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경기도 포천의 한 돼지농장주가 10년간 농장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태국 국적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시신을 유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이주노동자가 근무했던 돼지농장.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 제공
[주간경향] 지난 1월 19일 제주도의 한 농장. 작업 중이던 60대 남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분뇨처리장에 빠졌다. 크레인으로 구조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분뇨에서 나오는 가스에 질식해 의식을 잃고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일주일 전인 1월 12일에는 전북 김제의 한 농장에서 추락 사고가 일어났다. 태국 국적의 남성이 가림막 보수 작업을 위해 3m 높이 지붕에 올라갔다가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안전 장구는커녕 사다리도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 작업을 했다고 한다. 추락한 남성은 뇌를 다쳤고, 현재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에는 전북 정읍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네팔 국적 남성 3명이 농장 관리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남성들은 이 농장에서 일하면서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루 뒤인 12월 20일에는 정읍의 또 다른 농장에서 네팔 국적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일하는 도중 잠시 쉬는 시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두 사건 모두 경찰이 경위를 파악 중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전국의 돼지농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돼지농장에서 반복되고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돼지농장에서는 잊을 만하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안전사고가 일어난다. 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도 이따금 수면 위로 올라온다. 재해 희생자가 한국인인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외국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희생된다. 폭언, 폭행, 괴롭힘 등은 거의 모두가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왜 돼지농장에서 이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지를 살펴봤다. 이주노동자 의존도가 높은 고용 구조, 다른 축산농가보다 위험한 작업 환경, 그럼에도 미비한 안전 의식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는 규모가 커지고 고도화된 양돈 산업의 이면이기도 하다. 잇단 사고에도 당국이 충분한 지도·감독에 나서지 않으면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돼지농장 지탱하는 이주노동자
우리나라 농림업 생산 품목 중에 생산액이 가장 많은 단일 품목은 무엇일까? 경작 농가만 100만가구에 달하는 쌀보다 생산액이 많은 품목이 하나 있다. 돼지다. 2024년 돼지 생산액은 약 9조2000억원 규모로 전체 농축임산물 중 1위를 차지했다. 생산량도 많고 소비량도 많다. 양돈업계의 규모화, 기업화가 이를 가능케 했다.
농산물 생산액 3위를 차지한 한우와 비교하면 돼지농가들이 얼마나 산업의 규모를 키워왔는지를 더 잘 알 수 있다. 돼지의 경우 전국 약 5500개 농장이 1100만마리의 돼지를 키운다. 농장 1곳당 평균 2000마리가량의 돼지를 키울 정도로 규모를 갖춘 셈이다. 반면 한우는 7만8000개 농장이 340만마리의 소를 키운다(이상 2025년 3분기 가축동향조사). 대규모로 소를 키우는 농장도 있지만, 전체 농장의 45%가량은 20마리 미만의 소를 키우는 소규모 농장이다.
여타 축산농가와 달리 돼지농장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사건·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도 이 규모의 차이와 관련 있다. 예컨대 소규모 농장의 비중이 높은 한우농가는 농가당 평균 고용 인력의 수가 많지 않다. 농장주가 자신이나 가족의 노동력을 우선 활용하다 보니 전체 고용 인력에서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5% 수준으로 낮다. 반면 농가당 사육두수가 많은 돼지농장은 노동력도 더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열악한 근무환경, 저임금 등의 이유로 내국인 노동력을 수혈하는 데 실패하면서 이주노동자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돼지농가는 1만7500여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는데 이중 48.9%가 이주노동자였다.
양돈농가 컨설턴트인 김정현 신박한컨설팅그룹 대표는 “양돈농가는 자동화가 좀 진행됐다 하더라도 사육두수가 많아 사람이 손으로 해줘야 하는 업무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 시골에 있다 보니 젊은 한국인은 거의 오지 않는다. 그만큼 외국인 비중이 늘어났고,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아지게 됐다. 현재는 외국인들이 관리자이거나 책임자인 경우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주노동자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안전관리는 그에 걸맞게 변화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돼지농장에서 일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이주노동자 대상 교육이나, 농장 내 위험 요인에 대한 외국어 표지판 비치 등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전북이주인권노동네트워크가 지난해 돼지농장 이주노동자 2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농장에 모국어로 된 안전 표지판이나 안내서가 없다고 답한 노동자가 15명에 달했다. 응답자 중 14명은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거나 교육 여부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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