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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등 3천명 관리…‘눈먼돈’ 위해 로비 또 로비하라

등록 : 2014.02.02 20:00 수정 : 2014.02.0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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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그룹의 나랏돈 받기 열전

공무원도 심사위원도 내편
뒷돈 뿌려 590억짜리 공사 수주

나랏돈을 지원받는 데 대기업이 기득권을 누리는 구조엔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조직과 돈이 있어서다. 이를 바탕으로 협회나 단체를 꾸려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며 전문가와 언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때론 편법과 불법을 써가며 국가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 정부와 국회를 직접 움직인다. 이처럼 대기업이 나랏돈을 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래의 글은 금호건설,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한 법원 판결문과 잠수함 탑재 장비 연구개발 관련 짬짜미, 4대강 사업 짬짜미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 의결서 등 사실을 바탕으로 해 가상의 기업 이야기로 재구성됐다. 또 대기업 임직원, 국회의원 및 보좌관, 기획재정부 공무원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의 인터뷰도 반영했다. 이밖에 감사원의 금융공기업 경영관리 실태 보고서, 참여연대의 공직자 재취업 분석도 참고했다. 새벽 6시 “김일엽 교수입니다.” ㄱ건설 영업팀 상황실의 홍기남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미리 6000만원을 건네준 ㅍ시청 공무원은 “김 교수”라고 말했다. ㅍ시청은 기업의 로비를 피한다며 심사 당일 새벽 4시에 ㅍ도시복합커뮤니티센터(공사예산 590억원) 설계적격심의위원회 평가위원을 선정했다. 하지만 돈을 받은 공무원은 선정이 끝나자마자 기업에 평가위원 이름을 알려줬다. 홍 부장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지’라고 혼잣말을 했다. 홍 부장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의 한 아파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교수가 됐다. 계획대로 해.” 20분 뒤 ㄱ건설 직원은 설계적격심의위에 가기 위해 집에서 나오던 김일엽 교수 앞을 가로막았다. “교수님, 저희 회사에 좋은 점수를 부탁드립니다.” 김 교수에게 100달러짜리 지폐 400장(4만달러·우리돈 약 5000만원)이 든 가방을 건넸다. 이미 안면이 있는 직원이라 김 교수는 가방을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 교수는 이날 열린 심의위에서 ㄱ건설에 최고점을 줄 것이다. 홍 부장은 수주를 확신했다. “정부 돈은 먼저 먹는 게 임자지….” 오전 10시 사무실로 출근한 김근춘 ㄱ건설 상무는 새벽에 ㅍ시청 수주 작업이 잘 진행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김 상무는 2년 전에 만든 ‘지인관리시스템’이 효과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재계 수위권인 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ㄱ건설은 2년 전 공사 수주가 급감했다. ㄱ건설은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대형 건설공사를 노리기로 했다. 정부 발주 공사는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발주하는 공사(턴키입찰)가 많다. 대기업은 이 공사를 수주한 뒤 실제 공사는 하청업체에 싼값에 나눠 맡긴다. 이 과정에 대기업이 먹는 이익이 커 정부 예산이 낭비될 우려가 많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김 상무도 이를 무마할 논리를 만들어 정부와 언론사에 뿌리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이런 틈에 ㄱ건설은 수주를 위한 ‘작전’을 짰다. 턴키입찰공사의 설계적격평가위원 자격을 가진 대학교수 및 공무원 등 3000여명을 관리하기로 했다. ‘직원 가운데 학연, 지연 등을 고려해 가까운 사람을 담당자로 지정해 관리하라.’ 회사 지시가 떨어지자 직원들은 회사의 지인관리시스템을 통해 로비 활동 내역을 정기적으로 보고했다.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와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김 상무는 홍 부장에게 평가위원 명단을 유출한 공무원에게 2000만원을 더 챙겨주라고 지시했다. 김 교수에겐 연구용역을 주라고 했다. 정부가 기업의 로비를 막으려 최근 심사위원 수를 줄이고 관리를 강화하려고 해, 이들과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홍 부장은 사전에 돈을 전달하지 않은 이아무개 대학교수에게도 백화점상품권 10만원권 100장을 만들어 1000만원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낮 12시 김근춘 상무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점심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이미 자리엔 ㄱ그룹 대관 담당 부장과 한 국회의원 보좌관이 앉아 있었다. 이 보좌관이 김 상무의 고등학교 후배여서 ㄱ그룹 부장이 함께 자리에 청했다. ㄱ그룹 부장은 최근 그룹 계열사에서 취급하는 ㅅ물품의 관세가 낮아지려 하자 국회에 와서 살다시피 하며 정보를 캐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보좌관에게 “ㄴ그룹이 우릴 죽이려고 ㅅ물품 관세를 낮추려고 로비하고 있다니까”라고 말했다. ㄱ그룹과 사이가 안 좋은 ㄴ그룹은 최근 ㅅ물품 사업에 뛰어들어 경쟁 구도를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다. 관세를 낮춰 진입장벽부터 없앤다는 것이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밑에서 일하는 보좌관은 가만히 듣다가 “일단 기획재정부가 세제개편안 들고 오는 것을 봐야죠”라고 대꾸했다. 