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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여자축구대회 '뻥 뚫린' 탈의실, 승인해 준 축협 되려 "남자도 똑같다"

"수치심 든다" 토로에 "최소한의 대회 운영 기준 충족했다"는 축협...에어컨도 없는 부실 환경 논란에 '예산 부족' 거론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9일까지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개최된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경기장에 설치된 천막.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에 따르면 이 천막은 선수들의 탈의실 겸 휴게공간 등으로 제공됐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제공
올해 여름, 불볕더위 속에서 진행된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의 '뻥 뚫린 탈의실'이 논란이 된 가운데, 대회 주최 측인 대한축구협회(축협)가 이 사실을 사전에 알고도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진행된 이번 대회는 '천막 로커룸', '가림막 없는 탈의실'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치러져 선수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정몽규 축협회장은 "여자 축구 활성화"를 자신의 주요 목표라고 밝혀왔지만,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는 축협의 무관심 속에 지속적인 시설 미비 문제 겪고 있었다.

1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실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받은 '제23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개최 승인' 제목의 축협 문서를 보면, 축협은 이번 대회 승인 조건으로 각종 경기장 내 시설물을 구비할 때 '3면이 막힌 천막'을 설치하겠다는 한국여자축구연맹의 요청을 승인했다. 한 면이 뚫린 '3면만 막힌 천막'은 여성 선수용 휴게실, 탈의실 그리고 심판진 휴게실에 쓰이는 것이었다. 정 회장의 직인이 찍힌 이 서류를 축협은 연맹 측에 지난 6월 회신했다.

그리고 7월 26일, 대회가 막을 올리자 곳곳에서 문제가 속출했다. 부실한 경기장 환경에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건 아닌 것 같다", "수치심이 든다" 등 비판이 터져 나왔다. 3면이 막힌 천막은커녕 사방이 뚫린 천막도 다수였다.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는 축협에 등록된 60여 개의 여자 전문 축구팀이 참가하는 대회로 초등부·중등부·고등부·대학부·일반부로 나누어 경기를 진행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선수들뿐만 아니라 남성 지도자, 심판진, 경기 관계자 등이 경기장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의미다.

당시 현장을 방문한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선수협) 측 설명을 종합하면, 여성 선수와 심판진은 화장실에 한 데 섞여 환복하고, 대기 줄이 길어지자 개방된 천막 탈의실 또는 버스 안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선수들의 휴식 공간이기도 한 작은 천막에 에어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가 연속적으로 펼쳐지다 보니, 전반전 종료 뒤 여러 개의 팀이 경기장 하나를 두고 몸을 푸는 상황도 펼쳐졌다.

참가 선수 A 씨는 선수협 측에 "가림막도 없고 그냥 알몸이 노출되는데 정말 자괴감이 든다. 옷을 갈아입는 것은 경기에 나서기 위한 첫 루틴인데 이것부터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선수 B 씨는 "천막에 앉아 있어도 더워서 숨을 쉴 수 없다. 전반전 뒤 로커룸에서 재정비하고 후반전에 나서야 하는데, 공간이 다 뚫려있어 전술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위급한 상황의 부상 선수에 대한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경기 준비 단계에서부터 마땅한 휴식 공간이 없으니 선수들이 내내 폭염에 노출돼 있고, 결국 한 선수가 경기 중 호흡 곤란을 호소하다 병원으로 호송됐다. 올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온열질환 사망자가 발생한 경남은 온열질환자가 지난해보다 67%나 증가했을 정도로 '역대급' 폭염을 기록한 지역이다. 경기 참가자 모두가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준비된 시설은 턱없이 부실했다. 참가 선수 C 씨는 "지난 선수권 경기 때는 머리에 출혈이 있는 선수가 자가용을 타고 이동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도 밝혔다.

 

 

 

대한축구협회가 승인한 2024년 '제23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개최 조건. ⓒ대한축구협회 공문 갈무리,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실 제공

대한축구협회가 승인한 2024년 '제23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개최 조건 공문에 찍힌 대한축구협회장 직인. ⓒ대한축구협회 공문 갈무리,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실 제공


"불이익 걱정" 참아온 선수들..."남자 축구도 똑같다"는 축협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운영의 문제점은 올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김훈기 선수협 사무총장은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여성 선수들이 제대로 옷 갈아입을 공간이 없는, 탈의실조차 보장이 안 된 건 올해뿐만 아니라 지속돼 왔던 문제다. 선수들은 한 번도 보장받은 적이 없으니, 힘들어도 그게 당연한 줄 알고 경기를 했다"며 "그동안 불이익을 당할까 봐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런 환경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건 대회 몇 십 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창녕군과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체결한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협약서'에 따르면, 대회를 개최하는 동안 군은 매해 연맹에 지방보조금으로 대회 유치금 2억 8천만 원을 지급한다. 경기장 및 연습구장 시설도 창녕군이 확보하고, 경기장 내 운영본부, 심판 대기실, 선수 대기실 등 설치 및 비용을 창녕군이 부담하는 계약 구조다.

다시 말해 주최 측인 축협이 경기장과 선수들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더 섬세한 부대시설 설치를 조건으로 제시했다면, 창녕군은 이에 맞게 준비를 했어야 하는 위치다. 하지만 올해는 '3면 천막' 설치에 그쳤다. 자연스레 창녕군 측도 관련 비용 부담을 던 셈이다. 축협 측에서 더 까다로운 시설물 구비를 제시했다면 경기장 상황은 달랐을 수 있다.

여자 축구 대회 운영의 폐쇄성과 무관심은 대회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주요 요인이다. "국내 여자 축구 발전"은 정몽규 회장이 취임사는 물론 자서전에서도 밝힌 목표였지만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지난해에는 대회 생수 구입 등 운영 예산이 감액 조정된 일이 있을 정도로 상황은 빈약하다.

김 사무총장은 "왜 이렇게 매년 선수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선수권 대회를 유치하고 있는 건지, 그 부분부터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창녕에서 경기를 열었는지, 이 경기장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다"며 "최소한 선수들이 기본적인 부분, 인권은 보호받았으면 좋겠다. 경기를 주관하는 여자축구연맹은 물론, 상위 기관인 축협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축협 측은 통화에서 "예산상의 문제"를 거론했다. 축협 여자축구·저변확대팀 관계자는 "축협 자체 예산이 매우 부족해서 연맹 측에 돈을 막 내려주며 '시설물 기준을 맞추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대회를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했다 싶으면 그에 대해 승인한 것"이라며 "남자 축구도 기본적인 승인 조건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장 컨디션은 다 똑같다. 똑같은 조건에서 경기한다"며 " 남자들은 이런(탈의실) 걸로 컴플레인 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이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승인해 주다 보니까 선수들의 인권, 불편에 대해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던 건 맞는 거 같다. 연맹 측에 향후 11월 추계 대회를 포함해 개선을 안내했다"고 했다.
 

“ 김도희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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