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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레이디-재단 이사장- 5선 의원 출신이 ‘서민’이라니…

 

그런 ‘서민’, 나도 한번 해보고 싶소!
 
[기고] 퍼스트 레이디-재단 이사장- 5선 의원 출신이 ‘서민’이라니…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30 03:25:52 | 최종:2012-11-30 04:19: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의 강기석 언론특보단장(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박근혜 후보의 ‘서민대통령론’을 비판하는 글을 보내와 소개합니다.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이 글에 대한 ‘반론’, 혹은 이와 유사한 내용(주제, 분량 등)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해 비판글을 보내올 경우 게재할 용의가 있음을 밝혀둡니다...편집자)

 

오렌지공(公) 윌리엄3세
네덜란드의 총독 오렌지공(公) 윌리엄3세가 1688년 명예혁명을 성공시켜 영국에 입헌군주제를 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왕위계승 서열 1순위였던 메리의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틀림없는 스튜어트 왕가의 일원이었기에 역설적으로 스튜어트 왕가의 전제정치와 타락상을 뒤집어엎으려는 혁명의 수장 자리를 부여받았던 것이다. 왕조국가에서는 이처럼 혁명의 ‘수괴’마저도 왕족의 핏줄을 필요로 했다.

 

조선시대 중종이나 인조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성공한 반란군의 수괴였기 때문이며, 그들이 반란군 수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왕족이었기 때문이다. 또 ‘강화도령’ 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도 그가 그때 살아 남아있던 거의 유일한 왕족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운이 좋았다. 다른 수많은 이씨 성을 가진 왕족들은 정변이 실패하거나 정변이 일어날 조짐이 있을 때마다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왕조국가 시대의 풍경이다. 그리고 그 때 정치는 사대부, 즉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귀족만이 정치를 할 수 있었던 왕조시대

그러나 민주국가에서는 다르다. 왕족만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귀족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없다. 왕조국가 시대에는 정치를 하는 데 핏줄이라는 ‘선천적 자격’이 절대적이었지만 민주주의 시대에는 더 많은 유권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리더로써의 ‘후천적 품성과 자질’이 필요할 뿐이다.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품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평생 서민의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발끈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에는 서민 출신만이 정치를 할 수 있고, 또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는 말로 오해한데서 비롯된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쓸모없는) 전깃불이 들어와 있으면 불을 끄고, 물이 줄줄 새고 있으면 수도꼭지를 잠글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에 투철하기 때문에 서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강변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장에서 한 말이다.

가급적 형광등 하나 덜 켜고 수도꼭지를 꽉꽉 잠그고 사는 것이 서민생활이라는 건 맞다. 그렇다고 돈 많은 재벌이라고 밤새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수도꼭지를 활짝 열어 놓고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쓸모없는 불이 들어와 있으면 끄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줄줄 새면 잠그는 것은 누구나 하는 보편적 행동이다. 낭비하지 않고 근검절약하는 것은 오히려 귀족들,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대표적 덕목일 수도 있다. 서민들만의 특성이 아니라는 얘기다.
 

1960년대 후반, 청와대 시절 박정희 대통령 일가족.오른쪽 두번째가 박근혜

 

박 후보는 또 자신이 “청와대에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그렇게(자신을 서민의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청와대에 살면서도 굉장히 철저한 어머니의 교육철학 덕분에 입는 옷이나 먹는 것, 모든 것에 대해 ‘중류’처럼 살려고 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또 “스스로 저소득층, 사회약자 등 어려운 분들을 항상 많이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사실들을) 저에게, 우리들에게 들려줬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의 가정교육을 받아 고달픈 서민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그가 ‘서민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서민’임을 가장하고 싶은 강박증

그가 청와대에서 살던 당시 그의 가족들은 칭호부터 달랐다. 부친 박정희 대통령은 각하, 모친 육영수 여사는 영부인님, 그와 여동생(근영)은 영애님, 남동생(지만)은 영식님으로 불렸다. 이들에겐 전속 비서가 딸려 있었고 경호원이 늘 따라 붙었다. 청와대에서 사는 게 답답했다는 점에서 서민과 같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 이유는 분명 다르다. 비서와 경호원이 따라 붙는 삶이 서민의 삶일 수는 없다. (사족으로, 그 때 ‘박근혜 영애님’을 충심으로 보좌했던 비서가 지금 정수장학재단 최필립 이사장이다)

한 재벌이 자신의 호화로운 사생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며 투덜거렸다고 한다. “내가 금쌀로 밥을 지어 먹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래?” 맞다. 하지만 그는 서민과 똑같은 수준에서 살기 위해 금쌀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그냥 밥을 먹을 뿐이다. 그 재벌이 외국에서 임원회의를 할 때는 풍광 좋은 곳에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린다고 한다.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골프장에서 아침마다 승마를 즐기고 수백 대의 외제차를 개인컬렉션으로 소장하고 있다고도 한다. 비록 서민과 똑같은 쌀밥을 먹긴 하지만 그는 역시 재벌인 것이다.

