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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감귤 농부의 분노... 그가 카메라로 찍은 무서운 것



[제주 사름이 사는 법] 제2공항 조류충돌 위험 알리기 위해 새 사진을 찍는 강석호씨

사는이야기 황의봉(heb8610)

25.12.24 06:45최종 업데이트 25.12.24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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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리 바닷가 촬영중인 강석호씨80세의 강석호씨는 지난 6년간 하루 3차례씩 철새도래지를 돌며 촬영 작업을 해왔다. 그는 제2공항 예정지가 철새들의 밀집 지역으로 국내 어느 공항보다도 조류충돌 위험성이 크다고 역설한다. 2025년 12월16일 촬영.황의봉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신산리 바닷가, 80세 노인이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향해 렌즈를 들이댄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오리, 하늘 높이 날아가는 가마우지를 쫓아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른다. "철새로 둘러싸인 공항, 이게 말이 돼?" "이건 재앙을 부르는 거야!" 성산읍 신산리 토박이 강석호씨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조류충돌 위험과 동굴·숨골 등의 환경 파괴 논란으로 3차례나 반려된 전략 환경영향평가가 우여곡절 끝에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를 얻어내 기본계획이 고시되고 정식 환경영향평가 절차에 돌입한 제주 제2공항. 2025년의 끝자락에도 강석호 노인의 '제2공항과 새들의 진실'을 기록하는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제2공항 부지가 자리 잡은 성산 일대는 제주도에서도 겨울 철새가 많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하도와 고성오조 같은 대규모 철새도래지에는 전국에서 탐조객들이 몰려든다. 제주 제2공항 계획이 발표된 지 10년, 성산의 새들이 끝없는 논란의 주인공이 돼버렸다. 정말 제2공항은 조류충돌 사고로부터 안전할까. 강석호씨를 만나자마자 이 지역의 새들이 어디에 얼마나 서식하고 있는지 그 실태부터 물었다.

 

강석호씨가 매일 새 사진을 찍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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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 철새도래지하도와 함께 제주도의 대표적인 철새도래지로 제2공항 예정부지 8㎞ 내에 있다. 오리류, 가마우지류를 비롯한 수많은 철새들이 사진에 보인다. 2024년 12월26일 오후 12시35분 촬영.강석호

 

"성산 지역은 '새들의 국제공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철새들이 많이 오가는 곳입니다. 구좌읍 하도, 종달에서 성산읍 고성오조, 고성리 하수종말처리장, 신양, 온평, 신산, 삼달신풍, 신천을 지나 표선(읍)에 이르기까지 약 40㎞에 걸쳐 공항 예정지를 따라 조류 서식지 벨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새들은 60여 종으로 각종 오리류, 갈매기류, 가마우지, 저어새, 왜가리 등 15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이중 겨울 철새들은 10월 중순쯤 이 지역을 찾아 월동하고 오리는 이듬해 3월 말, 갈매기류는 4월 중순쯤 떠납니다.

 

사실 새들의 개체 수가 너무 많아 정확히 헤아리기가 힘듭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하도 철새도래지는 20만 평이 넘는데, 한창 새들이 많을 때는 물 위를 덮다시피 많습니다. 하도리 습지 지역은 청둥오리를 비롯한 오리류가 가장 많고 가마우지류 저어새 물수리 등 다양한 철새들이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저어새, 쇠가마우지, 민물가마우지와 같은 법정보호종도 많고요.

 

이곳은 겨울을 나기에 기온이 적합해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 날아오는 철새들의 종착지가 됩니다. 겨울에 북쪽 지역은 호수나 해수면이 얼면 먹이가 없으니까 따뜻한 제주도 남쪽으로 와서 겨울을 나는 것이지요. 성산 일대에는 습지가 많아 새들이 좋아합니다. 습지에는 갈대숲이 우거져 있고 먹이사슬이 풍부하게 형성돼 있거든요. 해안가에는 치어 떼가 몰려들고 멸치가 떼를 지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플랑크톤도 형성돼 있고, 겨울에도 밭에서는 농작물이 자라므로 푸른 이파리도 뜯어 먹습니다. 바닷가의 해조류도 먹고요."

