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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깨닫는 인생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샘터교회 원로목사. 시인. 부산예수살기 대표.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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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모습』 미셀 투르니에 · 에두아르 부바

사람은 얼굴로 자신을 보여주지만

등으로는 살아온 시간을 보여준다

멈추면 오히려 시간을 가장 선명하게

타인의 삶을 향해 열리는 작은 문

뒷모습은 모든 인간에게 예정된 모습

얼굴 없는 초상

사람을 기억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얼굴이다. 사진을 찍을 때도 얼굴을 향하고, 누군가를 설명할 때도 얼굴의 표정과 눈빛을 이야기한다. 얼굴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에두아르 부바는 카메라를 사람의 얼굴에서 돌린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사람의 등이다. 걷는 사람, 서 있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아이와 함께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다. 처음에는 의아하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사진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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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진을 오래 바라볼수록 오히려 얼굴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얼굴을 보지 못하니 사진 속 인물을 특정한 사람으로 규정할 수 없다.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알 수 없다. 그 순간 사진 속 사람은 특정한 개인을 넘어 하나의 인간이 된다. 얼굴에는 표정이 있지만 뒷모습에는 흔적이 있다. 옷의 주름, 구부러진 어깨, 걸음의 속도, 머리카락의 모양, 손의 위치, 몸의 방향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대신한다. 무엇보다 뒷모습은 스스로 연출하기 어렵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수는 있지만 자신의 등은 볼 수 없다. 그래서 뒷모습은 인간의 가장 무의식적인 초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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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얼굴로 자신을 보여주지만 등으로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보여준다. 부바의 사진은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한다. 그는 유명한 사람이나 특별한 사건을 찾지 않는다. 길을 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평범함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투르니에는 사진에 글을 덧붙이면서 그 침묵을 더욱 깊게 만든다. 그는 사진을 설명하기보다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생각을 따라간다. 그 결과 『뒷모습』은 사람의 등을 찍은 사진집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뒤에서 바라보는 철학적 산책이 된다.

 

떠나는 사람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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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에는 본질적으로 움직임이 있다. 사람이 우리를 향해 서 있을 때 우리는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등을 보이고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저 사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뒷모습은 출발과 이별을 동시에 품는다. 누군가가 등을 보이고 떠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현재보다 앞으로의 시간을 상상하게 된다. 부바의 사진 속 길은 거창하지 않다. 도시의 골목일 수도 있고, 시골길일 수도 있고, 일상의 어느 한 모퉁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 위에 사람이 서는 순간 평범한 공간은 삶의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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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길 위에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시간을 통과한다. 어린 시절에서 청년기로, 청년기에서 중년으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이동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시간은 우리를 앞으로 데려간다. 그런 의미에서 걷는 사람의 뒷모습은 인간의 운명을 닮았다. 우리는 앞을 보며 걷지만 미래를 볼 수는 없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보이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삶은 늘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앞으로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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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니에의 글은 그 단순한 움직임에서 시간의 깊이를 발견한다. 사진 속 인물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지만 독자는 그가 계속 걷고 있다고 느낀다. 사진은 시간을 멈추지만 상상은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다. 그것이 사진이라는 예술의 역설이다. 멈춘 순간이 오히려 지나가는 시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삶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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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바의 사진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것이 오히려 이 사진들의 힘이다. 사진 속 인물에 관한 정보가 많았다면 우리는 쉽게 그 사람을 규정했을 것이다. 이름과 직업과 나이를 알게 되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을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뒷모습만 보이는 사람에게는 그런 정보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한다. 저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기다림이 있었을 것이고 실망도 있었을 것이다. 한때는 어린아이였을 것이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길을 걸었을 것이다. 어떤 날에는 세상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고, 또 어떤 날에는 별것 아닌 일에 웃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의 생애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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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사진은 기록을 넘어 문학이 된다. 투르니에가 하는 일도 여기에 있다. 그는 사진 속에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내기보다, 사진이 우리 안에서 불러내는 기억과 상상과 사유를 따라간다. 사진은 현실을 붙잡지만 문학은 그 현실 너머를 바라본다. 부바가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했다면 투르니에는 그 모습에서 인간의 조건을 읽어낸다. 사진과 글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진을 보는 일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일이다. 그리고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순간 인간은 조금 더 넓어진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도 나와 같은 기쁨과 슬픔이 있고, 나와 같은 시간의 무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뒷모습은 타인의 삶을 향해 열리는 작은 문이다.

 

늙어가는 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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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은 나이를 숨기지 못한다. 젊은 사람의 등에는 탄력이 있고 걸음에는 속도가 있다. 어린아이의 뒷모습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몸의 가벼움이 있다. 반면 늙은 사람의 등에는 오랜 시간이 내려앉아 있다. 구부러진 허리와 느린 걸음, 조금씩 처진 어깨는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말한다. 부바의 사진을 바라보면 인간의 몸이 하나의 시간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몸에는 시간이 흔적으로 남는다. 어린아이였던 몸은 청년의 몸이 되고, 다시 늙은 몸이 된다. 시간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등은 그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뒷모습은 죽음에 가까운 이미지이기도 하다. 얼굴을 마주 보는 사진에는 아직 만남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떠남의 기운이 스며든다. 특히 노인의 뒷모습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인간이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늙는다는 것은 단지 젊음을 잃는 일이 아니다. 하나의 생애가 몸에 기록되는 과정이다. 주름은 시간의 흔적이고, 굽은 등은 살아온 날들의 기록이며, 느린 걸음은 지나온 길의 길이를 말한다. 우리는 흔히 젊음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바의 사진은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시간을 견뎌낸 몸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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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결국 뒷모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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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을 읽고 나면 거리의 사람들이 달리 보인다.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의 등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시장을 걷는 사람,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사람, 혼자 천천히 길을 걷는 노인.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뒷모습은 인간에 대한 겸손을 가르친다. 타인의 삶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언제나 삶의 일부일 뿐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듯이 뒷모습만 보고도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없다. 우리는 타인의 삶 앞에서 언제나 낯선 사람이다. 그 낯섦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타인을 존중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뒷모습은 모든 인간에게 예정된 모습이다.

 

우리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등을 보이고 떠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익숙한 거리에서 사라지고, 마침내 세상에서 사라진다. 남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 한 장일 수도 있고, 기억 한 조각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마음에 남은 희미한 흔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의 얼굴을 기억하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흔적을 남기고 지나갔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 속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름 없이 걷고, 멈추고, 기다리고, 떠난다. 하지만 미셸 투르니에는 그 평범한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운명을 발견한다. 태어나서 걷고, 사랑하고, 기다리고, 늙고, 결국 떠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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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은 그 평범한 진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사진 속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등을 보인 채 어디론가 걸어간다.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뒷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문득 알게 된다. 우리 역시 지금 누군가에게 뒷모습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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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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