박 후보는 어머니의 훌륭한 가정교육마저도 74년 어머니가 괴한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끝났다. 그의 나이 23세 때였다. 아버지가 새장가를 들지 않고 대신 ‘궁정동 안가’ 출입을 선호한 탓에 그는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게 됐다. ‘인혁당사건’을 조작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할 때도 그는 퍼스트 레이디였으며, 유신 시절 내내 그는 퍼스트 레이디였다. 게다가 정체가 모호한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여성봉사단’ 같은 전국 규모의 조직을 만들어 ‘국민정신개조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사리판단 능력이 분명한 20대 때 이미 유신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퍼스트 레이디 시절 청와대를 방문한 낙도 노인들을 만나고 있다.

20대 중반부터 유신정권의 핵심역할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가 부하의 손에 암살당하고 그가 청와대에서 나온 이후의 생활을 또 어떠했는가. 전두환을 수괴로 한 신군부는 그에게 저택을 마련해 주었다. 전두환은 청와대 금고를 털어 나온 박정희의 비자금 중 당시 돈 6억원을 그에게 주었다는 말도 있다. 그 이래 그는 아버지가 권력의 힘으로 강탈한 장물로 만든, 수 조원에 이르는 4대 재단(육영재단, 정수장학재단, 영남대재단, 한국문화재단)의 이사장직을 번갈아, 때로는 동시에 맡으면서 수억 원의 연봉을 받아 챙겼다. 서민의 벌이로는 너무 많다.

박 후보는 정계에 투신한 이래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지역에 가서 모든 분들 다 만나고 그 분들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다 같이 호흡하면서,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서민의 삶’을 살았노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당선만 되면 유권자들은 싹 잊어버리고 거들먹거리기 바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수두룩한 마당에, 그가 그토록 유권자들과 같이 호흡하며 애로사항을 해결하려고 애썼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국회의원의 삶이지 ‘서민의 삶’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분은 ‘서민’이 되고 싶어 안달인 듯싶다. 그런데 현재의 재산과 직위를 다 버리고 ‘진짜 서민’이 되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이 되고 싶어 서민을 가장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생각을 잘못 한 것이다. 민주국가라고 해서 꼭 서민이어야 정치인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데 더 유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민주주의로 시작한 미국에서도 1789년 초대 워싱턴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1828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까지 40년 동안은 오직 동부 귀족가문 출신들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20세기 들어서도 루스벨트 가문, 케네디 가문, 부시 가문 등 소위 미국의 명문가문이 미국 정계에서 일정한 프리미엄을 갖는다.

미국 뿐 아니라 영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정치의 가문세습이 아주 흔한 일이 됐다. 뭔가 교양이 더 있고, 배운 것도 많은 것 같고, 능력도 있을 것 같은 귀족 혹은 부자의 이미지는 정치를 하는 데 도움이 되면 됐지 결코 단점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민주국가에서 귀족은 정치를 못한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말춤’

그러므로 박 후보가 서민의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하는 지적은 대통령 될 자격에 대해 의심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될 경우, 서민이 대부분인 국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서민들을 위해 정책을 세울 품성과 자질이 있는가를 따져 보자는 것일 뿐이다. 그런 의도에 대해 독재 권력자의 딸-퍼스트 레이디-4대 재단 이사장-5선 국회의원-여당 대표를 지낸 인물이 “나도 서민이다”라고 반발하는 모습은 왠지 생뚱맞다는 생각이다.

 

필자 강기석 단장
정치귀족가문 출신임을 장점으로 내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정작 가장 서민적인 정책을 폈다. 박 후보의 경우는 14년간 국회의원을 하면서 대표발의한 법안 15개 중 서민에 관한 법률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단 한 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가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할 때 여성 직원이 결혼하면 퇴직시켰다는 주장이 나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런 비교에 대한 답변만으로 족하다. 그럼에도 사사건건 시치미 딱 떼고 사실과 다른 억지주장을 펴니 그의 화법이 유체이탈화법 혹은 동문서답화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박 후보는 젊은이들과 싸이의 ‘말춤’을 출 뿐 아니라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자체가 ‘춤’을 추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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