 

이렇게 많은 새들이 밀집해 있는 만큼 성산 지역에 제2공항이 들어서면 비행기와의 충돌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조류충돌 사고는 주로 비행고도가 낮은 이착륙과정에서 발생한다. 대부분의 조류충돌 사고가 비행고도 2000피트(약 610m) 이하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국제적으로도 통설이다. 비행고도 2000피트를 역산하면 공항에서 반경 13㎞ 이내 지역이 된다. 고도 1500피트(약 457m)는 반경 8㎞로 완충구역, 500피트(약 152m)는 반경 3㎞로 핵심구역으로 분류된다. 반경 3㎞ 구역에서 새가 150m로 높이로 날 때 비행기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속 370㎞로 운항 중인 항공기에 0.9㎏의 오리가 충돌할 때 항공기가 순간적으로 받는 충격은 4.8t에 이른다고 한다. 새가 엔진의 공기흡입구에 빨려 들어가면 팬 블레이드를 망가뜨리거나 엔진 작동에 치명적 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

 

제2공항 예정부지 반경 3㎞에는 신산리와 오조리, 8㎞ 반경에는 종달리와 신천리, 13㎞ 반경에는 하도리가 있다. 모두 '버드 스트라이크 존'에 해당한다. 강석호씨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도 바로 비행경로 주변에 새들이 밀집해 있다는 사실이다.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자.

 

"제가 사는 여기 신산리는 공항이 들어서면 비행기 이착륙지가 되는데요, 비행기 고도가 100m 이하가 될 겁니다. 새들이 많은 신산리 포구는 이착륙지에서 1㎞ 남짓한 가까운 거리입니다. 조류충돌 핵심구역인 반경 3㎞ 안에 조류 서식지가 있는 것이지요.

 

제가 찍은 영상에서도 나타나듯이 새들이 200∼300m 이상까지 날아오르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들의 활동 범위가 반경 8㎞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어요. 그런데 하도 철새도래지부터 오조, 하수종말처리장, 신산, 그리고 서쪽으로 신양, 표선에 이르기까지 모두 새들의 밀집지역이니까 충돌위험구역이 그만큼 넓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말한 40㎞에 달하는 겨울 철새 서식지가 항공기 이착륙 지역과 동일선상에 있다는 겁니다."

 

강석호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산 제2공항은 조류충돌 사고로부터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화약고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국토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별문제가 없다는 듯 매우 낙관적인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가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일까.

 

" 2022년 4월 26일부터 6월 10일 사이에 조류 조사를 시행하면서 미처 떠나지 못한 잔류 철새에 한해서 3㎞ 범위 내 갈매기류, 오리류, 가마우지, 저어새, 도요새, 물떼새 등 총 8종 76개체만 조사했고, 3∼8㎞ 범위 내 겨울철새도래지에서 총 30종 730여 개체에 한해서 조사한 내용을 평가서에 반영한 것이에요. 이런 사실들은 실제 제가 월동 기간에 조사한 내용의 고작 1∼2% 수준에 불과한 것입니다. 조사 기간에 새가 가장 많은 겨울철이 빠진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용입니다.

 

평가서를 보면 겨울 철새들이 항공기 이착륙 지역과 동일 지역에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리류는 하도 해안 지역 등에 다수 서식하고, 갈매기류는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고 있어 모두 항공기 소음지역 바깥에 서식하므로 공항 운영에 영향이 없다는, 그리고 새들이 100m 이하로 날아다닌다는, 사실과는 다른 상황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겨울 철새들의 활동 범위를 살펴보면, 해안가나 넓은 바다, 습지, 저수지를 비롯하여 내륙 깊숙한 곳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넘나들면서 먹이 사냥을 하다가 주로 습지나 해안가 등지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천적이나 거센 바람, 소음, 진동을 느꼈을 때 상공으로 급상승하여 선회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가마우지와 갈매기류는 주로 낮에 활동하고, 오리류는 어두워지면 이동을 많이 하고요. 그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국토부는 이런 새들의 습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요."

 

국토부와는 달리 강석호 씨는 조류충돌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제2공항이 들어선다면 조류충돌 위험성이 가장 큰 새를 그는 어떤 종으로 보고 있을까?

