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미 안보협상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가 다시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에 조건을 달고 훈련 강화,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 연합지휘체계 유지 등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이번 협상 역시 한국의 군사주권을 확보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복무하는 종속 구조를 공고화하는 방향이었다.
한미가 발표한 협의 결과에는 전작권 환수를 위한 세 가지 조건(한국군 능력 검증, 연합지휘 능력, 안보환경 안정)이 앵무새처럼 반복됐다. 문제는 이 조건들이 철저히 미국의 입맛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세계 6위인데도 능력 부족?
미국과 군 당국은 늘 "아직 한국군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한국의 군사력은 이미 세계 5~6위 수준이다. 이미 차고 넘치는 능력을 갖췄는데도 '조건 미충족' 타령을 하는 것은, 미국이 전작권을 돌려줄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조건부 전환 구조에서는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전환을 무기한 늦출 수 있다. 주권 회복을 남의 나라 채점표에 맡기는 꼴이니, 애초에 조건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승만은 편지 한 통으로 넘겼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알 수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 한 통으로 국군 지휘권을 넘겼다. 그렇게 간단했다. 그런데 되찾아오는 길은 왜 이리 험난한가.
노무현 정부는 전작권 환수 기한을 못 박아 주권 회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라는 족쇄를 스스로 찼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 덫에 걸려 능력 검증을 위한 연합훈련에만 매달렸고, 현 정부 들어 논의는 실종됐다. 이재명 정부가 임기 내 환수를 선언했지만, '동맹 현대화'라는 미명 아래 미국산 무기 구매만 늘어나며 예속은 깊어지고 있다.
껍데기만 한국 사령관, 알맹이는 여전히 미국
백번 양보해서 전작권을 환수한다고 쳐도 문제는 남는다. 현재 논의되는 한미연합사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무늬만 환수'가 될 공산이 크다.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더라도, 미군 4성 장군이 부사령관으로 버티고 있는 한 실질적 지휘권 행사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현대전의 핵심인 정보 자산과 전략 무기 통제권을 여전히 미군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연합작전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미군의 시스템 안에서 허수아비 노릇을 할 위험이 크다.
정답은 '통보 후 환수'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기한을 또다시 미루는 조건부 환수가 아니다. 애초에 한국의 군사주권을 제약해 온 구조 자체를 걷어내야 한다. 한국군이 이미 갖춘 능력을 의심하며 미국의 '합격 도장'만 기다리는 노예 근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법은 명쾌하다. 문장렬 전 교수는 "그냥 주었듯 그냥 가져오는 것이 답"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에 구걸할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가져오겠다"고 사전 시한을 통보하고 실행하면 된다.
조건 조항과 연합지휘 종속, 미국산 무기 의존을 유지한 채 추진되는 환수는 기만이다. 이제는 종속 구조의 해체를 전제로 당당하게 주권을 선언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전작권 환수가 주권 회복이라는 본래 목적에 다가설 수 있다.
한경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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