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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백마 탄 여인'의 감동 스토리... 한국인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무의 노래> 스틸 이미지 ⓒ 미디어나무

믿기지 않는 영화를 봤다. 니카라과에 사는 백마 탄 공주의 이야기였다. 나라 이름도, 주인공도, 내용도 동화나 판타지 영화에 어울릴 법한데, 놀랍게도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백마를 타고 우거진 밀림 숲을 둘러보는 백발의 할머니의 모습이 나온다.

새의 속깃털 같은 보드랍고 새하얀 머리카락에, 흰색 옷을 즐겨 입는 모습 때문인지, 할머니라는 단어에 다 담을 수 없는 신비롭고도 맑고, 우아한 느낌을 풍기는 분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주님'이라고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실제 조선 왕조의 후손이라는 걸 영화 중반부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숲 속을 거니는 내내 "아름답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커다란 나무 앞에 서서 끊임없이 경이로움 표현했다. 삶에서 받은 것들이 너무 많아, 죽기 전에 돌려주고 가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기로 하고 이미 70, 8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 면적이 여의도의 7배가 된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황무지에서 몇십 년간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장 지오노 작가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의 실사판이 아닐 수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무의 노래> 스틸 이미지 ⓒ 미디어나무

수십 년 전 44달러를 들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과학자로 살아가며 세포를 연구하며 우주를 만났다는 그녀가 맨해튼 할렘가 건물을 사게 된 것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스토리였다. 그 후 부동산으로 번 돈으로 니카라과에 맨해튼 크기의 땅을 사서 나무를 심어왔다고 한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돈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한 번도 그 돈을 내 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삶의 의미와 소명을 향한 단단한 중심과 힘이 느껴졌다. 그처럼 생각하고, 목표한 것을 현실로 이루는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 해답은 영화 전반에 배경처럼 깔린 그녀의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두려움이 있을 때는 황홀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

"지난 과거를 후회하게 되면 생명이 멈추고, 썩기 시작한다."

"우리가 자신을 보지 못하면 유명해지려는 공명심을 목적으로 살게 된다. 그렇기에 자기를 상실하게 되고 관념의 틀 때문에 보고, 느낄 수 없게 되고, 자연에서 멀어지게 된다."

교육자이자 엄마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비교와 경쟁을 기반으로 한 현실의 교육이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 자연과 연결하는 것과 반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동시에 진정한 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나 암기로 이루어질 수 없고, 행동과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신했다.

패널 대담과 관객과의 대화 ⓒ 달리아

지난 24일 다큐멘터리 영화 <나무의 노래> 상영회에 갔다. 묵직하고도 뭉클한 감동에 영화가 끝나고도 사람들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엔딩 크레디트에 주인공 다음으로 영화에 출현한 나무, 동물 등이 나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만든 감독이 어떤 마음으로 촬영했는지 단박에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뒤 이지혜 영화저널리스트의 진행으로 진재운 감독, 현경 교수, 김이나 작사가, 달시 파켓 번역가의 대담과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현경 교수의 <연약함의 힘>이라는 책에서 소개되었던 공주님의 이야기가 몇 년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진 이야기, 김이나 작가가 흔쾌히 내레이션을 수락했다는 이야기, 전갈에 쏘이는 등 여러 고생을 하며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 영화의 뒷이야기도 재미가 쏠쏠했다. 즉석에서 QR 코드로 만들어진 오픈채팅방에는 가슴 뜨거운 감상평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선재 스님도 감상을 나눠주었고, 영화 <수라>에 출현했던 정희정 님은 수라의 대사 "아름다움을 본 죄"를 언급하며, 이런 영화들이 100개의 극장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늦은 겨울밤임에도 400석이 넘는 자리를 꽉 채웠던 대부분의 관객들이 남아, 마치 나무들이 산소를 내뿜듯, 각자의 가슴에서 솟아 나온 감동의 여운을 밤 10시가 될 때까지 나누었다. 문을 열고 나서는데, 하얀 가루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금세 눈이 쌓이며 하얗게 뒤덮인 거리에 발걸음을 내딛다 보니, 영화에 나왔던 인생을 사는 자세에 대한 대사가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첫눈이 내린 거리에 처음 발을 내딛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낸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걸어갈 때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만나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무의 노래> 스틸 이미지 ⓒ 미디어나무

집에 도착해서는 문득, 대학생 때 읽고 좋아서 따로 적어두었던 나무에 대한 글이 떠올라 찾아보았다.

"나무들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중에서.

'나무는 말을 하고, 그녀는 듣는다'라는 영화 포스터의 말처럼, 그녀는 이미 나무의 노래를 듣고, 자신만의 고향과 행복을 찾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 <나무의 노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듣길 바란다.

'그 노래를 듣는 이들은 깨어날 것이고, 깨어난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무가 될 것이고, 그 나무들은 연결되어 숲을 이룰 것이며, 그 숲은 기어코 이 땅의 무수한 상처를 무한한 사랑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나무의노래#진재운감독#니카라과#조선공주#환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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