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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관심 가져야 할 '3대 빈곤'이란?

[복지국가SOCIETY] 근로·주거·노후 빈곤 시대와 불교의 역할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5.08 06:54:43

 

 

 

 

 

 

 

 

 

 

 

 

 

불기(佛紀) 2558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2만여 사찰에서 봉축 법요식이 열렸다. 전국의 거리에는 연등 불빛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특히 올해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국민의 마음이 간절하여,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경건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조계종 산하 불교사회연구소와 함께 '3대 빈곤 시대의 불교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수행하였다. 조계종은 근로 빈곤, 주거 빈곤, 노후 빈곤 등 '3대 빈곤(3poor)'에 관심이 있었고,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그동안 국민 5대 불안을 중심으로 연구해왔다. 그래서 이들 문제에 대한 불교적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공동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이 글은 이 연구의 일부이다.
 
'부처님 오신 날'과 중생들의 3대 빈곤
 
매년 50만 명이 노인이 되고 있다. 2012년 560만 명이던 노인이 2013년 610만 명이 되었고, 2017년에는 810만 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그러나 노인의 70%는 고정적인 소득 없이 자녀들이 주는 용돈과 생활비로 살아간다. 매달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공약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대신, 정부는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만 월 10만-20만 원을 국민연금의 가입기간과 연계하여 차등 지원하도록 했다. 이는 장차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높여 노후 소득 보장을 왜곡시킬 개연성이 높다. 
 
또 해마다 67만 명이 대학 입시를 치르고 이 중 80%가 대학에 진학하여 연간 1000만 원의 학비를 내가며 공부하고 있으나, 졸업 후 실제 취직하는 비율은 2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요행히 취직하더라도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 종사하게 되어 수입이나 전망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국민 1인당 GNI는 2만 6205달러(2869만 원)나 되지만 다수 국민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느껴진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50%에 불과하여 내수는 침체되어 있다. 수출이 지속해서 늘고 흑자 폭이 늘어나도,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여전히 어렵다. 근로 빈곤(working poor)의 문제가 구조화되면서 우리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주체들의 소비 여력이 낮아지면서 경제 전체가 침체되는 악순환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000조 원을 넘어섰고, 가계부채의 90%가 부동산 관련 부채이다. 가계부채 총액이 이렇게 늘어났다는 것은 결국 국민이 부동산 관련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데 수입의 상당 부분을 지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열심히 돈 벌어 은행에 이자 주고 부동산 업자와 건설업체에 상납하면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 마련 때문에 결혼 자체를 미루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등 부동산 관련 부담은 우리 국민의 삶을 위축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양도세와 취득세의 감면이나 부동산 관련 융자 조건을 완화하여 집을 더 사도록 유도하는 데 그치고 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이제 저소득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도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워졌다. 3대 빈곤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근로 빈곤층(working poor)은 직장을 잃거나 은퇴하면서 노후 빈곤층(retire poor)으로 전환된다. 요행히 취직한 직장에서 얻은 전체 가처분 소득의 80%를 쏟아 부어 어렵게 마련한 주택은 이제 가격이 오르지 않고, 은행의 이자와 원금 상환 부담이 가중되면서 근로 빈곤층(working poor)은 주거 빈곤층(house poor)으로 전환된다.
 
부동산 문제는 일본과 같은 부동산 거품(bubble) 붕괴와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이환될 가능성이 높다. 근로 빈곤(working poor) 문제는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로 이어져 전체 사회를 폭력적이고 불안한 사회로 만들고 있다. 이들 3대 빈곤층(3 poor)은 서로 별개로 독립된 것이 아니다. 개인마다 한두 가지가 중첩되어 있거나, 한 가지의 빈곤이 시작되면 곧 다른 빈곤으로 넘어가게 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즉 상호 전환과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악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고정된 3대 빈곤은 우리 국민의 삶을 어렵게 하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점점 뺏어가고 있다. 이러한 속세의 일들은 관조하면서 개인적 수련을 통해 극복할 것이 아니다. 이들 3대 빈곤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불교신도 대다수가 직접 겪는 현실이고, 불교가 우리의 현실에서 직면한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 속에서 불교의 역할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로 불교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국민의 삶과 함께 호흡해왔다.
 
수백 년간 전쟁을 계속하던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화랑들에게 세속 5계를 주어 전쟁을 끝내고 통일을 이루도록 도왔다. 고려시대에는 국교로 자리를 잡으면서 팔관회, 연등회와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통해 시기별로 국민의 마음에 희망을 주고 어려운 삶을 격려해왔으며, 불교를 매개로 하는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기득권 계층이 모두 강화도로 피신한 상태에서 불교는 몽고 지배에 유린당하던 중생들에게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희망을 불어넣었다. 오늘날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인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은 것도 단순히 경전의 방대함과 판각 제작의 과학성과 정교함 때문만이 아니라, 팔만대장경이 시대정신과 불교의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래 사회적 경제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불교가 선도적으로 해오던 역할이었다. 고려 말기 각 지역의 호족들은 사병뿐만 아니라 토지를 과도하게 점유하면서 중앙 정부의 재정 능력을 약화시켰을 뿐 아니라, 경작하는 농민에게 소출의 10% 정도만을 허용하면서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끔 했다. 농업국가에서 국민 경제의 토대가 무너진 것이었다. 이때 불교는 고려 시대 말기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건국을 도왔고 한양을 새로운 수도로 정하는 데도 기여하였다.
 
