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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타령’ 유감

 
 
 
정부 손아귀 속 국정원도 4대강도 검찰도 국방부도 셀프타령
 
정운현 | 2013-11-07 10:40: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물은 셀프(self)입니다.’

식당에 가면 벽이나 정수기 앞에 이런 문구가 적힌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물은 손님이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본다. 하나는 물은 밥이나 반찬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찮은 것이라는 뜻이다. 밥이나 반찬과 달리 물은 몇 잔을 마셔도 추가 요금을 받지 않는다. 또 어떤 식당도 밥이나 반찬을 손님 마음대로 퍼다 먹으라고 하는 곳은 없다. 다른 하나는 손님 중에는 식사 후 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고 마시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물을 마시고 싶은 손님은 식당 나가는 길에 알아서 마시라는 얘기다. 요약하자면 물은 하찮은 것이니 먹든 말든 전적으로 손님이 판단해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물은 셀프’

 

요즘 정치권 주변에 ‘셀프’가 유행이다. 유행을 넘어 만연돼 있다고 할 만하다. 국정원도 셀프, 4대강도 셀프, 검찰도 셀프, 국방부도 셀프, 온통 ‘셀프 타령’이다.

근자에 등장한 ‘셀프’라면 지난해 국정원 댓글사건의 주인공(?)인 김모 여직원의 ‘셀프감금’이 아닐까 싶다. 사건 당시 강남 S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던 김 씨는 제보를 받고 사무실을 급습한 경찰 및 선관위 직원들에게 문을 걸어 잠근 채 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신은 외부인에 의해 ‘감금’돼 있다고 119에 신고했다. 조사결과 김 씨는 문을 잠근 채 안에서 댓글을 지운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국정조사 때 ‘수사중’이라며 증언을 거부하고는 지금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은 댓글공작을 통해 정치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자 야당은 국정원 개혁을 들고 나왔다. 국내파트 및 수사권 폐지 등은 시대적 요청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개혁대상인 국정원이 스스로, 즉 '셀프 개혁'을 할 것을 주문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다. 9월 16일에 있었던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담 자리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과거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에 만든 국정원 개혁안을 언급하면서 이 문제를 재론하자 박 대통령은 “그러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는 왜 국정원 개혁을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국정원 ‘셀프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 아닌가 싶다.

이후로 박근혜 정권에서 ‘셀프’행진은 줄을 이었다. 우선 총리실은 4대강사업 조사·평가위원회를 꾸리면서 4대강사업 관련자들로 검증단을 꾸려 ‘셀프 검증’이라는 비난을 샀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압권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셀프 감찰’. 조 검사장은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사게 되자 대검에 “저를 감찰해 주십시오”라며 ‘셀프 감찰’을 자청했다. 검찰 고위간부가 스스로 감찰을 요청한 것은 검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댓글작업은 비단 국정원만 한 게 아니었다. 국방부 산하 사이버사령부의 심리전단 요원들도 5만여 건의 정치 댓글을 단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에서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자체 ‘셀프 조사’를 거쳐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는 조직 차원이 아니라 '개인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비난 여론이 일자 국방부는 이번에는 ‘셀프 수사’를 들고 나왔다.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겠다는 얘긴데 국방부의 ‘셀프 수사’에 기대를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외부에서 메스를 들이대 수술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제 손으로 제 살을 깎아내겠다고 하니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수술할 실력도 없을뿐더러 수술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일이 횡행하는 것은 국가의 기강이 제대로 서지 못한 탓이다. 검찰조직마저 집권세력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되고 있으니 나라의 장래가 암울하기만 하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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