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은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시작해 링컨기념관 방향으로 이어졌다. 동선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었다. 내전의 분열을 넘어 연방을 지켜냈던 링컨, 그리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선언을 다시 역사 위에 세운 장소. 그 앞에서 울린 침묵은, 오늘날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극단적 분열과 맞닿아 있었다. 참가자들은 “증오를 멈추라”, “자비는 힘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작은 팻말을 들고 있었지만, 구호는 외치지 않았다. 확성기도 없었다. 침묵이 곧 메시지였다.
이 장면이 특별히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름이 다시 미국 정치의 중심에 서 있는 시점과 겹치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절제와 성찰의 발걸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힘을 과시하며 세계의 규범을 흔드는 정치가 있다. 대비는 선명하다. 평화의 걷기는 특정 후보를 겨냥한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행진이 던진 질문은 분명히 오늘의 권력을 향해 있었다. 우리는 어떤 리더십을 원하는가. 힘으로 군림하는 정치인가, 아니면 규범을 존중하는 정치인가.
트럼프식 정치는 스스로를 “강한 리더십”이라 부른다. 거래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동맹을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하며, 국제 규범을 재협상의 대상으로 돌리는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결단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강함이 무엇을 남겼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동맹은 신뢰의 공동체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의 카드로 취급되었고, 국제기구와 다자협약은 불신과 탈퇴의 위협 속에 놓였다. 기후협약, 무역 질서, 인권 담론, 동맹 외교 — 수십 년간 축적해온 합의의 구조는 “미국 우선”이라는 구호 아래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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