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광경 . 북한은 6월 갈마해안관광지구의 본격적인 개장을 예고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607_109057_3110.png)
2025년 6월 북한이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의 본격적인 개장을 예고했다. 동시에 이 지역을 대상으로 한 「원산갈마해안관광특별구법」이라는 특구법이 5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35차 전원회의에서 심의·채택되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시설규모는 호텔 12개, 콘도 27개 동, 펜션과 민박 등 총 2만 개에 가까운 객실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단순한 관광 인프라의 조성이 아니라, 북한의 경제전략 전환, 외교·군사 정세 변화, 한반도 평화 체제 재편과도 밀접히 연관된 중대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관광지 개발을 넘어선 ‘경제전략의 제도화’
북한은 원산 갈마 지역을 금강산 관광지구, 마식령 스키장과 연계된 복합 관광지로 개발해 왔다. 2014년 6월 개발 계획 발표 후 같은 해 7월 착공했다. 그러나 미국 주도 유엔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의 이중 압박으로 완공이 지연되었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이 지역을 직접 시찰하며 “지방 진흥과 나라의 경제 장성을 추동하는 전략적 지대”라고 밝힌 것은 단지 관광 사업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으로 격상시켰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에 새로 제정된 「원산갈마해안관광특별구법」은 외자 유치, 투자기업 운영, 조세·행정 특례 조항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기존의 일반 경제개발구법과는 별도로 설계되었다. 이는 북한이 경제특구를 보다 정밀하게 제도화하여, 외국인 투자자와 협력국을 대상으로 예측 가능성과 제도적 안정성을 보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전략국가화와 ‘경제적 다극화’ 실험
북한은 2023년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전략국가 건설의 두 축은 강력한 국방력과 자립적 경제”라고 천명했다. 원산 갈마 관광지구는 바로 이 자립경제의 상징적 실험장이다. 특구법을 통해 법적 안정성을 부여하고, 관광·물류·교통 인프라를 집중 배치하는 방식은 기존의 군사 우선 전략을 보완하는 ‘경제적 다극화’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전략국가 구상이 단지 핵무력 고도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제도적 개방과 통제된 시장화, 지역 특화 개발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는 경제·군사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시키고 있다. 연해주 관광객의 전세기 방북 추진, 북러 교통망 복원 등이 논의되고 있으며, 원산 갈마 지역은 이 새로운 관광 루트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중국 역시 단둥·혜산·훈춘 등 국경 지역에서 관광특구 개발을 추진해 왔고, 북한의 특구법 제정은 이러한 지역 기반 협력 확대의 제도적 토대가 된다. 북은 자력갱생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북러·북중 협력 속에서 제한적 개방과 외화 확보를 꾀하는 전략을 제도화하고 있다.
중국 및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라선(나진·선봉) 경제특구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개방이 이루어졌다. 2025년 2월 말 서방 단체관광객을 받아들였는데, 약 3주 만에 외부 정보 유입, 내부 실상 노출 등 악영향 우려로 관광을 중단한 바 있다. 5월 평양에서 열린 국제상품전람회에 외국인 관광객이 초청되었으며,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 방문도 일정에 포함되었다. 이는 2020년 이후 처음으로 비(非)러시아 관광객에게 허용된 사례이다. 백두산 인근의 삼지연시도 3월 1일부터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게 공식 개방되었다. 개인 자유여행은 허용되지 않고 하루 입국자 수는 300명으로 제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대화재개 요청과 ‘경제 카드’의 시그널
트럼프는 3월 13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며, 김정은 위원장을 "그와 매우 잘 지냈다.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와의 관계를 재개할 의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4월 1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김정은과의 소통이 있다" "언젠가 그와 관련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미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훌륭한 해변을 가지고 있다. 포탄을 바다로 쏘는 장면을 보면 정말 멋진 전망이다. ‘저기에 콘도를 지으면 좋겠군’이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발언을 통해 북한의 해안 지역이 관광지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북한이 원산 갈마 관광지구를 개장하고, 특구법까지 제정한 시점은 이러한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한 사전 포석으로 읽힌다. 트럼프가 북에 경제 인센티브를 제시하려 할 경우, 북한은 이미 준비된 특구법과 관광지구라는 실물 기반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경제 카드’를 복원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반영한다.
과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협력의 결정적 경로였다. 원산 갈마 관광지구가 제도화된 특구로서 개방된다면, 장기적으로 남북 경협 복원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윤석열 내란세력의 대북 적대로 단절되어 있으나, 6.3대선으로 등장하는 새 정부가 미국의 간섭을 극복하고 남북합의 실행의지를 확고히 갖출 경우, 이 관광특구는 남북 협력의 실질적 교두보로 작용할 수 있다. 나아가, 한반도 평화경제 구상을 다시 실현 가능한 논의로 되살릴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남북 경협 복원과 한반도 평화체제에 주는 함의
원산 갈마 관광지구 개장과 특구법 제정은 북한 내부에서 경제개발과 외교 전략의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는 단지 관광지 하나의 문제를 넘어, 북한의 ‘전략국가화’ 구상 속에서 경제 개방의 제도화, 북러·북중 협력의 확장, 미국과의 협상 기반 조성, 남북 협력의 재건 가능성이라는 다층적 함의를 가진다.
향후 이 지역이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고, 외자를 유치하며, 남북 공동 프로젝트로 확대될 수 있을지 여부는 북한의 내부 변화와 더불어, 남측과 국제사회의 대응에 달려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산 갈마 관광지구가 이제 북한 경제전략의 실험장이자,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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