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문제점은 대법원과 병렬적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의 구성 방식과 비교해 보면 금방 인식된다. 헌재의 경우도 사법행정은 헌재 소장이 담당하지만, 재판작용에 있어서는 소장은 다른 재판관과 마찬가지로 명실상부 한 표의 권한만을 가질 뿐이다. 당연히 이에 걸맞게 헌재 소장은 대법원장과는 달리 재판관의 임명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이것이 헌법원리와 사법권 독립의 원칙에 부합됨은 물론이다.
이처럼 지극히 불합리한 제청권을 통해 대법원장이 동료 대법관의 임명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더 나아가 사실상의 임명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제청권을 다소라도 제한하기 위하여 도입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제도도 사실 제대로 된 견제 역할을 못한다.
왜냐하면 추천위원회의 근거 조항인 법원조직법 제41조의 2에 따르면 추천위원회의 구성에 대법원장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법원장이 재판기능에 있어 독립한 대등한 지위를 가지는 동료 대법관을 제청함으로써 그 임명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으며, 사법권의 독립과 개별 대법관의 자율성 및 재판부 내지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실제로 사법권의 독립은 대통령 등 외부 세력에 의해서 보다는 사법부 내부의 세력, 특히 대법원장에 의해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현상이 우리 사법부로 하여금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원장 등 강자의 눈치를 보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컨대 지난 내란 사태 때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가 보여준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우리 국민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또한 지난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자신들이 선호하지 않는 유력한 대선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해 대법원은 사상 유례가 없는 방식과 절차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그밖에도 대법원 등 사법부가 보여준 정의롭지 못한 재판을 우리 국민은 수도 없이 목도해 왔다. 이런 행태야말로 사법권 독립을 파괴하는 만행이다. 조 원장 등 고위 법관들은 사법권 독립을 운운할 자격이 전혀 없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결국 대법원장이 가지는 대법관 제청권을 포함한 인사권 등 막강한 권력과 그에 기초한 사법부 내의 제왕적 지위가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의 경직성과 획일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후술하는 바와 같이 대법원 등 사법부 구성의 다양성을 해치며, 결과적으로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다.
3.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해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을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코드인사를 해왔다. 그것이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과 경직성을 심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사법권 독립을 해친 것이다. 그 결과 사법부는 소수자·약자 보호 및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국민적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법부, 특히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과 경직성은 현 대법원의 구성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절대 보수 우위와 판사 출신 일색이고 성비도 불균형이다. 즉 현재의 대법관 구성은 판사 출신이 90% 이상, 서울·영남 지역 출신이 약 60% 이상, 남성 비율이 약 77%, 특정대학 출신이 약 92%, 연령 50대의 비율은 약 92%이다. 따라서 인적 구성의 동질성과 편향성이 지나치게 크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되어 임명된 김성수 대법관도 보수성향으로 평가되는데, 이번에 논란이 된 손봉기 판사도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 만일 손 판사까지 임명한다면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과 편향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어느 특정한 정치적·이념적 성향이 옳다거나 어떤 특정 집단의 출신이 대법관으로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정파 초월적이고 다양한 대법관의 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 아닌가? 고도의 공직윤리와 더불어 관용과 다양성은 다양한 이념과 성향을 가진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법관 등 모든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기본 덕목 아닌가? 도대체 군대 조직보다 더 획일적이고 보수적인 현재의 편향된 대법관 구성하에서 다양성과 관용, 그리고 사회적 약자 배려와 사회공동체를 위한 정의 구현이 가능할 수 있을까?
물론 코드인사와 관련하여 대통령 임명권의 경우에도 동일한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즉 임명권을 통해 대통령 자신의 입맛에 맞는 코드인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첫째, 대통령의 임명에 관한 재량권은 민주적 정당성에 근거한 대통령의 권한에서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다. 국민이 직접 그러한 권한과 재량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대법원장에게 국민은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둘째 이에 대한 견제와 통제는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가 담당한다. 즉 국민의 통제 의사가 국회의 동의권을 통해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헌법의 설계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와 관련된 모든 책임은 대통령 스스로가 지고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총체적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가진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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