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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방문, 남북의 골을 깊게 말기를

[통일문화240] 교황방문, 남북의 골을 깊게 말기를
 
[통일문화 만들어가며 240] -교황 프란시츠코 1세의 서울방문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4/08/10 [00:45]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교황방한에 대한 언론 보도     © 자주민보


중순에 이뤄질 교황 프란치스코 1세(Jorge Mario Bergoglio, 1936~)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보도들이 양산된다. 어떤 행사를 어떻게 치르리라는 정도는 이해되지만 어느 정객이 공항에 나가 영접할 것이라던가, “세월호”, 원전, 정치사범, 폭행피해자 등등 숱한 사건에 관련해 교황에게 어떤 처사를 바란다는 등등은 비종교적환경에서 자라난 필자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황의 방문을 최대한 활용하여 각자의 목적(정치적성격이 다분한)을 이루려는 모양인데, 교황의 대외활동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에서처럼 방문이 고도로 정치화된 경우는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교황방한에 대한 열기는 한국의 천주교신도가 국민들 가운데서 차지하는 비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해인 수녀가 교황의 북한방문을 기대한 건 경건한 신도로서의 순진한 소망이겠다만, 어떤 사람이 교황이 백두산에서 북의 핵무기 포기를 명령하기를 바란 건 너무나도 황당하다. 교황이 유럽의 왕들에게 왕관을 씌워주어 인정을 표시하던 옛날에나 명령이 그나마 가능했을 테지만 “정교분리”가 널리 받아들여진 현시대에 교황의 명령을 바란다는 건 교황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 

일부 사람들이 교황에게 지나친 기대를 거는 데는 “교황”이라는 번역이름이 한 몫 오도하지 않았을까? 

교회에서 사용하는 애정과 존경이 깃든 칭호라는 라틴어 “papa”가 동양의 봉건시대에 “교황(敎皇)”으로 옮겨져 중국대륙과 한국, 일본에서 쓰이는 게 현실이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실제로 중국의 천주교신자들은 “쨔오쭝(敎宗, 교종)”이라는 번역이름을 쓴다. 지금 중국의 천주교단체들이 바티칸의 지휘를 받지 않는 현실과 어울리는 번역이름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초기까지만 해도 중국의 천주교는 바티칸의 지휘를 받았고 교황청이 임명한 추기경이 최고지도자였다. 백범 김구관련 자료들을 본 이들은 인상이 있을 텐데, 김구와 동료들을 도와줬다고 이름이 나오는 위빈(于斌, 우빈, 1901~ 1978)이 바로 추기경이었는데 대륙이 해방될 때 미국으로 달아났다가 몇 해 후 타이완으로 가서 교육계, 정치계, 종교계에서 활동했고 1978년 로마에서 병사했다. 바티칸은 종교 및 정치이념과 위빈과의 인연으로 하여 지금껏 타이완과 “국교”를 유지하여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가 없고, 또 대륙에서 천주교단체들이 주교를 자체로 임명하는 행위를 공격하기에 사이가 아주 나쁘다. 2000년 요한 바울로 2세가 봉한 성자들 가운데 19세기 말 중국(당시 청나라)에서 나쁜 짓을 많이 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또한 중국의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서는 중국계미국만화가 진루엔 양이 청나라 말기 특수단체 의화단(義和團)과 외국물 먹은 자들과의 충돌을 다룬 만화책이 최근 한국에서 《의화단- 소년의 전쟁》, 《의화단- 소녀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니 흥미 있는 이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만화가 자신이 역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만화의 특성상 극적충돌을 노리다나니 의화단의 황당한 부분이 지나치게 부각된 점은 부족점이다만 분위기파악에는 도움이 될 책이다. 청나라 말년에 백성들은 관리를 무서워하고 관리들은 양인(洋人, 주로 서양인)을 무서워하는 괴상한 국면이 이뤄졌기에 종교를 전파한다는 외국인들이 굉장히 세도를 썼고 또 적잖은 청인들이 양교(洋敎, 서양종교)신자로 되어 악행을 일삼아 “교안(敎案, 종교사건)”들이 거듭 일어난 건 엄연한 역사사실이다. 헌데 중국백성들에게 불행과 죽음을 안겨준 자들이 천주교의 성자로 둔갑했으니 중국인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국공산당이 주도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뒤의 정치적 충돌을 내놓고 청나라 말년의 특권과 형사사건들을 젖혀놓더라도 바티칸과 중국의 모순, 충돌은 수백년을 끌어왔다. 

한국의 《신복룡 교수의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보기》(도서출판 풀빛 2002년 1월 초판 1쇄, 도합 255쪽)에서는 서방의 “제국주의적포교”와 관련하여 1715년 “동방의 조상숭배는 우상이다”는 교황 클레멘스 11세의 헌법이 언급되던데, 실지로 중국에서 조상숭배 및 공자존경이 천주교와 충돌한 역사는 훨씬 오래다. 17세기에 이미 여러 차례 이른바 “예의지쟁(禮儀之爭, 예의에 관한 쟁론)”이 벌어졌고 1700년에는 강희(康熙)황제가 직접 나서서 조상이나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건 중국의 전통풍속이라 종교활동에 속하지 않는다고 성명한 바 있었다. 그런데 1704년 클레멘스 11세가 중국교도들이 조상과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된다는 금지령을 내렸고 그 후에도 충돌이 거듭 일어났다. 

