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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위기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것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샘터교회 원로목사. 시인. 부산예수살기 대표.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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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위기로 바라보지 못하고 각각 대응 문제

잠시 질주를 멈추고 '어디로 가고 있나' 물을 때

사회 덮친 복합 위기 출구도 사람에게서 찾아야

사람이 존중 받고,권력이 군림하지 않는 사회로

평생 일한 사람들이 은퇴 이후 가난과 고립에 놓이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노년의 빈곤은 개인의 준비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사회를 지탱해온 세대에게 사회가 어떤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사진 pixabay

한국 사회는 지금 여러 개의 위기를 동시에 통과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만으로는 현재의 불안을 설명할 수 없다. 정치가 혼란스럽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출생률 하락, 청년의 좌절, 노년의 빈곤, 주거 불안, 노동의 양극화, 지역의 소멸, 교육 경쟁, 기후위기, 공동체의 해체가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현상을 하나의 구조적 위기로 바라보지 못하고 각각의 문제로 나누어 대응하고 있는 데 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어쩌면 미래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하며 집을 마련하고 가정을 이루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부모 세대가 경험했던 상승의 사다리가 다음 세대에게는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이유를 개인의 가치관 변화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집을 구하기 어렵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 아이를 낳은 뒤 감당해야 할 교육비와 돌봄 비용도 두렵다. 경쟁에서 한 번 밀려나면 다시 올라서기 어렵다는 불안도 크다. 개인에게 출산을 설득하기 전에 사회가 아이를 낳아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인구위기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사랑하고 노동하고 늙어가는 삶의 조건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청년들이 왜 미래를 포기하는지 묻지 않는다면 어떤 정책도 오래갈 수 없다. 노인의 삶도 심각하다. 평생 일한 사람들이 은퇴 이후 가난과 고립에 놓이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노년의 빈곤은 개인의 준비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사회를 지탱해온 세대에게 사회가 어떤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한국의 노동 현실도 위기의 중심에 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용 형태에 따라 임금과 복지가 달라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노동의 존엄을 말하면서 노동자의 삶은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다.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중요한 통로다. 노동이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만 전락하면 사람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기 어려워진다.

플랫폼 노동과 인공지능의 확산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고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기술 발전이 소수에게 자산과 권력을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기술은 해방의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불평등의 장치가 될 수 있다.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주거 문제도 마찬가지다. 집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공간이지 투기의 대상만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주택은 오랫동안 강력한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집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 세대 간 격차와 결합하면서 청년들의 박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문제를 넘어 주거의 권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났든, 어떤 부모를 만났든, 자신의 노동으로 안정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주거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연대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또 다른 위기의 현장이다. 한국의 교육열은 높은 수준의 인적 자원을 만들어내는 힘이 되었지만 이제는 지나친 경쟁이 아이들의 삶을 압박하고 있다. 대학 입시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서열화되고 성적이 인간의 가치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 교육은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

교육은 경쟁에서 이기는 존재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성적과 대학의 이름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경제적으로 성장하더라도 사회는 더욱 황폐해질 것이다.

 

자유는 처음부터 모든 인간에게 허용된 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민들이 오랜 시간 권력과 특권에 맞서 확장해온 역사적 산물이었다.

민주주의가 권력을 견제하고 있는가

정치의 위기도 깊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 제도에 그치지 않는다. 권력을 감시하고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제도적 형식이 존재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자신에게 유리한 목소리만 듣고 비판을 불편해하며 시민을 정치적 동원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민주주의의 내면은 빈약해진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권력 자체보다 권력이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누구든 권력을 가지면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는가이다. 대통령도, 국회도, 정당도, 지방정부도 시민의 비판 앞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정당 역시 선거 때만 시민을 찾는 조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민의 삶을 듣고 정책으로 응답하며 내부의 잘못을 스스로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정당이 권력을 얻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순간 시민은 수단이 되고 정치는 권력 획득의 기술로 전락한다.

언론의 위기도 빼놓을 수 없다. 민주사회에서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조회수와 구독자, 광고와 정치적 영향력이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자극적인 갈등과 분노가 뉴스의 중심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회가 양극화될수록 언론은 더 차분하고 깊어져야 한다.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걸러내며 권력자와 시민 모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언론이 진영의 확성기가 되는 순간 시민은 사실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게 된다.

