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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식물·희귀 나비…서울 도심서 하룻새 777종 발견

 
조홍섭 2014. 06. 18
조회수 249 추천수 0
 

서울숲 바이오블리츠 2014 행사 참가기
일반인과 전문가 500명이 하루 동안 서울숲 뒤져, 예상보다 다양한 생물

외래종과 도입종이 많았지만 북방계·남방계 식물도 나와, 제비도 번식

 

bi2-1.jpg» 서울숲 연못의 나무다리를 걸으며 새와 습지 식물을 조사하고 있는 참가자들.

 
“귀를 기울여 보세요. 무슨 소리가 나지요?”
 

지난 14일 박찬열 국립수목원 박사가 서울숲 습지를 가로지른 나무다리 위에서 참가자에게 물었다. 자동차 소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 ‘짹짹~’하는 제비 소리가 들렸다. 7~8마리의 제비가 날렵하게 하늘을 날았다. 참가자들은 “어릴 때 보고 처음 본다”며 신기해했다.
 

서울숲과 중랑천에서 먹이와 집 재료를 구해 인근 다세대 주택에 둥지를 튼 제비들이다. 서울숲은 북촌 한옥마을과 용산 공원 근처인 삼각지와 함께 서울 도심의 주요한 제비 서식지이다.
 

제비 말고도 큰부리까마귀, 민물가마우지, 그리고 맹금류인 황조롱이를 10~20분 사이에 볼 수 있었다. “생태계가 살아 있는 증거”라고 박 박사가 설명했다.

 

bi3-8.jpg» 서울숲 옆 성수동 다세대 주택 처마에 둥지를 튼 제비. 사진=박찬열 국립수목원 박사

 

bi2-2.jpg» 바이오블리츠 참가자들이 박찬열 국립수목원 박사와 함께 서울숲에 설치한 새 둥지를 살펴보고 있다. 숲이 무성해지면서 둥지 주인은 참새에서 박새로 바뀌었다.

  

■ 바이오블리츠란 어떤 행사?
 
24시간 동안 생물의 모든 분류군 전공자와 일반인이 함께 특정지역의 생물종을 조사하는 행사이다. ‘블리츠’란 전쟁과 스포츠 용어로 일시에 공격한다는 뜻이다. 한 곳에 40~50명의 박사급 전문가가 몰려 벌이는 ‘고급 보물찾기’이다. 15분에 한 종씩 사라지는 생물다양성 보전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일반인에게 일깨우고 특정 지역의 생물상 변화를 추적하는 학술적 목적을 지닌다. 미국, 영국, 캐나다, 대만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국립수목원이 2010년부터 해마다 열고 있다.

 

bi1-1.jpg» 대도시에서는 처음 열린 2014 바이오블리츠 서울숲 행사장 모습.

 

2014년 바이오블리츠  행사가 서울 성수동1가 서울숲에서 14~15일 동안 열렸다. 국립수목원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깊은 산속에서 열린 이제까지와 달리 대도시 한가운데 공원에서 처음 열렸다. 서울숲에는 과연 얼마나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을까.
 

중랑천 쪽 은행나무 숲길 가장자리를 나지막한 낯선 식물들이 뒤덮고 있었다. 작고 노란 꽃의 에나멜 광택과 잎 모양은 미나리아재비를 닮았지만 바닥을 긴다.

 

양종철 국립수목원 연구사가 “여기 있을 식물이 아닌데…”하고 놀라워한다. 우리나라에선 백두산에서만 기록이 있을 뿐 남한에서는 처음 발견된 기는미나리아재비였다.
 

bi3-2.jpg» 북방계 식물인 기는미나리아재비가 서울숲에 자라고 있는 모습을 양종철 연구사가 가리키고 있다.

 

이 식물은 중국 동북부, 일본 홋카이도, 러시아 캄차카, 몽골, 시베리아 등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북서부 등에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이다. 대체 이 식물은 어떻게 서울숲에 왔을까.

 

양씨는 “숲을 조성하면서 들여온 다른 식물에 묻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이곳 환경에 살아남은 것이 특이해 지켜볼 가치가 크다”고 했다. 기는미나리아재비는 독성이 있어 가축이 먹지 않는데, 건초와 함께 번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숲이 오랜 기간 경마장이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bi3-3.jpg» 비수리와 괭이비싸리의 잡종인 넌출비수리. 남부 지방에만 있는 식물이다.

 

남부 지방에만 사는 식물인 넌출비수리도 발견됐다. 비수리와 괭이싸리의 잡종인 이 식물은 제주도와 진도 등 남해안에 분포한다. 이 식물이 어떻게 서울숲까지 왔는지는 역시 미스터리다.
 

조성한 지 얼마 안 되는 연못에서는 희귀한 곤충이 발견됐다. 바로 고추잠자리다. 우리가 흔히 ‘고추잠자리’로 부르는 고추좀잠자리보다 크고 개체수도 드물다.

 

고추잠자리 수컷들은 연못을 나누어 차지한 영역을 빙빙 돌면서 침입하는 다른 고추잠자리를 맹렬하게 내쫓으면서 암컷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흥식 농림축산검역본부 박사는 “휴전선 근처 같은 잘 보전된 습지에서나 보는 고추잠자리의 번식행동을 이런 인공환경에서 관찰할 수 있다니 놀랍다”라고 말했다.
 

 bi3-1.jpg» 안정된 습지에서만 서식하는 고추잠자리가 서울숲에서도 번식을 하고 있었다.

