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분은 언제 처음 알게 됐나요?
서지현 : "언니 기억해요? 언니가 임신 중이었으니까. 그때가 몇 년도죠?"
박은정 : "2005년. 그때 여검사 워크숍?"
서 : "여검사 워크숍에서 처음 봤어요. 제가 2004년, 언니가 2000년에 검사가 됐고 그때만 해도 여검사 수가 많지 않을 때라 매년 여검사 워크숍을 했었어요. 워크숍 끝나고 노래방에 갔는데 언니가 임신해서 배가 진짜 이만했거든요. 너무 열정적으로 노사연의 <만남>을 부르는 걸 보고 '저 언니 얼굴은 인형 같은데 굉장히 열정적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박 : "기억이 안 나는데. 돌아가면서 다 부르는 분위기였을 거예요. 제가 나서서 노래를 불렀을 리가 없어요. 노래를 못하니까(웃음)."
- 그때는 서로 얼굴만 아는 정도였겠네요.
박 : "네. 지현이는 그 이후 일을 잘해서 여성 최초 특수부 검사가 됐죠. 그때 인터뷰 기사로 지현이를 봤어요. 너무 멋지다 생각했죠. 저희는 막판에 법무부에 함께 있었던 때 말고는 같이 근무해 본 적이 없어요."
- 2018년 서지현의 미투와 2020년 박은정의 감찰 당시 서로를 어떻게 바라봤었나요.
박 : "2018년 미투를 보며 매우 충격적이었죠. 성폭력 피해뿐만 아니라 인사 불이익까지 있었잖아요. 당시 지현이가 제게 연락도 했었는데 제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했죠. 지현이 혼자 외롭게 싸웠던 거예요. 그렇지만 서지현의 힘은 대단했어요. 혼자 고립돼 싸우면서도 끝까지 버티며 모두의 관심을 이끌고 지지하게 만들었잖아요. 제가 항상 지현이에게 이야기해요. '너는 역사책에 나올 것'이라고. 그때 혼자 싸웠던 경험 때문에 윤석열을 감찰할 때 지현이가 유일한 제 편이 돼줬어요."
서 : "절박해 본 사람만이 그 절박함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미투 당시) 저는 검찰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절박했고, 윤석열 감찰 당시 언니도 절박함에 부딪히고 있었거든요. 감찰 과정에 관여한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한 발 뺐어요. 실질적으로 감찰한 사람은 언니밖에 없었죠. 많은 분들이 저를 여성 인권만 얘기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미투 당시 출연한) JTBC 인터뷰를 보면, 인터뷰에 나선 첫 번째 이유로 검찰 개혁을 꼽았어요. 그토록 부패한 검찰은 반드시 개혁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제 피해 사실을 이야기했죠.
하지만 검찰은 저를 음해했고 당시 청와대 등 정부 측은 그 음해를 믿었죠. 제 힘이 역부족이었던 거예요. 그러다 언니가 (윤석열을 감찰하며) 검찰을 개혁할 수 있는 국면에 앞장섰고, 저는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언니를 어떤 식으로든 도와주고 싶었죠."
검찰 떠나던 날
- '검찰정권'으로 불리는 윤석열 정부에서, 두 분은 검찰을 떠나야 했습니다. 검찰을 떠날 당시 심경을 떠올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박 : "조용히 개인의 삶을 살고 싶어 사표를 냈었어요. '검찰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할 일은 다 했다' 생각하고 낸 사표였죠. 그런데 검찰은 사표를 받아들이지 않고 갑자기 징계를 통해 저를 해임했어요. 강제로 검찰을 나와야 했죠."
서 : "검찰은 2년 동안 언니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어요.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었고 압수수색 등 너무 큰 고통을 받았죠."
박 : "저는 직장생활 23년 동안 착실하게 일했어요. 되게 모범적인 공무원 스타일이거든요. 때문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공직 생활을 해임으로 마무리하게 돼 당황했어요. 부모님 뵐 면목도 없었고 매우 힘들었죠. 그래서 소송을 통해 다시 검찰로 돌아가 명예롭게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해임 취소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 : "저는 윤석열 정권 출범 5일 만에, 한동훈 장관 취임 하루 전날 전화를 받았어요. 당시 법무부에 파견돼 디지털성범죄대응TF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기자에게 TF에서 만든 제안 법률 권고안 책자를 전달하고 설명한 직후였죠. 오후 4시쯤 법무부에서 전화가 와 '내일부터 성남지청으로 복귀하라'는데, 퇴근 2시간 전에 이런 통보를 하는 건 사표를 쓰라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바로 사표를 냈죠."
박 : "한동훈(이 법무부장관으로) 들어오기 전에 빨리 잘라야 했던 거죠."
서 : "(검찰에서) 말도 안 되는 인사를 하는 건 나가라는 뜻이에요. 안 나가면 더 큰 모욕을 줄 거라는 협박이자 경고이기도 하죠. 사실 2018년 미투 때도 사표를 써놨었고 당시 법무부 최고위 간부가 저를 여러 번 불러 나가라고 압박했기 때문에 언제든 나갈 준비는 돼 있었어요.
하지만 TF 위원들 임기가 3개월 이상 남았었고 한창 논의 중인 게 많았어요. 제가 없어지면 TF가 해체되는 건 너무도 명백했죠. 실질적으로 활동한 8개월 동안 40여 회 회의를 열어 11개 권고안, 60여 개 조문 개정 방안을 쏟아낼 정도로 성과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어요. 지난해 5월 딥페이크 사건이 터졌을 때 TF 해체 이후 어떤 전문적 논의나 연구가 없었던 것을 알고 놀랐어요.
서른 살에 검사가 돼 18년 동안 근무하고 퇴직했어요. 제 젊음과 열정, 인생 전부를 바친 검찰이었지만 솔직히 떠날 땐 홀가분한 마음이 더 컸어요. 여성 검사 최초로 특수부에 들어갈 만큼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항상 벽은 높았고 성폭력 피해 이후엔 숨쉬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간이 계속됐죠. 가끔 언니와 얘기해요. '우리 거기서 죽지 않고 살아서 나온 것이 기적이다'라고요."
박 : "저야 감찰이라는 직무를 하다가 공격을 받은 거지만 서지현은 피해자잖아요. 공격받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는 거죠. 저에 대한 공격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지현에 대한 공격은 폭력이죠."
서 : "언니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미투 당일 간부급 여성 검사들이 제 인터뷰를 보고 '(서지현이) 뜨려고 거짓말하는 거다'라고 얘기했다는 거예요. 검사들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죠. 그 검사들은 저와 한 번도 근무해 보지 않았어요. 저를 알지 못하는 검사들이었고, 그들 모두 성폭력 사건의 경우 여성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무고율이 극히 낮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일선에서 수사하는 검사들이 실체를 알아보기도 전에 그런 편견을 갖는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어요."
"후회는 없지만"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