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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극우파, 미국 지역신문에 광고 게재... ‘말뚝 테러’ 후속타인 듯

 

“위안부는 직업창녀, 장군보다 더 벌었다”고?
 
[집중분석] 日 극우파, 미국 지역신문에 광고 게재... ‘말뚝 테러’ 후속타인 듯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09 15:29:26 | 최종:2012-11-09 16:25: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극우파의 망동(妄動)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가하더니 이제는 외국 신문에 거짓 광고를 실어 위안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9일자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광신적 극우파들은 지난 4일 미국 뉴저지의 유력지 <스타레저(Star Ledger)>에 위안부의 역사를 왜곡하는 전면광고를 실었다고 한다. <뉴시스>가 전한 광고의 핵심 3가지는 다음과 같다.

‘위안부 모집은 민간 브로커들이 했다’,
‘일본 정부는 불법 브로커들을 단속했다’
‘성노예는 존재하지 않았고 직업적인 창녀들의 수입은 장군의 월급을 능가했다.’
 

지난 4일 일본 극우파들이 미국 지방신문에 실은 '위안부' 왜곡 광고

 

일일이 반박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허위사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위안부 모집은 ‘민간 브로커’들이 했다고 치자. 그러나 이 ‘민간 브로커’들은 총독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들을 앞세워 추진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또 ‘직업적인 창녀들의 수입은 장군의 월급을 능가했다’는 말도 그렇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할 초기에 일본군 부대 옆에는 ‘유곽’이 더러 있었고 이곳에 ‘직업적 창녀’들이 들끓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직업적 창녀’들의 수입이 장군 월급을 능가했는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업적 창녀’가 아니었다는 데서 이들의 주장은 거짓임이 금세 드러나고 만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전부 강제로 끌려갔으며(혹은 속아서 끌려갔으며) 또 직업적으로 매춘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위안부 출신 여성들이 매춘의 대가로 일본군 장군 월급을 능가할 정도로 큰돈을 벌었다면 그 여성들이 지금은 떵떵거리며 잘 살아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신의 몸 하나를 의탁할 공간마저 없이 가난과 고통 속에서 노년을 힘들게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대체 일본 극우파들은 왜 이런 허무맹랑한 내용의 광고를 미국 신문에 실었을까? 아마 뉴욕 타임스퀘어에 나붙은 '위안부 광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뉴욕 한복판의 타임스스퀘어 대형 빌보드 광고판에는 가로와 세로 각각 15m 크기의 위안부 관련 광고가 붙어 있다.

 

가수 김장훈이 미국 뉴욕 멘허튼 소재 광고판에 내건 '위안부 사과 요구' 광고

‘기억하시나요?(DO YOU REMEMBER?)’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가수 김장훈은 지난 10월 3일부터 이 광고를 시작했는데 12월 말까지 약 3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다. 이 광고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광고에는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사진을 배경으로 사용해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브란트 전 총리는 독일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으로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을 방문해 무릎을 꿇고 사죄한 바 있다.

이를 빗대 광고는 “1971년,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서 사죄함으로써 유럽 평화에 큰 기여를 했다. 2012년,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여전히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광고의 비용을 후원한 가수 김장훈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를 떠나 여성인권 이슈”라면서 “20만여 명의 여성을 성 노예로 짓밟고서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전 세계에 폭로해 세계적인 여론을 환기시키고 싶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런 광고가 일본 극우파들에겐 몹시도 불편하고 또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그래서 방안을 찾던 중 이같은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같은 권위지 대신 뉴저지의 유력지 <스타레저(Star Ledger)>를 광고 게재 대상으로 택했는데 이는 나름의 전략으로 보인다.

우선 <스타레저>는 지역신문이지만 ‘위안부 기림비’가 건립된 뉴저지 북부 버겐카운티에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전국지에 광고를 게재할 경우 자칫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모르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홍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광고는 ‘역사적 사실 위원회(the Committee for Histoical Facts)’는 일본 극우 집단에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에는 극우 언론인 사쿠라이 요시히코를 비롯해 아오야마 시게하루, 스기야마 고이치, 니시무라 고유. 후지오카 노부가스 등 정치평론가와 TV프로듀서, 작곡가,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문제의 광고에서 이른바 ‘세 가지 팩트’를 관련 문서와 신문기사 등을 곁들여 미국의 독자들을 오도하고 있으며 영화제목을 패러디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위안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유투브 동영상까지 안내하고 있다.
 

위안소 밖까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군들

 

이들이 말하는 ‘첫 번째 팩트’는 위안부 모집은 민간 브로커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 정작 일본군대는 이를 금지했다며 1938년 3월4일자 ‘일본군 2197문서’를 싣고 있다. 또 ‘두 번째 팩트’는 1939년 8월31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들며 당시 일경은 부녀자 유괴범을 단속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세 번째 팩트’는 위안부가 성노예(Sex Slave)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모두는 근거가 미약한 것들이다.

반면, 일제가 조선인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로 끌고 갔다는 사실은 피해자들의 증언 말고도 관련자료가 무수히 많이 있다. 한 예로 1977년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발간한 <1억인의 소화사(昭和史)>라는 제목의 책에는 ‘일본 육군이 설립한 위안소’라는 문구가 버젓이 쓰여 있다. 또 사진 속의 위안부 여성들을 두고 ‘대부분 조선에서 강제로 끌고 온 여성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9월 7일 MBN이 단독입수해 보도한 ‘전쟁의 특수 현상과 그 대책’이라는 문서에 따르면 일제가 군인들 ‘위안’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이 문서는 1930년대 일본군 군의관 아사오 대위가 중국 상해에서 근무하면서 작성한 것으로, 일본 육군성에 보내는 청원서 형식으로 돼 있다.

이 문서에는 “출병자, 즉 군인의 성욕을 긴 시간 억제하면 중국 여성을 성폭행하게 되니” “중국에 빠른 시일 내에 위안부소를 개설해” “주요 목적인 성의 만족을 주고,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아사오 대위는 이 문서에서 원활한 전쟁 수행을 위해 일본군 장병을 위한 위안소 설립을 일본 군부에 공식 제안했다.

그간 관련 학계에서는 일본군에서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한 시기를 만주사변(1931년) 이후로 보고 있는데 이 문서는 1935년에 작성돼 이같은 학계의 주장을 뒷받침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MBN은 “일각에서는 이 문서가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위안소를 만들자고 요청한 최초의 문서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이들의 망동은 최근 일본 정부의 대한정책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5월 이후 일본은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위안부 이슈와 독도에 대해 공격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독도영유권 논란과 관련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단독 제소’ 방침을 이미 내부적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인사들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오고 있다.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말뚝 테러’에 이어 ‘위안부 기림비’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말뚝을 박고 또 맨해튼의 한국 총영사관 민원실 현판에 다케시마 스티커와 동일한 말뚝을 갖다 놓는 등 조직적인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이번 광고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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