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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속인 트럼프... 마음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평화위원회'를 공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 위원회는 원래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 이후 가자지구 재건을 감독하기 위해 구상됐으나, 헌장상 활동 범위가 가자지구로 제한돼 있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유엔(UN)에 맞먹는 기구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 연합뉴스/AFP

22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경제포럼이 열리고 있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를 출범시켰다. 참여를 약속한 국가들의 정상들과 관료들이 자리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위원회 헌장에 서명했다. 그는 "우리는 함께 수십 년의 고통을 끝내고, 수 세대의 증오와 학살을 중단하고, 해당 지역과 전 세계를 위해 아름답고 영구하고 영광스러운 평화를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서명식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바레인, 아르헨티나, 아제르바이잔, 인도네시아, 헝가리, 모로코, 파키스탄 등 주로 중동, 아시아, 남미 지역의 19개국이 참여했다. 백악관 고위관리는 21일 50개 이상의 국가에 초청장을 보냈고 그중 35개국 정도가 서명식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국들은 참여하지 않았고 헝가리 외에 유럽국가들의 참여도 없었다.

한국도 초청장을 받았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20일 "초대받은 협의체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어떤 국가가 참여할지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며 참여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결국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들이 평화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거나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힌 이유는 평화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의심 때문이다.

CNN이 입수한 헌장은 여러 면에서 평화위원회의 구성과 기능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위원회의 종신 의장을 맡는 것으로 이는 대통령 임기 종료 후에도 의장직을 계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장에 따르면 종신 의장인 트럼프 대통령은 "단지 자발적인 사임이나 직책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일 때 이사회의 전원일치 표결"로 교체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위원회를 사유화할 수 있고, 자신의 국제정치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 평화위원회를 악용할 수 있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가장 큰 의심을 부르는 건 기능에 대한 것으로 헌장은 평화위원회를 "분쟁의 영향이나 위협에 처한 지역에서 안정 증진을 추구하고, 신뢰할 수 있고 합법적인 통치를 복원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확보하는 국제기구"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위원회를 유엔의 역할과 기능을 대체할 기구로 생각하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하는 내용이다.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로 향하기 전 연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평화위원회가 유엔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의심에 종지부를 찍고 자신의 진짜 의도를 확인했다. 그는 "유엔은 그동안 유용하지 않았다. 난 유엔의 잠재력을 높이 사지만 유엔은 전혀 그런 잠재력을 실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은 내가 끝낸 전쟁 중 하나라도 끝냈어야 했다"며 자신이 8개의 전쟁을 끝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22일에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위원회 헌장 서명식에 앞서 로비를 가득 메운 기자들에게 "평화위원회가 완전히 구성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유엔과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며 평화위원회와 유엔이 대등한 위치에 설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8개 전쟁을 끝냈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건 모두 휴전"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BBC는 일부 휴전은 이미 깨졌고 트럼프 대통령이 끝낸 전쟁은 작년에 벌어진 이스라엘과 이란 간 12일 전쟁 뿐이라고 지적했다.

서방 국가들과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들은 평화위원회를 유엔을 대체할 기구로 만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고 이것이 평화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19일 프랑스 외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미국의 평화 계획을 지지하지만 유엔을 대체할 기구의 수립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슬로베니아 등도 비슷한 이유로 참여를 거부했다.

유럽 국가들이 참여를 거부한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러시아의 우방인 벨라루스에도 초청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19일 푸틴 대통령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이에 대해 이베트 쿠퍼 영국 외무장관은 BBC에 "푸틴 대통령이 참여해 평화를 얘기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가자 지구' 언급 전혀 없어... 세계를 속인 트럼프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공개된 '평화위원회' 로고. 이 위원회는 원래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 이후 가자지구 재건을 감독하기 위해 구상됐으나, 헌장상 활동 범위가 가자지구로 제한돼 있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유엔(UN)에 맞먹는 기구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 AFP/연합뉴스

평화위원회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헌장에 가자지구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종전과 재건을 위한 구상으로 작년 9월에 20개 항으로 된 평화 구상을 제안했고 여기에 평화위원회 구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평화 구상에 따라 작년 10월 10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이 발효됐고 현재 종전을 위한 2단계 협상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애초 구상에 따르면 2단계 협상에서 하마스 무장 해제, 가자지구 재건과 통치 등을 감독하기 위한 평화위원회 구성과 구체적 역할 등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유엔 안보리는 작년 11월 17일 미국이 제안한 가자지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 결의안에는 평화위원회 수립이 포함되어 있었다.

평화위원회 헌장에 가자지구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을 기만하고 세계를 속인 것과 다름이 없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말한 것처럼 가자지구의 종전과 재건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불안한 휴전 상황과 식품을 포함한 모든 물자의 부족으로 여전히 고통 속에 사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상황에 대해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점을 봐도 그렇다. 휴전 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공격과 주민 학살에 대해 이스라엘에 어떤 경고도 하지 않은 것 또한 그렇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0일 휴전 후 올해 1월 20일까지 이스라엘 공격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466명이고 부상자는 1294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평화위원회에 참여시켰다.

평화위원회 헌장에는 가자지구가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서명식에서 '새로운 가자(New Gaza)' 건설 계획을 담은 슬라이드를 상영했다. 슬라이드는 지중해를 따라 마천루가 가득 들어선 가자지구의 모습과 단계적인 주거, 농업, 공업 지역 개발을 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성공할 것이고 멋진 일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부동산을 잘 알고 있고 부동산의 전부는 위치다. 바다에 위치한 (가자지구를) 보라. 멋진 소유지를 보라"며 마치 부동산 사업가가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 주민들을 위한 재건과 사회 복구가 아니라 재개발과 투자에 관심이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자지구 주민들이 당장 필요한 건 충분한 식량과 숙소인데 그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주민들이 들어가 살 수도 없는 마천루를 내세우며 "새로운 가자"를 언급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 계획,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 서명식

현재로선 트럼프의 의도대로 평화위원회가 역할과 기능을 할지 알 수 없다. 현재 상황으로 봐선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을 대체하는 건 국제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대다수 서방국들의 저항이 큰 상태고 국제사회의 합법적인 의결기구는 여전히 유엔이기 때문이다. 또한 참여국들의 면면으로 볼 때 그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줄을 선 것 외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경험과 인적 자원 등의 부족으로 전쟁 종식과 전쟁 후 평화구축 등에 기여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자지구 전쟁 종식과 재건 관련해서도 아랍 및 이슬람 국가들이 반대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대부분의 가자지구 재건 비용은 아랍 국가들이 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랍 및 이슬람 국가들이 평화위원회에 참여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자지구기 때문이다. BBC는 아랍국가들과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들이 평화위원회에 참여한 이유를 "가자지구의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와 재건을 위해서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평화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들어 점진적으로 유엔을 대체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국제문제를 다루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망이 성공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193개 유엔 회원국 대다수를 설득해 참여시켜야 하고 아무리 한계와 허점이 많다 해도 80년 넘게 세계가 구축해 온 유엔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를 짧은 시간에 흔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임기는 3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미국 대통령이 아닌 트럼프는 자기 앞에 국가들을 줄 세울 수 없다. 결국 세계를 자기 손안에 넣고 말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은 세계를 흔들고 국제사회에 충격을 줄 수는 있지만 성공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미 서명식이 평화위원회의 향후 행보가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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