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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출신 이복현, 두 달간의 금리 활극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도 넘은 개입이 구설수를 낳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로 은행 대출금리가 널을 뛰었다. 무턱대고 비난할 일은 아니었다.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금융당국 개입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검사 출신 아마추어 금감원장은 그 과정과 결과 모두 실패하면서 부작용과 불확실성만 키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8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기업과 주주행동주의의 상생발전을 위한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04.18. ⓒ제공 : 뉴시스

엇박자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는 안정화되던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7월 2일 금융감독원 임원회의

틀린 말은 없었다. 주택가격 상승세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가계부채 규모가 덩달아 빠르게 불어난 시점이었다. 문제는 그의 경고와 정책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금리가 최저 연 1.6%에 불과한 ‘신생아특례대출’을 27조원 규모로 공급하고 있었다. 정책대출이 가계부채 급증에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복현 금감원장 TV 출연 불과 7일 전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규제를 별다른 설명도 없이 연기했다. 유동성 공급과 “무리한 대출 확대” 경고 시그널이 동시에 나왔다.

금감원은 다음날 은행연합회와 17개 국내 은행 가계대출 담당 부행장을 소집했다. 은행권에 대출 관리를 주문했다. “지적 사항이 나오면 엄중 조치하겠다”는 방침이 부행장들에게 전해졌다. 경고를 받은 은행권은 앞다퉈 대출 금리 올리기에 나섰다. 4대 은행은 7,8월 두 달 동안에만 4~5차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렸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두 달간 다섯 차례 금리를 올렸고, 국민은행은 네번, NH농협은행은 두번, 하나은행은 한 번 금리를 올렸다. 한때 주담대 금리 하단은 2%를 찍었지만, 연이은 가산금리 인상으로 대부분 3% 이상으로 올라섰다. 평균 주담대 금리는 4%로 치솟았다. 


 

과유불급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 은행 자율성 측면에서 개입을 적게 했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
-8월 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 출연

더 강한 메시지가 나왔다. 은행권은 ‘대출 조이기 2라운드’에 돌입했다. 주담대 금리 인상에 더해 생활안전자금 목적의 주택담보 대출 한도를 줄였다.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주담대는 대출 기간을 최장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했다. 다른은행의 주담대 갈아타기 대출도 일부 중단됐고, 원금 상환 거치 기간은 아예 폐지됐다. 1주택자의 전세대출은 금지됐다. 전세대출과 신용대출도 조였다. 복잡한 조건을 걸어 전세대출을 어렵게 만들었고, 1억~1억5천만원 수준이던 마이너스 통장 한도는 5천만원으로 제한했다.

이른바 ‘실세 금감원장’ 파워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부작용이 속출했다. 40년 상환을 예상하고 자금 계획을 짰던 사람들은 날벼락을 맞았고, 마통 영끌로 잔금을 치르려던 주택 매수자는 멘붕이 왔다. 은행권 대출을 피해 지방은행이나 보험사 등 2금융권 대출로 풍선효과가 번졌다. 과유불급이었다.


 

책임전가 그리고 고집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대책은 지양해야 한다…은행권 대출 축소 대책이 이미 쏟아진 이상 이젠 효과라도 제대로 내야 하지 않겠냐”
-9월 4일 현장간담회

불만이 쏟아지자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 제목이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였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비난의 화살을 금융권에 돌렸다. 그는 “투기성 대출은 제한하되 실수요 대출을 제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금융권 대출 정책이 급작스럽게 바뀌면서 대출 가능 여부나 한도에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대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은행권을 압박하다, 성에 차지않자 멱살 잡고 쥐어짠 장본인이 이제 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은행권에선 “당국 메시지에 따라 취급 방침을 결정한 것인데, 이제 와 공감대가 없었다고 하니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3.11.09. ⓒ제공 : 뉴시스

이복현 금감원장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실수요 보호와 가계대출 관리,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권 대출 축소 대책이 이미 쏟아진 이상 이젠 효과라도 제대로 내야 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현실은 초보 금감원장의 생각과 달랐다. 주택가격은 멈추지 않고 상승했다. 주택거래량은 과거 급등기 시절까지 늘어났다. 8월 한달에만 주택담보대출이 8조2천억원 늘었다. 역대 최대폭 증가다.

애초 될 일이 아니었다. 금융감독원장의 말 한마디, 은행권의 대출 취급 정책 잔꾀로 부동산 심리가 가라앉을 리 만무했다. 정공법은 무시한 채 꼼수만 부리다 주택급등은 막지 못했다. 아파트 가격 조절 제도는 이미 많다. 규제지역으로 지정하고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높이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다. 현행 LTV는 서울도 수도권도 70%에 달한다. 10억짜리 주택에 7억까지 대출이 나온다. 규제지역으로 묶으면 대출금액은 집값의 40%, 4억까지 주저앉힐 수 있다. 지금 불고 있는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상당부분 꺼뜨릴 것으로 기대되는 정책수단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정확히 국토교통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반대다. 저금리 정책 대출 규모를 계속 키워나가고 있다. 투기 세력 입장에서 ‘수익률’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는 세금이다. 양도세와 취득세, 보유세 세가지 모두를 낮췄다. 양도세 중과는 사실상 사라졌고, 취득세는 최대 200만원까지 깎아준다. 보유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은 3년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재건축 규제를 완화했고, 분양아파트 전매 제한, 실거주의무 제한도 모두 풀었다. 부동산 규제 정책 수단을 모두 내팽개치고, 금감원장의 말 한마디로 가계부채를 잡는다? 애초에 될 일이 아니었다.


 

후퇴일까


결국, 실세 금감원장은 한 발 물러섰다. 지난 10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그는 “감독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은행이 각자의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관리해 왔는데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부분에 있어서 국민과 은행, 은행창구 직원분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9.10.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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