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오염된 강', '도시의 뒷골목'으로 외면받던 파리의 센강은 지난 10년 사이 다른 얼굴이 되었다. 파리는 지난 10년간 센강을 '시민의 생활공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대대적인 수질 개선과 접근성 혁신에 집중했다. 2024 파리올림픽은 그 성과의 상징이었다.
센강에서 수영과 철인 3종 경기가 개최될 것이라는 발표는 전 세계에 놀라움을 던졌다. 파리는 '강을 복원하면 시민이 돌아온다'는 철학을 실천했고, 강 전체 수질 개선, 하수 처리 혁신, 접근성 강화, 강변 보행 중심화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센강은 시민이 걷고, 머물고, 축제를 즐기는 일상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올림픽을 계기로 100년 만에 센강 수영이 허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변도로였던 구간 일부가 도시 해변 '파리 플라주(Paris Plage)'로 바뀌었고, 산책길과 야외 문화공간이 들어섰다. 지금 센강에는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 햇볕을 쬐는 관광객, 음악을 연주하는 젊은이들이 공존한다. 산업의 강이 시민의 강으로 돌아온 것이다.
센강의 변화는 자연히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시민 참여, 생태 복원, 공공 접근성 확대 등을 행정 철학으로 내세운 파리 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달고는 "강이 도시의 경쟁력"이라고 말하며 차량 중심의 도시 설계를 과감히 수정하고 강변도로를 차가 아닌 사람에게 열었다. 그 결과 센강은 다시 시민의 일상이 되었고, 파리는 강을 통해 도시의 품격을 증명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강이 서울의 경쟁력"이라며 한강의 모래와 물길로 쌓아 올린 고층 아파트와 기이한 건축물들을 보고 있자니 도시의 풍경을 넘어 시민의 삶과 서울의 미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암울할 뿐이다.
런던의 템스강 역시 현재 서울의 한강과 같은 수많은 논쟁과 시행착오를 거쳤다. 19세기 산업화 시기 오염과 악취로 '죽은 강'이라 불리며 런던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템스강은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하수 정비, 폐수 규제, 생태 복원 정책이 이어졌다. 그 사이 수변 개발과 민간 자본 중심 재생, 고층 주거 단지 조성 등으로 '강의 사유화' 논란을 겪었다. 긴 시간의 생태 복원과 공공 접근성 원칙은 그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결과다.
유럽뿐 아니라 북미에서도 변화는 진행 중이다. 미국 포틀랜드의 윌래밋강은 과거 공장 폐수로 오염된 강 중 하나였으나, 도시 행정과 시민단체, 대학 연구기관이 협력해 복원에 성공했다. 강 사이에 놓였던 고속도로를 과감히 걷어내 도심과 강을 이어냈고, 민간과 공공이 함께 하는 복합개발을 통해 강변을 사유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보행과 자전거, 문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워터프런트 커뮤니티로 설계해 '강변=부동산 이익'이라는 도식을 깨트렸다.
이제 세계 도시들은 경쟁적으로 '강변을 도시의 가장 가치 있는 공공 공간'으로 복원하고 있다. 더 이상 도시의 강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삶의 공간으로,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공존하는 미래의 자산으로 바뀌었다. 세계 주요 도시의 강이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강은 개발의 배경이 아니라 함께 누리고 지켜야 할 공공재라는 것이다.
왜 여전히 한강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나
반면 서울의 한강은 여전히 거대한 건설과 개발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노들섬 개발, 한강 버스, 특혜성 수변 건축 논란 등은 또 다른 토건 사업의 반복이다. 세계 도시가 강을 '삶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시대에, 서울은 왜 여전히 한강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걸까? 누군가의 사업 계획, 건축 구상, 상상을 초월한 막대한 예산이 먼저 논의되고, 정작 시민에게 한강이 어떠해야 하는지 묻지 않는 걸까?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해야 한다. 그 기준과 경쟁력은 더 이상 국내총생산(GDP), 대규모 건설사업, 초고층 스카이라인에만 있지 않다. 삶의 질, 생태적 회복력, 공공성, 지속 가능성, 시민의 공유 자산 등이 도시의 새로운 경쟁 기준이 되고 있다.
이 관점에서 한강은 세계 속의 서울을 우뚝 세울 바로미터이고, 서울의 미래를 결정할 열쇠다. 지금의 한강이 거대한 콘크리트 둔치와 인공적 제방, 무분별한 준설, 시민의 공간을 앗아간 기이한 건축물이 들어선 공간으로 남는다면, 서울은 더 이상 세계적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함께 상상해 보자. 무분별한 준설이 멈춘 한강 변에 자연스럽게 다시 형성된 모래톱을. 한때 자취를 감췄던 멸종위기종과 철새들이 그 주변을 다시 채우는 풍경을. 한강 변 모래사장에서 신발을 벗고 한강에 발을 담그며 사랑하는 사람과 노을을 함께 바라보는 저녁을. 쌩쌩 달리던 자동차 대신, 친구와 연인, 가족과 함께 생태 친화적으로 탈바꿈한 보행교를 건너며 한강으로 향하는 주말을.
이는 바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한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도달 가능한 미래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공유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따라 우리의 일상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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