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타파TV 대표 이종원씨가 2021년 11월 개혁국민운동본부(개국본) 전국 임원진 회의에서 "추미애 출마는 나와 정청래, 김어준이 짠 고도의 정치공작"이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개국본 전 회원이 뉴탐사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같은 취지의 발언은 호남 개국본 회원들이 만든 '행동일지'라는 기록물에도 남아 있다. 이 회원은 회의 참석자가 20여명이었고, 발언을 직접 들은 사람이 자신 말고도 여러 명이라고 말했다.
증언자는 신원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이종원씨 지지자들의 좌표 찍기와 온라인 공격을 우려해서다. 인터뷰는 AI 음성변조를 거쳐 방송에 나갔다. 변조 전 원본 음성은 뉴탐사가 보관하고 있다.
행동일지는 호남 지역 개국본 회원들이 2021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1년 동안의 활동을 날짜별로 정리한 문서다. 개국본은 서울에 본부를 뒀지만 실제 동원력은 호남에서 나왔다. 이 문서는 2022년 리포액트 허재현 기자와 정숙 시민기자가 한 차례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그때는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 정숙 기자가 뉴탐사에 다시 제보하면서 재조명됐다.
개국본의 전신은 '개싸움 국민운동본부'다. 2019년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회계 논란이 불거지자 이씨는 이 조직을 해산하고 2021년 3월 사단법인 형태의 개혁국민운동본부를 새로 세웠다. 20대 대선 경선이 시작되던 시기와 겹친다. 두 조직 모두 대표는 이씨였다.
"이재명 이름은 거명하지 못하게 했다"
행동일지에는 2021년 7월 4일 청주 CJB컨벤션센터 추미애 후보 응원전 기록이 있다. 이씨 바로 아래 총괄본부장이었던 '백두'라는 닉네임의 인물이 "추미애 후보님만 응원토록 했고 이재명 후보의 이름은 절대로 거명하지 못하게 했다"고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표를 분산시키기 위한 고도의 정치공작의 일환으로 의심된다"는 회원들의 판단이 붙어 있다. 이씨와 총괄본부장이 "개국본이 추미애 후보의 캠프"라고 말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당시 추미애 후보는 당내에서 고립돼 있었다. 그를 돕는 현역 의원이 사실상 없었다. 법무부 장관 시절 윤석열 검찰총장과 충돌한 것을 두고 당내 여론이 나빴던 탓이다. 그 빈자리를 개국본이 메웠다.
회원들의 속내는 달랐다고 증언자는 말했다. "본부에서 추미애를 응원하라고 하니 하는데 우리의 마음은 이재명이다. 이재명이가 월등히 지지도 높고 이재명은 응원 안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항의가 이어지자 본부에서 돌아온 답은 이랬다고 한다. "이재명을 응원 못 하게 하면 우리 해체해 버리란다."
추미애 비서실장에게 쏟아진 욕설
행동일지에 따르면 2021년 10월 2일 부산 합동연설회에서 흐름이 뒤집혔다. 개국본 회원들이 추미애와 이재명을 함께 외치자 추미애 후보 측 총괄 비서실장 천O배씨가 추미애만 응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이씨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천씨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고 문서에 적혀 있다. 이 장면을 본 회원 대다수가 크게 당혹스러워했다는 기록도 함께 남아 있다. 추미애만 응원하라고 회원들을 단속하던 총괄본부장 백두까지 이씨의 욕설 대상이 됐다.
인천 행사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씨는 그날 저녁 방송에서 천씨를 다시 비난했다. 10월 3일 수원 합동연설회부터 개국본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행동일지에는 "개국본 대표 이종원 때문에 두 패로 갈라진 응원자"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추미애를 진짜로 응원하겠다는 회원들은 '찐추'라는 이름으로 따로 천막을 차렸다.
기자회견은 호남이 하고, 차는 이종원이 탔다
2021년 10월 10일 이재명 후보가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그러나 이낙연 후보를 지지하던 의원들이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으면서 선대위는 겉돌았다. 11월 19일 호남 개국본 회원들이 광주 서구 치평동 민주당 광주시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명의 핵심은 이랬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구성한 지금의 나눠먹기식 선대위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므로 즉각 해체되어야 한다." 후보 중심으로 선대위를 다시 짜라는 요구였다. 며칠 뒤 송영길 대표는 당의 권한을 이재명 후보에게 넘겼다.