한국 책에는 한국포교의 주역으로 된 파리외방전교회가 독선으로 흘러간 잘못을 지적한 뒤에 이런 대목이 있다. 
     
“심지어 황사영(黃嗣永)같이 지각없는 신도들이 이 나라가 예수 믿기에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프랑스 군사 5~6만 명으로 조선을 정벌해 달라’는 편지를 북경에 보내려다가 발견됨으로써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으며, 베르뇌S. F Berneux와 같은 신부는 ‘제사상에 올랐던 음식을 먹는 것도 죄가 된다.’는 사목 서한(1864)을 발표함으로써 종교 박해는 걷잡을 수 없이 잔혹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1939년에 교황 비오 12세가 동방의 조상 숭배는 우상 숭배가 아니라는 칙서를 발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187쪽)      

황사영(1775~1801)을 한국의 사전에서는 “매국 미수범”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사람을 어느 교황이 성자로 봉했다면 한국인들이 어떤 감정이 되겠나 생각해보면 요한 바울로 2세의 처사가 중국사람들에게 입힌 상처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다. 

그리고 1939년 교황 비오 12세의 칙서로 중국에서도 300여 년 쟁론이 끝났는데, 중국사람들은 그 원인은 중국에 대한 로마교황의 무식함이었다고 평가한다. 

이제 와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중 치를 가장 중요한 행사- 시복식에 한복 입은 성모상이 나타나고 교황의 의자에 태극기 문양인 건곤감리 4괘를 새기는 등, 한국적인 요소들이 가미된다니까 세상이 변하기는 정말 크게 변했다. 건곤감리가 한국적인 요소로 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생길 수도 있고 성모상에 한복을 입히는 게 정말 격에 어울리는 행동이냐에 대해서도 한국 안팎에 의문을 품을 사람들이 많겠다만, 교황청이 한국 측의 그런 조치들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독선이 줄고 남의 문화에 대한 존중이 늘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최종 목적이야 포교에 있을 테고, 필자로서는 아직도 천주교가 중국이나 한국의 전통문화와 어울리지 못해 겉도는 수준이라고 판단하지만. 

문화충돌 야기로부터 문화모순 감소로 나아가는 건 물론 진보이다. 헌데 문화보다 복잡한 건 종교와 본질적으로 정반대인 과학과의 충돌과 모순이 아닐까 싶다. 부루노와 갈릴레이를 박해했다가 수백 년 지나서야 사과했던 교황청이 과학이 발달한 현시대에 세력을 유지, 확장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요한 바울로 2세가 언젠가 과학자들에게 빅뱅 1초 후부터 연구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건 최신과학성과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종교서적의 권위성과 종교신앙의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과학이 끊임없이 발달하는 현실에서 종교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데 틈새기에서라도 생존하기 위한 종교지도자로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평해야겠다. 덮어놓고 진화론을 반대하는 일부 광신도들보다는 차원이 다르다. 

세계와 만물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누가 창조했느냐? 이런 식의 쟁론들은 신부와 목사들의 입심과 글재주로 신도들을 설득할 수 있다만, 과학의 발달이 가져다주는 어려운 문제들은 수없이 많다. 전날 과학기술이 의학을 받쳐주지 못할 때에는 사람들이 쉬이 앓아죽었으니 교황종신제가 나름대로 합리성을 띄면서 전해졌는데 의술이 발달한 지금은 심장만 뛸 뿐 아무런 생명활동도 진행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생명이 유지되니까 종신제를 실행하기 어려워졌다. 600여 년 만에 지난해 사임한 교황이 나타난 게 특례로 될지 아니면 제도화될지는 두고 봐야겠다. 종신제를 정식 폐지하는 경우 교황의 권위성이 훼손되고 교황자리다툼이 정쟁 식으로 발전한 가능성도 다분하니까 개혁이 쉽지는 않겠다.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제도는 당시 과학기술수준과 갈라놓을 수 없고, 모든 언행은 인간들의 입장 및 당시 정치환경과 떼어놓을 수 없다. 한국 천주교가 교황의 방문에 즈음하여 조선 천주교단체를 초청했으나 조선 천주교측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조선팀이 참가하느냐는 협상이 중단되어 한결 껄끄러워진 남북관계를 이유로 이남방문을 사절한 게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한국 사이트들에서 교황방한을 반대하는 주장들을 보면 상당수 기독교도들의 작품으로서 아집에 빠진 흔적이 많다. 근년에 중국에서 기독교교회를 다니게 된 사람들도 덮어놓고 천주교를 비하하는 경우들을 꽤나 보았는데, 종교가 권장하는 사랑이 아니라 원한과 증오부터 배우지 않았나 의심이 들 지경이다. 끝없는 쪼개기를 반대하고 관용, 존중과 통합을 주장해온 필자로서는 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중국을 찾은 적 없거니와 찾을 가망도 근년에는 없을 것 같고, 세계에서 제일 영토가 큰 러시아에서 영향력이 미미한(로마교황이 보낸 추기경이 비행장에서 쫓겨나 입국하지 못한 적 있다) 교황이 반도의 남반부를 잠깐 방문한다고 해서 무슨 질적인 변화가 생겨나랴마는 방문으로 남북의 골이 더 깊이 패이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서울을 방문하는 교황을 이북출신의 테러리스트가 암살하련다는 추리소설이 나와서 꽤나 팔렸다던 냉전시대의 암울한 과거사가 재탕되거나 변종을 낳지 말아야 새로운 웃음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2014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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