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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해산심판’에 전격 등판한 권성 전 재판관

그가 내세운 새로운 논리는?

 

정성일 기자 soultrane@vop.co.kr 입력 2014-01-28 21:17:18l수정 2014-01-28 22:10:33 기자 SNShttp://www.facebook.com/newsvop
법무부 대리인 맡은 권성 전 언론중재위원장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부의 정당해산심판 및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의 첫 변론기일에서 정부측 대리인을 맡은 권성 전 언론중재위원장이 법무부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인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의 첫 변론기일인 28일, 헌법재판소에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직접 변론에 나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다시 보기 힘든 광경이 벌어졌다. 

이에 가려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이색적인 모습이 또 하나 있었다. 이번 사건의 청구인인 정부 측의 대리인으로 나서기 위해 전날인 27일 언론중재위원장 직에서 사임한 권성 변호사가 직접 재판정에 나서 정부 측 주장의 요지를 밝히는 모습이었다. 권 변호사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전관'이기도 하다.

이날 권 변호사의 급작스러운 등장과 그가 내세운 논리는 이 사건과 관련해 정부 측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여러모로 시사했다. 

'전관' 내세워 헌법재판소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

권성 변호사는 27일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의 법무부 측 대리인을 맡게 됐다며 돌연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의 잔여임기는 채 3개월이 되지 않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독립성과 자율성이 생명인 언론중재위의 수장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정부 측 대리인으로 나서는 데 대한 비판이 정치권과 언론계를 중심으로 쏟아졌다.

권 변호사가 정부 측 대리인으로 나선 배경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일단 그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전관'이기 때문에, 정부가 헌법재판소 측을 압박하는 카드로 내밀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한참 선배인 권 변호사를 정부 측 대리인으로 내세워 재판관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헌재가 자신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전날 언론중재위원장 직을 사퇴시키고 바로 다음날 '등판'시키는 '무리수'까지 뒀다는 얘기다. 

권 변호사는 사시 8회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사시 23회)과 이번 사건의 주심인 이정미 재판관(사시 26회)의 '대선배' 격이다. 게다가 2000년부터 6년간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헌재 재판관들로서는 부담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권성 전 재판관, 보수기득권층 대변하는 새로운 논리 여러 차례 만들어내 

이와 더불어, 이날 변론에서 권 변호사가 직접 나서서 한 진술 내용과 논리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권 변호사는 판사 및 헌법재판관 시절 보수기득권 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소수' 의견을 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해당 판결이나 의견을 제시함에 있어서 기존과 다른 논리를 만들어내 여러 차례 세간의 화제가 됐다. 

대표적인 예가 96년에 있었던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의 12ㆍ12 반란 및 5ㆍ18 내란 사건 항소심이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2심을 맡았던 권성 당시 판사는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 때 그가 내세운 논리가 '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않는다'는 '항장불살(降將不殺)이라는 고사다. 전 전 대통령이 87년 직선제를 수용해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는 '항복'을 했으니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냐는 '희한한' 논리였다.

권 변호사는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시절인 1997년에는 '친일파 조상땅 찾기 소송'에서 친일파 이완용 후손의 손을 들어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해당 재판에서 "일제시대 반민족적 행위를 한 사람들이나 그 후손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률도 현재 제정 시행되고 있지 아니한 마당에 일제시대의 반민족행위자나 그 후손이 자신의 재산권을 보존하기 위해 법원에 재판을 구하는 경우에 단지 정의나 국민정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재판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평등한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고 법치주의의 구현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간단히 말해, '관련 법이 없으니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권 변호사가 헌법재판관으로 있던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헌재는 '기각' 판결을 내렸지만 그는 소수의견으로 '인용'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두구육' '정명가도'...법적 근거가 아니라 '머리속 생각'을 근거로 판단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그럴듯하게 포장

28일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에서도 권성 변호사는 '새로운' 논리를 꺼내들었다. 이날 그가 주장한 내용은 '양두구육(羊頭狗肉)'과 '정명가도(征明假道)'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진보당은) 선량하고 성숙한 시민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품을 진보와 민주주의로 포장해서 유인, 강요하고 있다"며 "한마디로 비유해서 양두구육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주장했다. '양두구육'은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 진보당의 정강 정책은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 같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대로라면, 진보당이 법적으로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속마음을 증명할 방법은 없기 때문에 법적 근거가 아닌 재판관의 주관적 판단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는 성립되기 힘든 주장이다. 하지만 그는 이를 교묘한 논리를 동원해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간 정부 측이 '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에 따른 것이다'라는 증명해야 하는 논리를 핵심적으로 내세우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 권 변호사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명나라를 치려고 하니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정명가도'라는 말을 언급하며 "(진보당 주장은) 자유민주주의 길 비키라는 것인데, 그렇게 길 비키면 다음에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안방에서 내쫓고 대신 안방을 차지해서 북한식 사회주의 잔치를 벌이겠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달리 말해, 진보당의 주장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명분이자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현재의 사실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기 힘든 '머리속 생각'을 판단 근거로 삼아야 된다는 주장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이다.

아울러 전날 정부 대리인을 맡은 권 변호사가 이날 바로 변론에 나선 데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사건 내용 자체가 방대한 데 비춰볼 때 이날 내세운 논리를 하루만에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가 언론중재위원장 시절부터 이미 정부 측에 자문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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