증언자는 이 기자회견에 이씨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 이종원이는 이 기자회견에 개입을 했냐. 안 했어요. 전혀. 그 사람은 이재명 후보가 이렇게 올라가는 걸 싫어하는 놈이야"라고 그는 말했다. 피켓 하나에 7000원씩 드는 비용도 호남 회원들이 각자 부담했다고 했다. 행동일지에 실린 기자회견 사진에도 이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2021년 11월 20일 시사타파TV 라이브 영상 캡쳐
이재명 후보는 11월 20일 자신의 카니발 차량에 이씨를 태웠다. 차가 움직이는 동안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라이브 방송을 함께 했다. 이 방송은 이재명TV와 시사타파TV로 동시에 나갔다. 증언자는 이씨가 그 뒤 방송에서 자기 공으로 돌렸다고 했다. "자기가 회원들한테 국회의원들한테 전화하라고 시켜 갖고 전화하니까 이렇게 했다고 거짓말을 치더라고. 그래 놓고는 우리한테는 수고했다고 말 한마디 안 한 놈이야."
이씨는 지금도 이 카니발 동승을 앞세운다. 전주대 강연 행사장에서 뉴탐사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를 묻자 이씨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내가 이낙연을 지지하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나를 카니발에 태웠겠냐"고 맞받았다.
행동일지에는 또 다른 대목이 있다. "대표 이종원은 회원들을 생각해서 말하는 듯 열심히 하지 말라고 했다"는 기록이다. 문서에는 이를 두고 "격려를 하는 듯 포장했지만 지역 임원들 힘빼기 발언이었다"고 적혀 있다.
증언자는 이런 말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라고 했다. "투표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사람 새끼 같으면 지지를 한다면 여러분 우리가 힘들지만 며칠 안 남았으니까 열심히 합시다. 이렇게 해야 맞잖아요. 그런데 열심히 하지 말래요. 어디 같은 데 오지도 말래."
임원 20여명 앞에서 정청래·김어준을 거론했다
증언자는 이재명 후보 확정 뒤 열린 전국 임원진 회의에서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씨가 며칠 전부터 방송에서 중요한 회의라고 예고해 지방 회원들이 새벽밥을 먹고 올라왔다고 한다. 회의 중 부산 회원들이 왜 이재명을 응원하지 못하게 했느냐고 따지자 이씨가 열을 냈다는 것이다.
"추미애는 저하고 정청래하고 어준이 형하고 고도의 정치공작을 했다. 공작을 해 가지고 추미애를 내세우고 이런 것은 공작이었다."
▲호남개국본 행동일지에 기록된 이종원의 발언내용(좌), 문제의 발언 당시 사진(우)
행동일지에는 정청래·김어준 두 사람의 이름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재명을 살리기 위해서 추미애를 등판시켰다. 원래 작전이었다"는 이씨 발언이 기록돼 있다. "막판에 추미애가 결선을 갔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하니까 내가 그건 안 된다 싶어서 고도의 정치공작을 한 거다"라는 대목도 붙어 있다. 증언자는 이씨가 이 말을 마친 뒤 좌중을 향해 한마디를 덧붙였다고 했다. "설마 이거 녹음하신 분들은 없겠죠." 발언이 나온 회의 현장 사진도 행동일지에 실려 있다. 왼쪽 끝에서 모자를 쓰고 마이크를 잡은 인물이 이씨다.
텔레그램도 문자도 읽지 않았다
뉴탐사는 8월 31일 오후 6시 41분 김어준씨에게 텔레그램으로 질문을 보냈다. 2분 뒤인 오후 6시 43분에는 정청래 의원에게 같은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이종원이 2021년 11월 개국본 임원들 앞에서 추미애 출마는 본인과 정청래, 김어준의 정치공작이라고 했는데 혹시 이런 얘기 들은 적 있나요"라는 내용이다. 두 사람 모두 방송이 끝날 때까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정 의원은 여론조사 조작 의혹 관련 질의를 보낸 8월 24일 이후 모든 문자에 응하지 않고 있다.
뉴탐사는 추미애 전 장관 캠프에서 일했던 관계자와도 통화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공작 차원에서 추미애를 등판시켰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놀랐다고 한다. 다만 이씨 쪽에서 사후에 그렇게 평가했을 가능성은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씨는 8월 31일 시사타파TV 정규 방송을 하지 않다가 뉴탐사 방송이 진행되는 도중 방송을 시작했다.
이번 보도는 개국본 관련 취재의 1단계다. 뉴탐사는 이씨의 해명 내용을 확인한 뒤 후속 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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