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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와 싸우자!

[장석준 칼럼] 박정희의 유산을 넘어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1-07 오전 7:39:16

 

 

지난 며칠 사이 한국인들은 2013년을 사는지, 1973년을 사는 것인지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난데없이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들고 나왔다. 이제는 초가집도 없고 마을길도 넓힐 만큼 넓혔는데 또 다시 무슨 '새마을 운동'인지, 국민은 대통령의 정신 건강을 염려해야 했다.

그제는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위헌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직 유무죄를 가리지도 않은 이른바 '내란 음모' 사건이 그 근거이고 거기에 강령 문구들을 '위헌 정당'의 이유로 더했다. 그런데 그 강령이란 게 지금 정의당에 있는 분들이 아직 통합진보당에 있을 때 함께 만든 것이다.

더구나 한국 진보 정당 운동 역사상 가장 오른쪽으로 경도됐다고, 그러니까 민주당 유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비판받던 강령이다. 이 정도 내용조차 위헌 혐의를 받는다면, 2013년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그 밑바닥이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유신 시대의 기억과 경쟁하는 게 분명하다.

이렇게 기대치 않은 블랙 코미디가 줄을 잇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낯익은 비극이 반복됐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최종범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언에서 전태일 열사를 언급했다. 40여 년 전에 전태일이 느꼈던 거대한 장벽은 40년 후의 노동자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니, 그 장벽은 세월의 무게를 제 것으로 삼아 더욱 단단해졌다. 그 이름은 '삼성'.

대한민국 헌법은 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한다. 최종범 열사와 그 동지들은 다만 이 헌법의 약속을 진지하게 믿었을 뿐이다. 그러나 삼성 왕국은 헌법의 효력이 미칠 수 없는 거대한 위헌 지대였다. 삼성 자본의 노동조합 탄압에 평범한 한 노동자는 자결 외에 다른 항거 수단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비극의 현장에는 '위헌'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는 그 현행범이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움직이지 않는다. '경제 민주화'를 말하던 박근혜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아니, 교육 현장에서 노동조합의 뿌리를 뽑는 일로 삼성만큼이나 바쁘다.

그래서 요즘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게 '유신 회귀'니 '파시즘'이니 하는 말들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외에 달리 뭐라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위의 사례들 중 그 어느 것도 '파시즘'이란 말에 어울리는 노골적인 폭력 행사는 아니었다. 모든 행위는 고위 관료들의 지극히 제도화되고 문명화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이명박 정부 첫 1년에 거리에서 그토록 자주 보았던 물대포조차 요즘은 구경하기 쉽지 않다. '명박산성=파시즘'이라던 5년 전의 공식(이게 옳은지 여부와는 별개로)은 이 정부에서는 아직 유효하지 않다.

민주주의의 골간에 손대길 두려워 않는 박근혜 정부의 자신감은 역설적으로 국민의 힘에서 나온다.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50%를 상회하는 지지율 말이다. 믿고 싶지 않아서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직도 절반 조금 넘는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를 비판과 공격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동원한 물대포 없이도 이명박 정부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일들을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다 이 한 가지 사실 덕분이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에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지난 대선에서 확인한 박근혜 지지 기반이 건재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지지 동맹이 굳건히 존재하며 취임 후 지속된 국정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그 헤게모니는 계속 작동하고 있다.

이것의 동전 반대 면이라 할 수 있는 다른 한 가지는 박근혜 정부 반대 여론이 지난 대선의 반박근혜 유권자 층을 넘어 확산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 기구의 대선 개입이 드러나도 이것은 기존의 열성 반박근혜 유권자들이 촛불을 들게 만들 뿐 박근혜 지지층의 이완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반면 2008년 촛불 집회는 최소한 관망파들을 이명박 반대 여론 쪽으로 돌릴 만큼의 위력은 발휘했다.

박근혜 정부는 오직 이 상황이 흔들릴 때에만 그에 비례해서 동요할 것이다. 50% 선을 넘나드는 지지 여론에 크게 균열이 가거나 기존 박근혜 지지층의 상당한 이반 현상이 나타나는 것만이 이 정권에게 심각한 타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지금의 당혹스러운 공세는 의연히 지속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연합뉴스


그럼 반대 진영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지난 세기에 어떤 좌파 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 상황이 요동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까? 아니면 대한민국 '50%'의 무지에 비분강개를 토하는 것? 아니다. '50%'를 계속 단단히 유지시켜주려면 분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정녕 그 '50%'를 해체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이 현실을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 박근혜 지지 동맹을 단단히 묶어주는 기대와 보상의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러한 관계들 중 대다수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 형성되거나 그 단초가 놓인 것들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 여러 세대들에게 늘 박정희 신화와 함께 기억된다. 이것은 좀처럼 균열의 틈을 보이지 않는 50% 안팎의 지지층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박정희 신화는 40여 년 전에 대한 일부 세대의 기억 이상의 무엇이다. 그것은 흔히 '박정희의 유산'으로 여겨지는 여러 계층의 이해관계들을 다른 누구보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효과적으로 보장해줄 것이라는 기대로서 작동한다. 이러한 서로 다른 방향의 기대들이 계속 박근혜 정부에 투사되는 한, 이 정권은 당분간 마음껏 재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럼 그 이해관계들의 구체적 양상은 무엇인가? 사실 박정희 정권의 자본 축적 과정이 남긴 한국 자본주의의 특별한 구조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과 해명이 있었다.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이란 게 바로 이러한 분석 작업이었다. 하지만 특정한 마르크스주의 도식에 주로 의존하면서 채 규명되지 못한 게 있다. 그것은 이러한 한국 자본주의에 여러 계급, 계층의 대중이 끼워 맞춰져 있는 구체적인 양상들이다. 여기까지 분명해져야 한국 사회를 온전히 조망하고 그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용어에 따른다면, 토대와 상부구조의 특정한 결합으로서 '역사적 블록'을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아직 미완이다.

전체 사슬의 중요한 고리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단편적 지적들이 있다. 화석-핵에너지에 의존하게 된 것의 근본적 중요성, 수출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가 노동 시장에 끼친 영향, 초집중적 지역 구조가 우리의 삶에 가하는 제약, 학벌과 부동산이라는 두 계층 상승 사다리의 역할, 5·16 쿠데타 이후 한국 정치의 '불가역한' 제도처럼 되어버린 대통령 중심제, 7·4 남북 공동 성명으로부터 남북 양 체제가 이탈한 결과인 현재의 분단 구조, 새마을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시민 사회 동원 체계 그리고 박정희 정권이 남긴 최대의 유산인 "잘 살아보세"라는 대중 신앙 등등.

이 중 대다수가 1987년의 민주 항쟁 그리고 1997년의 외환 위기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 확대되었다. 87년과 97년은 그 일부만을 바꾸고 전체 배열 양상을 약간 변경시켰을 뿐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도 '계승자'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게 이들 정권의 실패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다.

문제는 이러한 여러 고리들이 이루는 전체 사슬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슬들 중 어느 고리에서 어떠한 노력을 시작할지 결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든 모종의 '사회주의'를 외치든 또 무엇을 꺼내든 한국 사회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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