▲ 고려 말, 조선 시대까지 경자유전 정책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아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사진은 한국방송(KBS) 드라마 <정도전> 포스터. ⓒ한국방송

▲ 고려 말, 조선 시대까지 경자유전 정책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아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사진은 한국방송(KBS) 드라마 <정도전> 포스터. ⓒ한국방송

왕조의 개창 초기 정도전 등을 통해 반영된 조선의 건국이념 중 하나였던 '경자유전(耕者有田)' 정책은 이성계의 기존 호족들에 대한 타협 정책과 이방원의 왕권 강화 정책 때문에 부분적으로만 시행됐다. 그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중기 이후에야 대동법으로 정립되었지만, 이는 정변으로 집권한 세력들의 논공행상과 기득권과의 타협 과정에서 현실에서 제대로 그 의의를 구현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유교적인 사회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설립된 3000여 개의 각종 서원(書院)조차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국가가 하사한 토지나 유림이 기부한 토지에 높은 소작료를 매겨 서원의 운영비와 유림의 유흥비로 지출했던 사례가 있다. 해방 이후 토지 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도, 민중들이 땅 소유 구조 변화를 통해 지주와 소작농 간의 부당한 관계를 해결하자고 요구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숭유척불(崇儒斥佛)의 어려운 상황에서 사찰의 존립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이어지던 조선 중기 이후에도 불교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절에서 운영하는 사전(寺田)은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에 대한 착취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그나마 낮은 지대로 백성들이 숨통을 틀 수 있는 좋은 경작지의 역할을 해 왔다. 전체적으로 큰 비중은 아니었지만, 사찰이 소유한 사전(寺田)에서는 소작료를 소출의 약 10% 정도만 내면 되었으므로 수탈과 착취에 익숙한 농민들은 그야말로 불국정토로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 시기별로 점차 사전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는 지역 주민들과 유민들이 자발적으로 사찰 아래 황무지를 개간하여 사찰에 기부 헌납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온 것이 큰 이유였다. 사찰이 황무지를 개간하여 소유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소작료를 내면서 농민의 삶이 안정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중생들의 삶은 또다시 '새로운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민생 불안의 시대에 불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하나는 불교가 신도들의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소소한 고민을 체계적인 사회 문제의 한 부분으로 인지하며, 신도들 스스로 일상적인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불교 자체가 가진 힘으로 우리 사회를 불국정토의 현대적 이름인 '복지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인도의 왕자로 태어나 궁궐에서 유복하게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4대 문을 통해 성 밖에 나가면서 생로병사 현상을 직시했다. 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벽을 뛰어넘어 구도의 길로 나아갔다. 오늘날 우리나라 불교도 중생들의 아픔을 '3대 빈곤(3poor)'이라는 사회 현상으로 바라봄으로써 현실에서 살아있는 적극적인 불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참선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어 생로병사에서 자신은 자유로워졌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깨달음을 널리 알리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제자들을 교육하고 불교를 전파하는 험난한 길을 나섰다. 그렇게 배운 제자들의 맥을 이은 달마대사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서역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이유도 단순히 불법을 알리기 위해서만이 아닐 것이다. 중생이 아픈데 자신의 깨달음만을 추구하며 그 고통을 바라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불교는 중생의 고통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바라보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원인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그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왔다. 불교가 장차 민생 문제의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한 축을 담당한다면, 우리나라의 장구한 역사와 결을 같이 하며 살아 숨 쉬어온 불교 선각들의 노력이 현실에서 다시 한 번 꽃피울 것이다.
 
▲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치, 4대강 사업 중단 등을 요구하며 2010년 5월 소신공양(부처에게 공양하고자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행위)한 문수 스님을 추모하는 스님들. ⓒ프레시안

▲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치, 4대강 사업 중단 등을 요구하며 2010년 5월 소신공양(부처에게 공양하고자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행위)한 문수 스님을 추모하는 스님들. ⓒ프레시안

 
3대 빈곤과 불교의 역할 
 
다수 국민은 불교를 정체된 종교로 생각한다. 불교가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개인 수련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교는 최근 신도의 증가율도 다른 3대 종교들에 비해 낮은 상태이다. 또한 기성 신도의 다수가 노인이 되면서 불교에서도 고령화 문제는 심각한 실정이다. 일과 삶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종교는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결국 가진 자들만의 종교로 전락하거나 다수의 신도로부터 외면당할 개연성이 크다.
 
불교는 현세 기복적인 종교가 아니다. 기도를 통해 참고 견디면서 현실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도 불교의 교리가 아니다. 물론 신도 개개인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것이 하나의 방편이다. 하지만 사물의 본질을 명확히 깨닫는 구도와 수련을 통해 구체적인 중생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러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 불교가 해왔던 역할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시대정신과 중생의 요구를 외면하며 산속에서 고고하게 존재하는 불교가 아닌, 저잣거리에서 중생들과 함께 숨 쉬면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미 불교 내부에서 그런 적극적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고, 능히 그런 일을 감당할 많은 자원도 가지고 있다. 불교가 가진 자원은 넓은 땅이나 탁월한 철학과 교리, 우수한 선지식들뿐만이 아니다. 오늘도 민생 불안과 삶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 그 자체가 불교의 가장 큰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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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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