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금융기관의 장부상 착시와 사모신용(Private Credit)의 균열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저금리 시절 1~2%대 이자율로 발행된 막대한 규모의 장기 채권을 장부에 대량으로 안고 있는 은행, 보험사, 연기금 등 금융기관들은 막대한 '평가손실'을 감내하고 있다.
시가평가를 피하며 "만기까지 보유하면 된다"는 논리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투자자들이 현금을 확보하려고 펀드 환매를 요구하거나 예금을 인출하는 순간, 금융기관들은 손실을 확정 지으며 채권을 매각해야 하고, 이는 순식간에 시장 전체의 유동성 경색으로 번지게 된다. 금리 인하기에는 금융회사들이 가만히 앉아서도 수익을 얻지만, 금리 인상기에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시장의 뇌관으로 지목되어 온 비은행 금융권과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의 불안정성이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높은 변동금리로 사모펀드 등에서 자금을 빌린 한계 기업들은 이미 높은 이자 비용에 허덕이고 있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면 이들 기업의 연쇄 부실은 피할 수 없고, 이는 신용 시장 전반을 흔드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셋째, 월가를 넘어 메인스트리트로 – 가계·기업 부채와 한국 경제의 시련
고금리의 충격은 월스트리트의 모니터 화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실물경제의 가계와 기업이 짊어진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곧바로 밀려든다.
특히 한국 경제는 이 고금리 장기화 국면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정부 부채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한국은 GDP 대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비율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 영끌로 집을 마련한 가계의 부담이 커지고, 4000조 원에 달하는 부동산 익스포저로 부풀려진 부동산 거품은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결국 가처분 소득이 급격히 줄어들며 내수 위축으로 이어진다. 반도체 호황이 유지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경제의 근간은 흔들리게 된다.
한편 다른 주요국들도 급증한 국가부채로 이자 지급 비용이 폭증하면서, 경제 충격을 방어할 재정정책 여력을 사실상 잃었다. 정부가 돈을 풀어 위기를 막아주던 '정부 구원자'의 시대도 끝난 셈이다.
30년 전의 데자뷔 : '펀더멘탈'이라는 환상과 위기 불감증 사회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의 저서 폴트라인(Fault Line)에서 구조적 소득 불평등, 정치가 만든 손쉬운 신용 완화, 글로벌 거시경제의 균열을 대형 지진의 원인이 되는 지각 변동에 비유한 바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직시하여 해결하는 대신 '부채를 통한 소비'로 때우려 했던 정치적 시도가 결국 2008년의 붕괴를 불렀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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