 

"가마우지나 갈매기류가 몸피가 큰 데다가 떼를 지어 날기 때문에 가장 충돌 위험이 크다고 봅니다. 이것들은 100마리에서 많게는 한 200∼300마리가 한꺼번에 움직이거든요. 50마리만 뭉쳐서 날아도 엄청납니다. 높이 날기도 하고요. 오리도 떼 지어 납니다. 떼를 이루어 난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위험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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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 철새도래지제2공항 북측 항공기 이착륙지와 가까운 곳으로 사진에 보이는 새는 재갈매기와 오리류. 2025년 12월3일 오후 3시22분 촬영.강석호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해 환경파괴 소음피해 조류충돌 등 각종 우려가 쏟아지자 국토부에서는 이른바 저감대책이란 걸 제시하고 있다. 조류충돌 우려에 대해서도 저감대책으로 대체서식지 등이 거론되고 있다.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싶다.

 

"저감대책이란 게 새를 쫓아내자는 것 아닙니까? 정말 폭력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넓은 하도 철새도래지 습지에 새가 못 오게 하려면 다 메워서 없애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가능하죠. 하수종말처리장 없앨 수 있나요? 불가능합니다. 또 해안가에 새들이 쫙 깔려 있는데 조류의 서식환경을 다 바꿔야 하겠지요? 역시 불가능합니다.

 

그때 나온 얘기가 육상 조류의 서식역 확보방안을 수립한다며, 곶자왈 오름 내륙습지 등의 대체서식지를 조성한다고 했는데, 이건 텃새를 두고 하는 말이에요. 도대체 물에서 먹이를 찾는 수천, 수만 마리 새를 어떻게 옮길 수 있나요. 그래서 환경부가 1차 2차 계속해서 보완하라고 했지만, 국토부가 보완을 못 했던 것입니다."

 

제2공항은 전략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부터 숱한 문제점이 발견돼 3차례나 환경부에 의해 '보완요구'와 '반려'를 거듭했다. 이때 반려가 아닌 부동의로 일단락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후 2023년 1월 4번째로 제출한 전략 환경영향평가서가 우여곡절 끝에 '조건부 동의'를 얻어 사업강행 절차에 돌입했다.

 

당시 환경부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조건부 동의를 해주었음에도 5개의 국책 연구기관은 검토 의견에 부정적 내용을 담았다. 조류와 관련해서는 "조류충돌 위험성이 기존 제주공항이나 김포공항 인천공항보다 높다"(한국환경연구원), "조류 조사와 평가에 문제가 많다."(국립생물자원관), "항공기 이착륙 방향으로 조류충돌 가능성 있으니 입지조정과 사업규모 축소 검토해야"(국립생태원), "조류 4종, 10개체의 위치추적 자료만으로 조류영향 평가하기엔 부족하다. 조사 종 개체 수를 늘리고 1년 이상 장기 조사해야"(국립수산과학원)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정식 환경영향평가에서는 조류충돌 위험성이 제대로 평가되고 있을까?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철새도래지가 어디인지, 새 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한번은 하도 철새도래지에 갔을 때 조사하는 사람을 보기는 했는데 얼마나 정밀하게 하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우리가 겨울 철새도 조사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니까 아마 하는 시늉은 내고 있을 겁니다. 나는 제대로 조사 결과를 내놓을 거라고 기대를 안 합니다. 그래서 새들이 없다느니 적다느니 할 것에 대비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매일 이렇게 새들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는 실제로 법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반드시 밝힐 생각입니다. 국토부만 문제가 없다는 안이한 주장을 되풀이할 뿐 환경단체, 환경기관, 조류전문가 모두가 조류충돌 위험을 경고하고 있어요. 그리고 충돌할 때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이었던 그는 어떻게 '제2공항 반대'에 나서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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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호씨제2공항 이착륙예정지에서 가까운 신산리가 고향이다. 6년째 성산지역의 새들을 관찰하고 촬영하며 조류충돌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황의봉

 

무안국제공항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사건의 원인이 가창오리 떼와의 충돌로 밝혀짐에 따라 제2공항의 조류충돌 우려는 더욱 짙어지는 분위기다. 최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는 제2공항의 조류충돌 위험성이 무안공항의 최대 568배에 이른다며 국토부가 조류충돌 위험성을 축소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무안공항의 참사를 강석호씨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을까.

