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방위 전략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게 됐다. 한국은 오랫동안 미국을 혈맹으로 규정해 왔지만, 이제 미국은 그러한 정서적 언어에 더 이상 전략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트럼프식 동맹 인식에서 과거의 희생과 연대는 설득의 근거가 되지 못하며, 협상력을 높이는 자산으로도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호소는 변화된 조건을 읽지 못한 낡은 언어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지만, 동맹을 대하는 태도는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 트럼프식 외교는 예측 가능성을 전략자산으로 보지 않고, 불확실성 자체를 협상 도구로 활용한다. 동맹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조건이 맞으면 거래하고 아니면 압박하는 상대가 된다.
이 변화는 연인 관계에 비유할 만하다. 과거의 관계가 믿음과 절개에 기반했다면, 지금은 조건이 맞을 때 유지되는 계산의 관계다. 이런 환경에서는 신뢰를 호소하기보다, 계속 만나고 싶게 만드는 조건이 필요하다.
상대가 변했고, 그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조건이 됐다. 그럼에도 관계 유지가 중요하다면, 과거의 언어와 방식에 머물 수는 없다. 변화를 인정하고 관계의 조건을 다시 설계하느냐, 아니면 감정에 기대다 선택의 대상에서 밀려나느냐만 남았다.
이 같은 변화는 추상적인 가정이 아니다. 한국의 대미관계는 필수적이지만, 그 관계가 자동 개입이나 무조건 헌신 위에 놓여 있다고 기대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변화된 조건 속에서 한국이 어떤 설득력을 보여줄 것인가다.
이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 국방전략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이 오늘날 전쟁을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고 관리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군사 지원은 철저한 정치적 계산과 비용 평가의 대상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현대전의 승패가 미국 수준의 최첨단 무기를 누가 더 많이 보유하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밀한 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지만, 전쟁을 끝내지는 못한다. 전선에서 더 자주 작동하는 것은 포탄과 보급, 수리와 생산, 그리고 소모된 전력을 얼마나 빨리 다시 채울 수 있느냐라는 문제다.
이 점에서 2024년 9월 발행된 미국 의회의 보고서(CRS "Defense Production for Ukraine")는 솔직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국방산업 구조 자체가 고강도 장기전에 맞게 설계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냉전 이후 방산기업의 통합과 생산라인 축소, 저강도 분쟁 중심의 전략 사고가 누적되면서, 대규모 소모전을 감당할 산업적 체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로 155밀리미터 포탄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증산 속도와 납기, 공급망 병목은 여전히 전략적 부담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을 '지원'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동원'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를 보충하는 동시에, 미국 내 재고를 채우고, 동맹과 함께 글로벌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관리하고 있다. 미 의회가 강조하는 것은 "누가 더 많이 도와줬는가"가 아니라, "누가 전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가"다.
새로운 한미동맹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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