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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52)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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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07  0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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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실시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선거에서 낯선 인물 한 명이 당선됐다. 우동측 대의원이었다. 얼마 후 그가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란 설이 흘러나왔다.

6년 후 그는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고, 국방위원에도 선출됐다. 1년 뒤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에서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고,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 때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1위원장과 함께 김 위원장의 영구차를 호위한 8인 중 한 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파격적 승진과 인선에는 배경이 있다

그러나 2003년 처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만 해도 그가 이렇게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없었다. 그의 급부상에 대한 의문은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송한 기록영화를 통해 풀렸다. 그가 6.25전쟁 시기 결성된 최고사령부 친위중대원이었던 것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혁명유자녀’ 교육기관인 만경대혁명학원 1~3기 졸업생을 중심으로 최고사령관의 친위중대를 조직했다. 이들은 김일성 사령관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실제로는 이들을 전쟁 현장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것이었다. 친위중대원에는 연형묵, 리길송, 박송봉, 현철해, 김시학, 전병호, 김환, 홍성률, 우동측, 태종수 등이 포함돼 있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후 폐허가 된 도시와 파괴된 경제 재건을 위한 군사위원회 회의 결과 친위중대원 상당수가 소련 및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로 유학을 가게 됐다. 이들은 귀국 후 1960년대에 북한 당, 정, 군의 각 분야에서 활약했고, 1980년대 김정일 후계 체제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정치국 위원과 비서국 비서 등 당.군.정의 핵심 간부로 중용됐다.

우동측은 전쟁이 끝난 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들어가 지도원, 부과장으로 활동하다 국가안전부로 자리를 옮긴 후 국장, 부부장을 거쳐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북한은 2009년 우동측이 국방위원에 임명된 뒤에야 이 같은 그의 이력을 공개했다.

2012년 4월 그는 현직에서 물러났다. 이제 친위중대원 출신으로는 태종수 함경남도 당책임비서 정도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만경대혁명학원 출신들은 여전히 당 정치국 위원(후보위원)과 군의 핵심부서에 포진해 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조직지도부 출신의 약진

다만 북한의 3~4세대는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라는 배경보다도 북한 최초의 종합대학이자 최고의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 ‘실력’을 앞세워 노동당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 시대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출신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핵심간부로 등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적으로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지방당과 군 정치기관의 주요 간부의 산실로 기능해 왔는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노동당의 기능이 정상화되면서 조직지도부의 그러한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임 총정치국장 황병서 차수, 최룡해 당 비서 등과 함께 지난 2일 강원도 원산의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준공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리일환 신임 노동당 근로단체부장, 김여정 부부장, 김기남 당 비서, 황병서 총정치국장, 김 제1위원장, 최룡해 당 비서. [캡쳐 - 노동신문]

지난 4월 26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인민군의 정치사업을 총괄하는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황병서 차수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여부 등 그의 정치적 배경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조직지도부에 들어간 후 인민군 총정치국과 조직지도부를 오고가며 주로 군 정치사업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시대에 그는 리용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2010년 사망)-김경옥 부부장으로 이어지는 군사지도부문에 과장급으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2000년대 중반 황병서는 부부장으로, 김경옥 부부장은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고, 2010년 9월 김경옥 제1부부장이 대장 칭호를 받을 때 황병서 부부장은 소장에서 중장(우리의 소장에 해당)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불과 반년 정도가 지난 2011년 4월 다시 중장에서 상장으로 진급했다.

그는 2012년 김정은 체제가 등장한 후 김정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을 빈번하게 수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올 3월 조직지도부 부부장에서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3월 15일 대장으로 진급한 사실이 확인된 데 4월 26일에는 총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차수 칭호를 받았다.

그가 이렇게 약진할 수 있었던 것은 후계자 시절 김정은 제1위원장과 인연을 쌓은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그의 경력을 볼 때 김정은 제1위원장과의 인연 외에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정치적 배경과 업무수행에서의 ‘실력’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김정일 시대에 차세대 주자로 인정을 받고 있었던 셈이다. 중국의 한 학자는 2년 전쯤 “북한측 인사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후계자로 내정한 후 차기 김정은 체제를 이끌어갈 3~4세대 핵심인사 300여 명을 준비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되면서 이들 신진인사들이 하나 둘씩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70대의 김경옥 제1부부장이 아닌 60대 중반의 그가 총정치국장에 발탁된 것은 세대교체의 성격을 띤 인사이기도 하다. 인민군 총참모부(리영길 참모장)와 인민무력부(장정남 부장)의 수장이 50대로 교체된 것을 고려한 것이다.