적대와 고립을 넘어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또 하나의 심각한 위기는 혐오와 적대의 확산이다. 세대와 성별, 지역과 계층,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가 넘쳐난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 전에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민주주의에서 의견의 차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차이를 적대감으로 바꾸는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토론의 공간을 잃는다.

공동체의 해체도 심각하다. 도시화와 개인화가 진행되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지만 외롭다. 수많은 사람과 온라인으로 접촉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사람은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고독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가 약해질수록 고독은 사회적 문제가 된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돌봄이 가족에게만 맡겨져서도 안 되고 시장의 상품으로만 취급되어서도 안 된다.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돌봄의 구조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폭염과 집중호우, 산불과 가뭄, 생태계의 변화는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경제성장을 이유로 자연을 무한히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강하다.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강을 콘크리트로 덮고 산을 깎고 숲을 없애면서 그 결과가 인간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생태계가 무너지면 결국 인간의 삶도 무너진다.

성장의 방향과 국가의 책임을 다시 묻다

성장의 개념도 다시 물어야 한다. 국내총생산이 증가하고 건물이 높아지고 소비가 늘어난다고 해서 인간의 삶이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성장하는지, 노인들이 얼마나 존엄하게 늙어가는지, 노동자가 얼마나 인간답게 일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종교 역시 이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종교가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조직과 재산, 권위와 영향력을 지키는 데 몰두한다면 존재 이유를 잃게 된다. 교회와 사찰을 비롯한 종교 공동체가 사회의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에 서지 못한다면 신앙의 언어는 공허해진다. 종교의 본래 자리는 권력의 곁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의 곁이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 해고된 노동자, 차별받는 사람, 돌봄에서 소외된 사람, 전쟁과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종교의 사회적 책임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위기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첫째, 사람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경제성장이나 정당의 승리, 정부의 성과보다 인간의 존엄을 우선해야 한다.

둘째,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결과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출발선이 지나치게 벌어지지 않도록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 민주주의를 생활 속으로 확장해야 한다. 선거 때 투표하는 것만 민주주의가 아니다. 직장과 학교, 지역사회와 가정에서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넷째, 경쟁보다 협력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경쟁이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경쟁만으로 사회를 운영할 수는 없다. 인간의 삶에는 돌봄과 연대, 신뢰와 배려가 필요하다.

다섯째, 자연을 성장의 희생물로 삼지 말아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경제는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경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여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사회·문화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5.9.11. 연합뉴스

결론 : 위기의 출구를 찾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다. 가난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성장했고 권위주의를 넘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으며 세계적인 경제와 문화의 역량을 갖추었다. 그러나 성취가 크다고 해서 앞으로의 길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질주가 아니라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무엇을 위해 성장하는가.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왜 교육하는가. 노동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국가는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늙고 죽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경제성장률과 지지율, 주가와 집값의 숫자만 바라본다면 한국 사회의 깊은 위기를 놓치게 된다. 위기의 본질은 숫자 뒤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다.

한 청년이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것이 위기다. 한 노인이 가난 때문에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이 위기다. 노동자가 내일 해고될까 두려워한다면 그것이 위기다. 아이가 성적 때문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의심한다면 그것이 위기다. 누군가가 차별 때문에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이 위기다. 이웃의 고통을 보면서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한다면 그것 역시 위기다.

결국 한국 사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성장률만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 공동체에 대한 신뢰,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회복해야 한다. 사회는 제도와 건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서로를 경쟁자로만 바라보던 시선을 이웃으로 돌리고, 약자를 실패한 사람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함께 살아가야 할 시민으로 바꾸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정말 위기라면 그 위기의 출구 역시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 성공한 사람만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누구도 삶의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사회,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는 사회가 아니라 시민에게 책임지는 사회, 자연을 정복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위기는 끝이 아니다. 위기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더 빠르게 달릴 것인가, 아니면 멈추어 방향을 바꿀 것인가. 한국 사회의 미래는 결국 그 선택에 달려 있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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