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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게 폭행하고 사회적 불구로... 가해자의 이름 공개합니다

[1980 사북, 늦은 메아리] <왕사남> 천만 넘는 나라에서 46년간 방치된 이 사건

26.03.24 06:48최종 업데이트 26.03.24 06:48

특별기획 '1980 사북, 늦은 메아리'는 박봉남 감독의 영화 <1980 사북> 전국 상영을 계기로 공론화한 사북 사건을 단지 과거사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국가의 대응, 공동체와 시민 사회의 변화 과정을 추적 기록해 국가 폭력의 기억과 치유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기자말]

영화 <1980 사북> 스틸컷엣나인필름

'S'의 이야기

그는 46년을 살았다. 태어나 자라고 학교 들어가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다시 자녀를 낳아 그 아이들이 성인의 문턱에 와 있을 시간. 46년이면 '세월'이라는 말이 붙어도 좋을 만큼, 누구에게든 삶 전체가 완성되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에게 지난 46년은 마치 존재할 가치가 없었던 것 마냥 삶 전체가 송두리째 부정 당하고 파괴되어 온 시간이었다. 그동안 그는 부당하게 덧씌워진 누명과 낙인 속에서 불명예를 안고 숨죽이며 살아왔다.

가장 가까운 이웃들이 제일 먼저 그를 멀리했고, 심지어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직장을 잃고 변변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해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가르치지도 못했고, 몸은 나이보다 더 늙고 병들었다.

어디 가서 높은 분들에게 좀 이야기를 하자고 해도 본체 만체,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들은 체 만 체다. 왜곡된 과거 때문에 어디 가서 당당히 말하기도 힘들었던 그의 이름을 그냥 S라고 하자.

'K'라는 두려운 이름

S는 누구 때문에 삶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은 금기였기 때문이다. 스무 해가 지나서야 S는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S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 잔혹하게 폭행하고 사회적 불구로 만들고 가정을 파탄 나게 만든 자들의 정체는 그로부터 거의 십 년이 지났을 때 처음으로 밝혀졌다. 입에 올리기가 두려운 그 단체의 이름은 일단 K라고 해두자.

밝혀진 데 따르면 K는 한 사람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2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그 짓을 했다고 한다. 그 사이 수많은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 병들고 죽어갔지만 K는 그들에게 배상은커녕 사과 한 마디조차 없었다. 이미 책임이 밝혀진 이상 뒤늦게라도 사과를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주변 사람들이 오래 전 권고를 했지만 K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최근에도 또 한 번 S에게 사과하고 필요한 구제 조치를 하라는 조언이 나왔지만, 당사자인 K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K는 그 사이 힘을 잃은 적이 없었고 대를 이어 그 지위를 이어왔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S와 같은 피해자를 구제할 힘이 충분했음에도 K는 수수방관했다.

대표자가 바뀔 때마다 측근들에게 물어보면 '예전에 그런 일이 더러 있어서 S를 콕 집어서 특별히 언급하기도 그렇고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멋지게 완성하고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함께 행복을 누리는 동안, S는 삶 전체를 부정 당하고 여전히 고통 속에 가족 전체의 삶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핵심 당사자인 K가 해야 할 일 중에 이보다 급한 일이 무엇인지 S는 궁금할 뿐이다.

'지연된 정의'에 대한 심각한 오해

K가 다른 일로 바쁘다며 방관하는 동안, 수많은 S들의 삶이 속절 없이 무너져갔다. S와 같은 시기에 K에게 피해를 당했던 몇몇이 최근에 또다시 세상을 떠났다. 양심을 가진 지식인들이 나서 K에게 점잖은 어조로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늦었지만 '지연된 정의'를 실현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지연된'이라는 말에 담긴 시기일 뿐 '정의'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착각이 있다.

'지연된 정의'가 말 그대로 그저 '뒤늦게 작동하는 정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오해다. 지연된 정의는 훼손된 정의다. 정의는 힘이 세지만, 지연된 정의는 위력이 약하다. 정의는 제때에 작동할 때 효력이 크고 영향력도 크지만, 뒤늦게 작동할 때는 그 효력과 힘에 훼손이 생긴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이 완성되어야 할 시간 동안, 거꾸로 삶이 속절 없이 무너져 폐허가 되었는데 지연된 정의로 도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를 이렇게 만든 가해자는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는데 지연된 정의가 어떻게 온전한 정의일 수 있는가? 지연에는 그 시간 만큼의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하지만 K와 그 핵심 측근들은 '지연된 정의'를 실현하자는 점잖은 충고조차 들어주지 않을 태세다.