 

서울숲은 조선시대 왕의 사냥터이다가 일본 강점기 때 농경지로 개발됐고 이어 유원지, 경마장, 공해 공장지대, 골프장 등을 거쳐 마침내 2003~2005년에 숲으로 조성됐다. 자연성이 남아있으리라고 기대하기 힘든 환경이다. 그러나 만 하루 동안 이곳을 조사한 생물 전문가들은 “기대 안 했는데 뜻밖에 많은 생물을 만났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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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생물종은 깊은 산과 다른 양상을 나타냈다. 외래종과 원예종 등 사람의 손길을 탄 생물이 많았다. 도로공사 절개지에 심은 중국산 낭아초를 비롯해 도깨비가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가시박 등 외래종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너른 잔디밭은 토끼풀과 서양민들레 등 도입종으로 뒤덮였다. 
 

bi3-4.jpg» 외래종인 도깨비가지

 

옮겨 심은 자생식물도 다양했다. 울릉도에 사는 섬초롱꽃을 비롯해 마가목·모감주나무·산딸나무·함박꽃나무 등이 자리 잡았고, 남쪽 지방에 흔한 팽나무와 북방계 잣나무도 사이좋게 서 있었다.  해외로 유출돼 원예종으로 개발된 유명한 미스킴라일락도 눈에 띄었다.
 

곤충 채집은 참가자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생물조사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서 포충망과 흡충병, 삼각지 등 전문가들이 쓰는 장비로 곤충을 채집할 기회는 없었다. 곤충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한밤중 유인등을 켜고 진행하는 야간 곤충채집도 취소됐다.
 

그 이유에 대해 변봉규 한남대 교수는 “서울숲의 곤충다양성이 자연 숲의 절반 이하에 그치는 것은 숲을 조성한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곤충과 식물의 다양성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밝은 보름달이 떠 유인등에 곤충이 이끌리지 않은 요인도 작용했다.

bi3-6.jpg» 나비정원의 암끝검은표범나비. 여기서 탈출한 개체가 서울숲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일부 곤충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 소형이고 이동성이 뛰어난 벌 종류가 다양하게 발견됐다. 강원도 깊은 숲에나 있는 꽃벌인 어리뿔가위벌도 나왔다. 매우 드문 암끝검은표범나비도 채집됐는데, 이는 공원 안에 있는 나비정원에서 탈출한 개체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행사에는 350명의 일반 참가자가 전문가 150명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생물에 관해 궁금하던 내용을 전문가에게 묻고 또 야장을 작성하는 등 조사방법을 직접 체험해 보는 기회도 얻었다. 일반인 참가자들은 첫날 프로그램을 밤늦게까지 진행하고서도 이튿날 새벽 5시 탐조활동에 100여명이 참가하는 열성을 보였다.
 

bi1-2.jpg» 다양한 분야 생물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가 밤늦도록 진행됐다.

 

bi1-4.jpg» 방송인 김미화씨가 진행한 생물다양성 모의 총회 모습.

 

bi2-3.jpg» 박주가리의 씨가 바람을 타고 확산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bi2-4.jpg» 골목길 생태 조사. 대도시 뒷골목에도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bi2-5.jpg» 나무의 종류와 지름 등을 재 야장을 작성하면서 전문가가 하는 조사방법을 배우는 참가자들.  

 

가족과 함께 행사에 참가한 이상문(46·서울 강동구 강일동)씨는 “평소 만나기 힘든 전문가와 직접 얘기를 나눠 유익했다. 도시에도 이렇게 다양한 생물이 사는지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이준성(강동중 1년) 군은 “무엇보다 골목길 식물 탐사가 평소 전혀 몰랐던 세계를 보여줘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했다.
 

15일 오후 2시 전광판의 시계가 24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자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서울숲에서 조사한 생물종이 모두 777종이라고 발표했다. 이 원장은 “애초 500종 정도를 예상했는데 훨씬 다양한 결과가 나왔다. 머리로만 알던 생물다양성을 즐겁게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말했다. 내년 바이오블리츠는 울산 대공원에서 열린다.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바이오블리츠 또 언제 열리나

평창 당사국 총회 앞두고 서천, 평창서 잇따라 열려

bi1-5.jpg» 조사 24시간이 임박하자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이 참가자들과 카운트다운을 준비하고 있다. 바이오블리츠가 대중적인 생물조사 행사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블리츠가 오는 9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생물다양성에 대한 시민의 의식을 높이는 주요한 행사로 잇따라 열린다.
 

오는 9월29~10월17일 열리는 이번 총회에는 194개 당사국 정부 대표는 물론 국제기구, 산업계, 비정부기구 등에서 약 2만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생물다양성협약은 기후변화협약과 함께 유엔의 양대 환경협약의 하나이며, 2년마다 열리는 당사국 총회는 생물다양성 분야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이다.
 

환경부는 평창 로드맵과 평창선언문을 이끌어내는 등 총회의 핵심 의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과 별도로 이번 총회를 계기로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높이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세워 두었다.
 

이를 위해 심포지엄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열리는데,  이 가운데 시민의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바이오블리츠를 3차례 열 예정이다. 학생, 일반인, 전문가와 함께 다양한 생물종을 탐구하는 이 행사를 1차로 서울숲에서 연 데 이어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에서 8월 중 2차 바이오블리츠를 열고, 총회 직전인 9월에는 평창에서 다시 한 번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바이오블리츠는 일반인 참가자에게 매우 인기가 높고 지자체들도 주최를 원하고 있어 이번 일련의 행사를 거치면서 대중적인 환경체험, 생물다양성 인식 확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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