그 말을 들으며 김 상무는 ‘조세에 관한 파워가 기획재정부에서 국회로 넘어갔다’고 말한 한 대학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이미 국회는 기재부 세제실이 빠진 상태에서 여야가 합의해 소득세율을 올린 적도 있다.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었을 때도 기업들은 국회의원의 움직임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ㄱ그룹 역시 계열사별로 국회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있다. 법안이 비과세 감면과 조달 등 기업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전에 ‘창구’였던 협회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 국회는 ‘시장’(마켓)이 됐다. 김 상무는 점심 자리가 파할 때쯤 보좌관에게 “이 일 끝나고 우리 회사로 오는 건 어때?”라고 한마디 건넸다. 보좌관은 웃으며 “요즘 많이 가긴 하대요”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이 보좌관이 더 정보를 가져올 수 있는 게 ‘돈일까 일자리일까’ 생각이 들었다. 오후 5시 국회에서 돌아온 김 상무 사무실로 조현진 상무가 찾아왔다. ㄱ그룹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는 입사 동기인 조 상무의 얼굴은 어두웠다. ㄱ방위산업체는 경쟁 회사와 함께 2조7000억원 규모의 잠수함 연구개발 사업을 짬짜미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공정위는 짬짜미에 참여한 4개사에 4억1700만원에서 26억7800만원까지 각각 과징금을 매겼다. 김 상무는 “어떻게 했길래 공정위에 걸렸냐”고 물었다. 조 상무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털어놨다. “잠수함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경쟁 회사 임원을 만났어. 그 임원에게 ‘수상함은 너희가 주간사가 되는 것을 인정할 테니 잠수함은 우리가 주간사가 되게 해달라’고 했지.” 무기를 개발해 국가에 납품하는 방산연구개발 사업은 그동안 전문화·계열화 제도가 있어 한 기업의 독점 사업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방산업체들은 경쟁에 직면했다. “출혈 경쟁이 불가피했어. 그래서 ‘수주 목표를 달성하고, 출혈 경쟁을 지양할 수 있는 협력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보고를 올렸지.” 조 상무는 “우린 그래도 ‘협력’이라 했는데 다른 회사는 ‘상호 독점적인 협력을 체결하여 제3자의 센서 분야 진입을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쓴 문건이 공정위 조사에서 나와버렸어.” 기업의 짬짜미는 정부나 국민이 더 많은 돈을 기업에 지급하게 만든다. 김 상무는 조 상무에게 “걱정 마라”며 정부 직접지원금을 유용하다 들통난 다른 회사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회사는 정부 연구개발 보조금 177억6500만원을 받아 이 가운데 77억400만원을 빼돌린 게 검찰에 적발됐다. 유죄를 받았지만 회사는 돈을 유용한 직원들을 감쌌다. 김 상무는 “정부 돈 받아다가 있는 기술 적당히 포장하고 다른 연구에 쓰는 게 관행이었잖아. 회삿돈 아낀 거니까 얼마나 좋아. 그 사람들 나중에 승진까지 했대. 너도 괜찮을 거야”라고 했다. 기업이 원하는 건 도덕이 아니다. 저녁 7시 퇴근 뒤 김 상무는 국책은행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친구는 “요즘 한 대기업에서 감사로 오라고 해서 고민”이라고 했다. 김 상무도 그 기업이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자금줄을 쥔’ 금융기관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친구 역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눈치에 “퇴직 뒤에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기업의 말에 흔들리고 있었다. 헤드헌터 회사의 추천도 이미 내정자가 있는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경우가 많다. 대신 친구는 “자리를 만들려면 아무래도 대출을 승인해주는 데 힘을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역시 선배들이 퇴직하기 전에 대출 실적이 없던 업체에 갑자기 1300억~4000억원씩 대출을 승인해 준 사례를 본 바 있다. ‘저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퇴직 뒤에 그 업체에 안착한 선배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다’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 김 상무는 씁쓸했다. 자신이 하는 일도 그렇지만, ‘나랏일 하는 게 좋다’던 친구 역시 기업에 의해 흔들리는 게 마음에 걸렸다. ‘좋은’ 친구가 이젠 기업에 ‘좋은’ 친구로 바뀌는 것을 그는 많이 봐왔다. ㄱ그룹 역시 국책은행 출신 임원들이 들어와 있다. 공적자금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늘면서, 경영을 감시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에 은행 출신 ‘낙하산’이 떨어지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김 상무는 “공직자 윤리규정엔 안 걸리냐”고 걱정했다. 친구는 “요즘은 바로 그 기업에 들어가지 않고 규모가 작은 계열사나 협력업체에 적을 두라고 하거든. 그러면 업무 연관성도 없고 걸릴 염려가 없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김 상무는 “눈먼 돈이 얼마나 많은지, 퇴직 뒤 자리를 찾는 공무원이나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모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은 1000억원어치 상품을 팔거나 공사를 수주해 10억원을 남기거나, 법인세 감면이나 보조금을 받아 10억원을 받는 거나 같다. 김 상무는 건배를 청했다. “너도 그동안 봉사 많이 했잖아. 이제 돈도 벌어봐라.”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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