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원로 홍갑표 선생 추모식이 5일 오후 7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 김영란 기자
유가족을 비롯해 국민주권연대와 진보당 고문인 권오창·이건 선생, 국민주권연대 회원,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와 당원, 박준의 국민주권당 상임위원장과 당원,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권오혁·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 주재석 자주연합 상임대표,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 등이 추모식에 함께했다.
추모식은 참가자들이 선생을 기리며 묵념하면서 시작됐다.
선생은 서울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입학하고 이듬해인 1960년 4.19혁명을 겪었다. 당시 선생은 장기 독재를 이어가려는 이승만의 폭거에 맞서 맨 앞장에서 목숨 걸고 싸웠다. 그 뒤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하면서, 군부 독재세력의 모진 탄압과 고문을 이겨내고 한평생을 자주·민주·통일 운동에 바쳤다.
교사직에서 퇴직한 뒤에도 선생은 국민주권연대·진보당 고문으로서 후배 동지들에게 귀감을 주며 왕성한 투쟁을 펼쳐 왔다.
동지들과 함께하는 선생의 밝은 모습을 담은 영상,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바친 삶, 동지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이 울려 퍼지자 참가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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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선생은 평소에 민족과 동지들을 위한 “사랑”으로 넘쳐났노라고 참가자들이 회고했다. 선생의 부인인 오선자 여사가 댁을 찾은 동지들을 위해 풍성한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선생은 동지들을 위해 뜨거웠던 젊은 시절의 투쟁을 돌이키며 노래하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지난 4일 숙환으로 별세한 선생은 바로 며칠 전에도, 병원을 찾은 동지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각계가 추모사를 했다.
신은섭 국민주권당 지역전략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선생이 “젊은 동지들”보다도 훨씬 더 열심히 정세를 공부하고, 탐독했다면서 “선생님이 부른 그 노래, 선생의 드높은 심장 박동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비통하다”,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보낸 응원과 사랑에 더욱 힘을 내 내란 청산, 국민주권 실현의 그날을 앞당기겠다”라고 다짐했다.
권오혁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우리가 함께했던 선생님의 세월은 늘 노래와 해학이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세균전도 직접 겪은 선생님은 미국의 지배와 전쟁 책동에 분노했다. 그러나 그 분노도 날로 무너져 내리는 미국을 조롱하며 해학으로 풀어냈다. 그 해학의 말씀에 우리는 통쾌했고 즐거웠다”라고 전했다.
또한 “민주란 위에서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한 말씀, 한국 사회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그 말씀을 선생님의 유지로 받들겠다”라면서 “선생님이 넘겨준 역사의 계주봉을 굳건히 잡고 우리가 해야 할 시대적 임무, 역사적 사명을 다해 가겠다”, “자주와 민주, 평화, 통일의 새 세상을 우리 촛불국민과 함께 기필코 만들어내겠다”라고 피력했다.
황선 평화이음 이사가 추모 시 「4월생」, 권말선 시인이 추모 시 「홍갑표 스승님」을 통해 선생의 삶과 투쟁을 기렸다. (아래 추모 시 전문)
대학생들을 대표해 문한결 경기인천대학생진보연합 대표가 추모사를 했다.
문 대표는 “며칠 전 홍갑표 선생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뵈었다. 그때 유가족들과 선배들에게서 선생님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이 싸움이 참 오래됐다는 것을 느꼈다”라며 “오랜 시간 늘 후대들을 응원하고, 지원한 선생님에게 존경과 감사를 올린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늘 원로 선생님들, 장기수 선생님들을 만나 뵐 때면 우리가 얼마나 풍족한 조건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선생님처럼 먼저 싸운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제국주의 미국이 몰락해 가고, 반미·자주의 연대가 세계에 넘쳐나는 기회도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청년다운 용기와 겸손함, 무엇이라도 뚫고 나가는 투지와 단결로 끈질기게 싸워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 문한결 대표. © 김영란 기자
“아- 사랑아 남김없는 사랑아/그대 영원히 우리 가슴에/조국 위하여 동지들을 위하여/다바친 그대”
노래패 ‘우리나라’가 선생이 동지들과 후대들에게 남긴 사랑을 되새기며 「남김없는 사랑」을 불렀다.