 

"환경 관련 사안은 과학적으로 따져봐야지 정책적으로 관철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국민 생명과 재산을 잃게 만드는 겁니다. 제주 제2공항도 환경조건을 무시한 채 정책적으로 밀고 나가던 차에 무안공항 참사가 발생하니까 지금 주춤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지사가 제2공항에 문제가 있으면 안 하겠다고 얘기하던데, 이제 와서 문제가 있으면 안 하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죠."

 

지난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소속 시민 1297명이 제기한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법원은 판결문 첫머리에 조류충돌의 위험성부터 지적하고 나섰다.

 

재판부는 "국토부가 사업 진행 과정에서 조류충돌 위험성과 생태계 파괴와 관련한 조사를 충분히 검토했다고 보기 어렵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절차적으로 위법했다." "새만금공항의 조류충돌 위험은 국내 어느 공항보다 높다고 나왔는데도, 평가모델을 일관성 없이 적용하거나 평가 대상지역을 축소해 위험도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새만금공항 판결은 제주 제2공항의 조류충돌 위험성이 높고, 그동안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점에 비추어보면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제주 제2공항의 운명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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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리 상공의 오리떼성산읍 신양리의 바닷가 마을 상공에 오리떼가 수직 상승하여 날고 있다. 2023년 2월27일 오후 2시31분 촬영.강석호

 

"영향을 미쳐야겠지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여기는 겨울 철새 도래지이고 몸집이 큰 조류들이 집단으로 서식한단 말입니다. 물론 조류 문제 이외에도 동굴이나 숨골 등이 훼손되는 것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강석호씨는 제2공항의 이착륙지로 알려진 신산리가 고향이다. 안락한 노후를 누려야 할 평범한 주민이 카메라를 들고 고향 땅 성산의 바닷가와 습지를 누비며 새를 찾아다니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그의 내력을 들어보자.

 

"조상 대대로 이곳 신산리서 살아왔고 저 역시 이곳 신산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27년간 남제주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1999년에 명예퇴직했어요. 농업, 행정, 민원, 관광부서 등에서 주로 일했습니다. 이곳의 지리나 자연환경의 특성 같은 건 속속들이 다 알고 있지요. 퇴직한 이래 지금까지 감귤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2015년에 처음 제주에 제2공항 건설이 발표됐고, 2019년도에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환경부에 제출됐습니다. 이때 하도 철새도래지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어요. 나만큼 이 지역을 아는 사람도 드물 텐데 내가 직접 조사해 진실을 밝혀야겠다 마음먹었지요.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성산 일대의 새들을 조사하고 그 실태를 촬영하기 시작한 것이죠. 조류 전문가를 초청해 동반 조사 활동을 하면서 관련 지식을 많이 배웠고, 관련 자료들도 찾아서 연구하다 보니 어느덧 6년이 되었네요. 그때 조사 결과 등을 엮은 <제주, 그대로가 아름다워>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어요. 나는 주로 겨울 철새를 중심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이걸 아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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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지로 유명한 성산읍 온평리도 제2공항에 인접해 있어 동굴 훼손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온평리 바닷가에 재갈매기 가마우지 등이 휴식하고 있다. 2023년 3월27일 오후 6시18분 촬영.강석호

 

강석호씨는 이제 새 전문가 못지않게 이 일대의 조류 실태에 대해 해박하다. 신산리 토박이로 이 지역 구석구석 상황을 꿰뚫고 있는 점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만의 장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새의 생태에 관해 디테일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새와 함께 살아가는 그의 일상을 좀 더 들여다보자.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할 때부터 4년간은 하루에 3차례 현장을 답사했어요. 아침 먹고 한번, 점심 먹고 한번 돌고, 4시쯤 또 한 번 나가고.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하루에 한두 번 카메라를 들고 나갑니다. 어떤 날은 못 나가기도 하고요. 집사람이 아파서 간호도 해야지, 2천 평 정도 되는 한라봉 하우스 농사를 혼자 지어야 하니까 그만두어야 할 형편이지만 진실을 밝히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6년간 계속 조사를 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이 지역은 내가 구석구석 잘 알기 때문에 이왕 시작했으니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천부터 성산하수종말처리장까지 가장 많이 다닙니다. 처음엔 카메라가 없어 핸드폰으로 찍었는데, 새 전문가인 전북대 주용기 교수가 안 돼 보였는지 쓰던 카메라를 하나 주더라고요. 그동안 찍어 놓은 새 사진과 동영상이 6000∼7000건은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새들을 척 보면 저게 무슨 새인지 알 수 있지만, 처음엔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고, 도감도 찾아보고 했지요. 어떤 새가 법정보호종인지도 배웠고요.

