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 분위기가 퇴행으로 흘러간 데는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당선을 포함해 여러 이유와 징후가 있었다.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의 노력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어버렸고, 당의 위기 때 소리 높여야 할 '수도권' '중도' '청년' 세력은 애초에 싹이 다 잘려나간 상태였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역시나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씨의 난입이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를 옹호해 온 그가, 사실상 전당대회에 '개입'을 선언하면서부터 당 분위는 강성 지지층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당을 막지 못했고, 전당대회장에서 난동을 부린 뒤에도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 전한길씨의 영향력을 평가절하하던 송언석 비대위원장이 뒤늦게 강도 높은 대응을 시사했으나, 정작 중앙윤리위원회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며 면만 구기는 촌극이 벌어졌다.
당 지도부가 그와 거리를 두려고 해도, 강성 지지층의 표를 얻고자 하는 '반탄파' 후보들은 앞다투어 그 앞에 잘 보이기 위해 달려갔다. 전씨는 본인과 본인을 따르는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김문수냐, 장동혁이냐'를 저울질했다. 그 와중에 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세력이 오히려 '찬탄파'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목소리 높이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연출됐다.
수준 이하로 진행된 전당대회 후보자 토론은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나, 이 자리에서 중도·온건을 대변해야 했을 안철수 후보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싸움을 회피했다. 내란과 계엄 문제를 정면으로 치고박는 '인파이팅' 대신, 다른 이슈들을 버무려 '아웃복싱'을 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이번 전당대회 주요 의제가 '내란과 계엄' '윤석열과 전한길'로 설정이 된 상태였다는 것 그리고 아웃복싱을 하기에 안철수 후보는 너무 '눌변'이었다는 것이다.
한 비윤계 현역 국회의원은 <오마이뉴스>에 "당이 늪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 데는 안철수 의원의 몫도 분명히 있다"라며 "혁신을 외치는 이들이 지리멸렬할 때, 보다 적극적으로 대변해주고 싸워야 하는데 '친윤' 표를 잃을까 봐 주저한 것 같다. 속이 시원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도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모호하기만 했다"라고 꼬집었다.
이 와중에 장동혁 후보가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떠오르는 스타'로 자리잡으면서, 전당대회 분위기는 '김문수와 장동혁' 사이 선명성 대결로 치환되어 버렸다. 전한길씨는 22일 본인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전당대회를 생중계하며, '지명직 최고위원'을 언급했다. 둘 중 한 사람이 당 대표가 될 경우, 전씨가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윤리위 '경고'에서 결론 난 전당대회? "희망이 없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전한길 같은 사람이 당의 중심이 되어버린 게 단적인 상징"이라며 "현재 이 당의 쇄신과 개혁과 변화는 불가능하다라는 걸 전한길씨가 보여준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전한길씨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끌려다니는 전당대회가 됐으니까 희망이 없다는 것"이라며 "당 윤리위원회가 경고로 끝났을 때 이미 이번 전당대회 결론도 어느 정도 난 셈"이라고 말했다.
장 소장은 "정권을 빼앗기고 나서 오는 상실감과 허탈감 그리고 두려움을 자극하는 '반탄파'의 캠페인이 먹혀들었다"라며 "'한동훈이 아니었으면 탄핵도 안 됐고, 대선도 안 졌다'라는 프레임이 통하면서 강성 당원들의 화를 돋웠고, 이를 상대해야 할 찬탄파는 인물이 없었다"라고도 부연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전통적으로 국민의힘 지지층은 책임감·주인의식·안정감 등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지배하는 이슈는 따로 있다"라며 "그중 하나가 바로 '대여 투쟁'"이라고 짚었다. 그는 "'강력한 대여 투쟁을 누가 할 수 있느냐'에서 안철수 후보와 조경태 후보는 '정통성'이 부족하다"라며 "'출신'의 한계를 못 뚫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거대 양당 간 대결 구도가 격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과거 민주당과 직·간접적으로 연을 맺었던 '찬탄파' 얼굴들이 당원의 표심을 얻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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