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아들이 묻는다.
"올해 추석 연휴에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곁에 있던 며느리도 기대에 찬 얼굴로 생글거린다. 따로 사는 큰아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큰댁에 가서 벌초도 하고 성묘도 미리 마쳤다고 했다. 그 정도면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추석연휴에는 처가에 인사드리고, 계획한 일정이 있으면 너희끼리 편하게 보내라."
며느리였던 내가 배운 것
우리 집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음식을 장만하거나 온 가족이 반드시 한 집에 모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하지만, 그 시간을 위해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싶지는 않았다.
한동안은 두 아들 가족이 우리 집에 모여 명절을 보냈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머니" 하며 따라다니고, 거실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복작복작한 집 안에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다. 그런 날도 분명 행복했다.
어린아이가 늘어날수록 며느리도 힘들어 하고 나도 피로가 쉽게 몰려들곤 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자리를 펴고 설거지를 하고, 모두 돌아간 뒤에는 흐트러진 집을 정리해야 했다. 즐거운 연휴를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즐거운 마음만큼 지치기도 했다.
며느리들도 누군가의 귀한 딸인데 왜 시댁부터 찾아야 할까. 가족을 만나 함께하는 일이 왜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노동이 되어야 할까. 그 물음에서 우리 집의 새로운 명절이 시작되었다. 내가 며느리들에게 "우리는 자주 만나니까 친정부터 편하게 다녀와라" 하고 말하게 된 이유다.
나 역시 며느리로 명절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시골집에 계신 시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들을 기다리셨다. 아들 삼형제와 며느리 셋이 모이면 집 안은 잔치 준비로 떠들썩했다. 힘들고 고됐지만 나는 그 북적거림이 좋았다. 친정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내게는 여러 식구가 함께하는 명절이 더욱 따뜻하고 귀했다.
그러나 차례상을 물리고 나면 집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형님과 동서는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을 감춘 채 시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시어머니는 곧 딸들과 사위가 올 텐데 어디를 가려 하느냐는 눈빛으로 두 며느리를 붙잡으셨다.
시어머니에게는 딸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고, 며느리들에게는 친정 부모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딸은 친정에 와야 하고, 다른 집의 딸인 며느리는 시댁에 남아 손님을 맞아야 했다. 그 모순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찾아갈 친정도 없으니 손님맞이는 제가 해도 될 것 같아요. 고모들도 며느리잖아요. 친정에 오려고 얼마나 서둘렀겠어요. 형님과 동서도 같은 마음일 테니 다녀오라고 하세요, 어머니."
그 뒤로 명절 풍경이 차츰 달라졌다. 다 함께 아침을 먹고 나면 형님과 동서는 친정으로 향할 준비를 했고, 그들이 떠난 자리는 시어머니의 두 딸과 사위가 채웠다. 친정을 찾은 딸들이 서로 자리를 바꾼 셈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먼 훗날을 마음속으로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며느리가 생기면 눈치 보기 전에 먼저 보내주어야지. 가도 되느냐고 묻기 전에 얼른 다녀오라고 말해주어야지.
따로 또 같이 보내는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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