 

새들은 소음이나 진동을 느꼈을 때, 바람이 세게 불 때, 또는 어떤 위험을 감지했을 때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새들은 자신을 해치지 않으면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새들이 앉아 있는 바닷가 가운데로 들어가도 도망가지 않아요. 그런데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 소리가 엄청나게 크면 날아오르는 겁니다. 헬리콥터가 신산 앞바다로 넘어갈 때 새들이 부닥치는 걸 몇 번 목격하기도 했어요. 새들은 피하는 게 아니라 직선으로 공중을 향해 올라갑니다. 충돌 위험이 큰 것이지요. 조종사가 새를 발견했을 때는 벌써 비행기가 새들의 무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곳은 정말 조류충돌 위험이 큰 지역입니다."

 

강석호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제2공항 문제를 두고 국토부나 제주도 당국에 대한 불신이 무척 크다는 점이다. 그는 새들을 촬영하고 조사 연구한 내용을 일일이 사진 첨부해 매년 환경부에 보내는가 하면, 전략환경영향평가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국민감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토부 환경부 감사원 등을 대상으로 '진실한 조사'를 호소해 온 외로운 싸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당국에 하고 싶은 말을 들어보았다. 노구를 이끌고 조류충돌의 위험성을 알리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공항 정책 당국자들이 귀담아들었으면 한다.

 

"현재 찬반 갈등이 심각합니다. 찬성 측은 다 권력자들, 돈 많은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 호텔 관광업자들 그리고 옛날 헐값에 산 땅이 공항이 들어서면 수십 배 보상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농사짓는 사람은 반대합니다. 찬성·반대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공격해대고 지역 간에도 분열이 일어나는데, 도의회나 국회의원은 혹시나 이 문제를 잘못 건드려 표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바라만 보고 있어요.

 

어쨌든 간에 제주도든 도의회든 국회든 국토부든 제2공항만큼은 절대적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서 진실에 근거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국토부가 환경영향평가를 해도 사업 못 할 겁니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절대 사업 안 됩니다. 대통령께서도 이걸 아셔야 합니다. 지금 제2공항 사업이 지역갈등과 분열만 야기하고 있고 실제로 피해만 주고 있지, 아무 득이 없어요.

 

국토부는 자기네가 잘못한 거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시인하고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여태까지 반대하는 측에 왜 반대하는지 한번 물어본 적도 없어요. 전혀 대화가 없습니다. 무안국제공항의 참사를 되돌아보면 공항으로 부적합한 지역임에도 지역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건설을 강행하여 안전성과 경제성을 외면한 것이 불행한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환경적 요인이 무시된 개발사업은 결국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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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철새도래지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20여만 평의 철새도래지는 바다와 인접하고, 수심이 1m 정도로 낮으며, 영양분이 풍부한 먹잇감과 습지식물이 많아 철새들이 월동하기에 최적지로 꼽힌다. 2024년 11월26일 오후 3시18분 촬영. ⓒ 강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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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떼 고공비행 제2공항 이착륙 예정지에서 불과 1㎞ 떨어진 성산읍 신산리 바닷가 상공에 갈매기떼가 높게 날아올라 비행하고 있다. 2022년 1월14일 오전 10시15분 촬영. ⓒ 강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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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바닷가 오리들 크고 작은 바위가 많은 바닷가에서 오리류가 여유있게 떠다닌다. 2025년 12월13일 오후 1시44분 촬영. ⓒ 강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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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한 오리떼 성산읍 신산리 앞바다에 오리떼가 공중으로 높이 날고 있다. 이곳에서 1㎞ 떨어진 제2공항 이착륙 예정지에서는 항공기의 비행고도가 100m 이하가 될 것으로 보여 새떼의 비상은 매우 위협적이다. 2024년 1월15일 오전 10시11분 촬영. ⓒ 강석호

 

 

#제2공항 #조류충돌 #철새도래지 #성산 #하도철새도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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