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이제 '고급스럽게 복수'할 차례
영국에 이런 속담이 있다. "Vote is the most polite form of revenge' (투표는 가장 점잖은 방식의 복수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이런쯤 될까? "투표는 짜장면 값 오른 것에 대한 고급스러운 복수다."
최근 한국의 정치상황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공약은 넘치고, 말은 많지만, 실현은 미지수다. 그 모습이 마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보리스 존슨 보수당 의원이 "EU에 매주 3억 5000만 파운드를 보내지 않고 공공의료(NHS : National Health Service)에 쓰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보리스 존슨이 브렉시트 후 총리가 되고나서 그 돈 어디 갔는지 지금도 다들 궁금해 한다.
유권자의 상상력, 그게 진짜 '정치력'
1918년 영국 여성들의 투표는 단지 법으로 얻은 게 아니다. 총알과 포탄이 떨어지던 시절, 그들은 가정을 지키고, 공장을 돌리고, 간호하며 세상을 버텨냈다. 그 무게를 알고 있는 의회는 마침내 그들에게 투표할 권리를 줬다.
오늘날 대한민국 유권자, 특히 젊은 세대와 여성들은 이미 '정치의 주체'다. 이에 대한 BBC 보도는 주목할 만하다. "South Korea elections: They helped oust a president. Now women say they are invisible again. (한국 총선: 대통령을 쫓아낸 그들. 이제 여성들은 "우리는 다시 보이지 않는다.)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유튜브에서,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정치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물어야 한다.
"이 후보가 정말 내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5년 뒤, 내가 다시 투표하고 싶게 만들 사람은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한 조각의 영국식 냉소주의
영국에서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정치인을 무작정 믿지 않는 태도도 민주주의의 일부"라는 점이다. 정치인은 약속할 수 있다. 하지만 실망시켰을 때, 그들을 단칼에 교체할 수 있는 힘은 유권자에게 있다. 1918년 총선에서 압승한 로이드 조지 총리도 1922년, 민심에 밀려 물러났다. 민주주의는 실패를 허용하지만, 무관심은 허용하지 않는다.
6월 3일, 짧은 산책 한 번 어떤가? 100년 전, 영국여성들은 싸워서 투표소에 들어갔다. 지금 우리는 그냥 걸어가면 된다. 그 짧은 산책길 끝에서, 2025년 대한민국은 어쩌면 1918년 영국처럼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날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투표하자. 민주주의는 늘 한 표에서 시작한다. 고급스럽게, 점잖게, 그리고 단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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