선생의 장남인 홍성혁 씨는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은 아버님을 기억하는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처럼 행동해 달라”라고 당부한 뒤 선생의 장례를 극진히 모시는 동지들을 겪어보니 “우리 아버지는 참 행복하시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즐거운 담소도 나누고, 너무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홍갑표 선생님’을 진심으로 기억”해 달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참가자들은 추모식을 마치며 자주·민주·통일의 한길에 앞장선 선생의 뜻, 열정, 소망을 함께 이어가겠노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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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영아 국민주권연대 운영위원장이 선생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유정숙 배우가 선생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남긴 말을 전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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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섭 위원장. © 김영란 기자
▲ 권오혁 공동대표. © 김영란 기자
▲ 추모 시 「4월생」을 낭독하는 황선 이사.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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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패 ‘우리나라’ 단원들이 노래를 하기에 앞서 선생과의 추억을 회고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노래패 ‘우리나라’의 공연. © 김영란 기자
▲ 선생의 부인인 오선자 여사. © 김영란 기자
▲ 선생의 장남 홍성혁 씨. © 김영란 기자
아래는 추모 시 전문이다.
「4월생」
나는 4월을 살았소
광장에서 태어나
광장을 지키고
광장을 그리워하는 것이 생이었소.
그 해
총구 앞에서 어깨를 겯던
까까머리 단발머리 소년 소녀들,
저마다 다 쓰지 못한 유언장을
품고 질주하던 얼굴들,
꼭 4월의 꽃같던 벗들
북한산 자락에 뉘어두고
나는 매일 매일
그들의 못다한 삶을 살았소.
그러니 나의 인생은 4월
이승만의 동상을 무너뜨리던
궁극의 정치, 그것을 잊지 못 해
민주주의를 갈망했고,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애타는 그 열망 잊지 못 해
나의 광장은 판문점으로 판문점으로
번져만 갔소.
4월의 벗들이 살아온 듯
맑은 눈빛의 젊은 동지들을 만나
60년 4월을 들려줄 때,
열사 앞에 의리를 지키며 살아 다행이다 여겼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홍안의 동지들, 고마웠소.
떠나는 나를 배웅하러
병상으로 자꾸만 자꾸만 밀려와
귀에 대고 속삭여줘서 고맙소.
4월을 거듭 산 나에게 그대들은
4월이 낳은 열매였소.
광장을 지켜 산 보람이었소.
내 광장의 깃발이 선 곳은 백두산정.
내내 펄럭이며
나를 불러왔다오.
이제 나를 품고
통한의 분계선을 걷어버리고
그곳까지 내달려 주시게.
나는 동지,
동지들은 바로
나입니다.
「홍갑표 스승님」
그런 스승님을 뵈었습니다
투쟁 광장에 나서면
늘 밝은 미소로 반기시며
따뜻한 악수 선뜻 주시며
길을 잃지 않도록
두려워하지 않도록
든든한 산처럼
기대일 바위처럼
울타리가 되어 주신
그런 스승님을 뵈었습니다
외세가 뿌려댄 전쟁의 세균에
죽음의 경계 넘나들던 소년이
독재의 폭압 정면으로 맞받아
거침없이 내달리던 청년으로
구속 고문 협박이 막아서도
삶의 걸음걸음 자욱자욱이
애국 애민 애족 애향이셨던
신체 마디마디 상처보다
산하에 맺힌 상처가 더 괴로우셨던
지극한 사랑으로 살아온 삶이란
고행 아닌 기쁨이었음을 보여주신
소년같이 해맑은 얼굴,
그 얼굴만 보아도 다 알게 해 주신
그런 스승님을 뵈었습니다
오늘 투쟁에 나서는
우리 삶이 스승님 삶과
같은 맥으로 이어짐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해 주신
선명히 더욱 선명히
자주 민주 통일
그 길로만 올곧게 가라,
웃으며 가라 노래하며 가라
춤을 추며 가라고
일깨우고 북돋우시는
그런 스승님을 뵈었습니다
고마우신 스승님을 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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