김정은시대 인사스타일, ‘실무형 인사’ 중용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군 정치사업의 사령탑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바로 임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1960년대 전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2013년 12월 사망)이 중앙당 간부로 있다가 총정치국 부국장으로 잠시 활동하는 등 당과 총정치국의 보직을 오간 사례는 자주 있었다.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내의 군사부문은 군사부문의 당조직(당위원회)과 정치기관(총정치국과 정치부)에 대한 지도를 담당한다. 특히 조직지도부에 ‘총정치국 지도과’를 별도로 두어 인민군 총정치국 간부들의 당 조직생활에 대해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총정치국은 군대 내의 당 정치사업을 통일적으로 관장하며 이에 대해 당중앙위원회 앞에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비중 때문에 대체로 총정치국장에는 항일빨치산 출신의 ‘혁명1세대’들이 기용됐고, 전임 최룡해 총정치국장도 항일빨치산 출신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황병서의 총정치국장 기용은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인사스타일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정치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총정치국에서 당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김수길 상장은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으로 있다 평양시 당책임비서로 임명됐다. 이런 사례로 볼 때 향후 당과 군의 정치기관(총정치국 간부와 정치위원) 사이의 간부 교류가 활발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당과 군에 나타나고 있는 ‘형식주의’, ‘관료주의’, ‘귀족화’ 등의 병폐를 없애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특히 4월 25일 군사 훈련이 ‘형식주의’에 빠져 있고, 그 원인이 “당 정치사업, 군인들과의 사업을 잘하지 못한데 있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적이 나온 다음 날 총정치국장이 전격 교체된 데서도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총정치국장 외에 조직부국장과 선전부국장도 교체됐다. 총정치국의 3역(役)이 모두 바뀐 셈이다. 군대 내의 정치사업을 “참신하고 진공적(적극적)으로” 개편하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물론 장성택 숙청이후 외부에서 ‘2인자’로 부상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최룡해 차수가 갑작스럽게 해임되고 노동당 근로단체담당 비서로 옮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최룡해가 불과 몇 주 전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짧은 기간에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는 2012년 4월 군 총정치국장 임명 전에 맡았던 당 근로단체 비서에 다시 임명돼 ‘원대복귀’한 셈이다. 그가 청년동맹에서 오래 사업했을 뿐 군의 정치, 선전사업을 담당한 경험이 없어 총정치국장 자리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5월 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강원도 원산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준공식 참석에 동행해 준공사를 하고, 김 제1위원장의 옆자리에 앉아 박수를 치고 있는 최룡해 비서의 모습은 통상적인 ‘좌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최룡해와 함께 총정치국을 이끌었던 핵심인사들이 승진하거나 여전히 다른 부서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군의 정치사업에 대해 질책했지만 그렇다고 총정치국 간부들을 정치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아니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룡해의 당 비서 임명은 ‘당의 서열’상 좌천됐지만 리영호 전 총참모장, 장성택 전 부장의 숙청과는 정치적 의미가 다르다. 최룡해의 정치적 비중이 커지는 것을 견제했다는 설도 사실과는 다른 것 같다.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도대로 군의 정치사업 개편이 마무리되면 다시 조직지도부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내년까지는 잦은 인사 이어질 것

북한은 지난 4월 정치국 회의,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통해 당, 정, 군의 주요 인사를 마무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집권 3년 차를 맞아 일부 신진인사 등용을 통해 새로운 권력구도를 짰다.

김영남, 리용무 등 원로그룹을 예우하며, 황병서 신임 총정치국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오수룡 당 비서, 리일환 부장 등으로 대표되는 신(新)실세그룹을 전진배치 시켜 노.장.청 조화를 통해 ‘안정 속의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당.정.군의 중간간부층에서는 40~50대로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12년 4월 공식 출범 후 지난 2년간 나타난 리영호 총참모장과 장성택 부장 숙청, 잦은 군 인사 등을 근거로 김 제1위원장의 리더십과 체제안정성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잦은 인사로 조직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김 제1위원장 입장에서 보면 ‘2세대’의 퇴진은 김정일 시대의 유산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체제의 동요보다 김정은 제1위원장 중심의 ‘유일적 영도체계’가 강화되는 흐름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1997년 당 총비서에 공식 취임한 김정일 위원장도 대대적인 세대교체와 인사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2010년 9월 3차 당 대표자회, 2012년 4월 4차 당 대표자회를 통해 당의 세대교체가 일부 이뤄졌지만 여전히 노동당 정치국 위원급 인사들에는 김정일 시대의 원로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아직까지 김정은 시대의 권력구도가 완성됐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우동측 전 국가안전보위 제1부부장,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사례와 같은 파격적인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3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과 ‘실무형 인사’가 균형 있게 발탁될 것으로 점쳐진다. 특히 내년 10월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35년 만에 7차 당대회가 개최될 경우 명실상부하게 김정은 시대의 권력구도가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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