왜 지금 그 이름을 불러야 하는가

영화 <1980 사북> 스틸컷엣나인필름

마흔여섯 번째 봄이 그냥 지나가기 전에, 이제 우리가 S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어야 한다. 그의 얼굴에 찍힌 낙인을 지우고, 그의 등을 짓누르고 있는 멍에를 벗겨주어야 한다.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조선의 어린 생명을 추모할 따뜻한 마음이 천만이 넘는다면, 비극적인 현세의 삶을 살고 있는 S의 어린 아이들을 보살피고자 하는 마음은 적어도 수백 만은 되어야 맞다.

눈을 잠시 돌려 S를 바라보자. 우리가 제대로 몰랐고,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S의 이름은 바로 '사북'이다.

간절히 기다려온 이 찬란한 새봄이 그냥 지나가기 전에, 이제 우리는 '사북'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K의 이름도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딴 곳을 쳐다보는 그 시선을 돌리게 하고, 더 늦기 전에 당장 행해야 할 그의 오래된 책무를 다시 한 번 일깨워야 한다. 권력을 찬탈한 폭군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 '왕과 사는 남자'에 얽힌 수백 년 전의 이야기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천만이 넘는 나라라면, 국가 폭력에 유린 당한 '1980사북'에 얽힌 수십 년 전의 이야기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왜 이토록 적은가에 대해 문제를 느껴야 마땅하다.

이제 귀를 잠시라도 열고 K의 입을 바라보자. 더 이상 '사북'을 방관해서는 안 될 가장 큰 당사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차마 말하기 민망했던 K의 이름은 바로 '국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북사건

1980년 4월에 발생한 사북사건은 이른바 '광주사태'와 함께 그 해 '10대 뉴스'에 선정될 만큼 당시에는 널리 주목을 받았고, '부마', '광주'와 함께 민주화 이행기에 일어난 이른바 "3대 사태"로 언급되었던 큰 역사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전두환 신군부가 통제하고 왜곡한 집단 기억 속에서 폭력 난동 사건으로 낙인 찍혔고, 수사당국의 협박과 당사자들의 침묵 속에 오랫동안 잊힌 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비상계엄 시기 작은 광산 마을에 살던 수천 명의 광부와 부녀자들까지 대거 가담했던 이 사건의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사건의 주요 당사자들이 20년 만에 용기 있게 침묵을 깨고 피해 구제를 김대중 정부에 청원하였고,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는 방대한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이 본질적으로 국가 폭력에 의한 인권 침해 사건이라고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국가 사과와 피해자 구제 조치를 권고하였다.

그 이후 관련자들의 추가 증언과 역사가들의 후속 연구를 통해 이 사건의 발단과 악화와 은폐의 모든 국면에 국가 폭력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으며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국가 폭력이 자행 되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2024년 제2기 진회위는 추가 조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 사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서 국가의 사과를 재차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사과나 후속 조치는 현재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유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방치되고 있다.

2024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장편 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한 영화 <1980 사북>(감독 박봉남)은, 비상계엄 치하 1980년 4월 강원도 광산촌 사북에서 일어난 광부들의 항쟁과 그 전후로 벌어진 국가폭력의 실상, 그리고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는 공동체의 상처를 뒤늦게 시대의 공론장으로 불러낸 작품이다(관련 기사 : '사북사건' 6년의 기록, 아들뻘 군인에게 맞은 아버지와 무너진 가족).

지난해 12월 2일 국회 초청 상영회를 계기로 "허공 중에 흩어져서 되돌아오지 않는 45년 전 광부들의 외침에 이제라도 화답하겠다"는 뜻으로 1980사북시민상영위원회 <늦은 메아리>가 출범했고, 국정 최고 책임자의 공식 사과 이행을 목표로 서명운동과 영화 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시민 초청 상영회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4월 21일은 사북항쟁 제46주년 기념일이다.

* 영화 <1980 사북> 오마이뉴스 초청 무료 상영회 신청하기(https://omn.kr/2hfje)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www.jcrc.kr(정선지역사회연구소 1980사북 특별페이지)에도 실립니다.

필자는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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