실형은 고작 1건
모든 영세사업자 범죄자될 것이라는 궤변

 

통계로 보는 2022년 산업재해 ⓒ안전보건공단 디지털전략실

중대재해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사고를 의미한다. 또는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뜻한다.

여권은 마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무조건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법으로, 각 사업장의 규모와 특성에 따른 안전·보건 조치를 위해 노력한 사업주까지 처벌한다는 내용은 없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연장을 주장하며 한 말을 보더라도,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지나치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송 의원은 2022년 1월 27일 법시행 이후 사업주를 처벌한 사례는 “12건”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12건에서조차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고작 1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밝힌 2022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223명(사고 사망자 874명, 질병 사망자 1349명)이다. 222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업주는 고작 1명인 것이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면 마치 식당, 찜질방, 카페, 빵집 등 모든 영세사업자가 당장 범죄자가 될 것처럼 말하는 여당의 주장은 거짓선동에 가깝다.

원안을 대표발의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이 법은 처벌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라며 “살인죄가 있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죄인이 되는 게 아니듯, 이 법이 있다고 바로 범죄자가 되는 게 아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고 비판했다.

 

 

 

정부 지원 가능토록 법적 근거 마련했건만
아무런 대책 마련 안 하던 윤석열 정부
강은미 의원 “정부가 제대로 역할 안 한 것”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01.25. ⓒ뉴시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대기업과 50인 미만 사업장 사이의)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그 격차를 해소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소규모 사업장까지 적용하는 것은 정치가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또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은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에 가깝다.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백혜련 법제사법위원장 대리의 ‘중대재해처벌법 대안’ 제안 설명을 들어보면, 당시 여야가 얼마나 격차 문제를 해소하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논의 과정에서 원안에 없던 정부의 지원 규정을 신설했다. 중소기업 등은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고 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에 안전보건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정부가 예산이라든지 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근거(조항)를 만들었고, 준비기간을 충분히 두기 위해 유예기간을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3년, 그 이상 기업은 공포 후 1년으로 했다” -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 백혜련 법제사법위원장 대리

법에 정부가 50인 미만 사업장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고, 시행 시기도 규모별로 차등 적용한 것이다. 따라서, 국회가 할 일을 안 한 게 아니라 정부가 할 일을 안 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강은미 의원은 “법 제정 당시 준비 격차를 해소하라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적용을 연기했다”며 “유예된 시간 동안 사고 예방 지원을 안 한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여태껏 무책임으로 일관하다가 이제와 준비 안 됐다고 미뤄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여당에 묻고 싶다.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다쳐도 되고, 죽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2021년 1월에 권성동 의원이 본회의에서 한 발언을 돌려 드리고 싶다”고 비판했다.

 

 

 

법 반대하는 보수논객조차
“국민의힘은 참 이상하다”

 

2021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6명 중 찬성 164명 반대 44명 기권 58명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다. ⓒ국회의사중계시스템 화면 갈무리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6명 중 찬성 164명 반대 44명 기권 58명으로 통과됐다. 해당 법안이 원안보다 한참 후퇴됐다는 비판 때문에 일부 민주당·정의당 의원 등이 기권했지만,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도 차마 반대하지 못했다.

이에 해당 법을 당초부터 반대해 온 보수논객조차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시기가 온 뒤에야 갑자기 반대하는 국민의힘의 모습’에 “참 이상하다”고 비판했다.

정규재 전 펜앤드마이크 주필은 26일 페이스북에 “중대 재해법은 지금의 국회가 바로 3년 전 여야가 충분한 토론을 거쳐 통과시킨 법이다. 반대는 여야 합쳐 44명에 불과했다. 의원 각자의 자유로운 투표의 결과였다”며 “국민의힘은 그때는 무엇 하다가 지금 와서 민주당을 모든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난하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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