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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은 '프란치스코 붐'에 응답할 수 있는가?


교황 방한이 던지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숙제와 전망
백승덕 / 한양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 석사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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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8.11  0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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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 지나면 방한할 교황에 대한 관심이 크긴 한가보다. 오랜만에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에 들렀더니 한가운데에 서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상부터 보였다. 큰 통로에 아예 특별 전시대를 마련해두고 교황 관련 책들을 모아 판매하고 있었다. 전시대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교황 프란치스코’라는 식의 제목을 단 신간들이 한가득 놓여있었다. 가히 프란치스코 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10일 오후 시민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헬로, 프란치스코'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4일 방한한다. (연합뉴스)
 
교황 프란치스코의 진정성 대한 기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던 당시에 가톨릭교회는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교황청의 돈세탁 스캔들 등으로 권위가 땅에 떨어졌었다.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자리를 박탈하는 등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보수주의적 입장이 스캔들과 겹치면서 교회의 퇴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던 시기였다.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캔들을 은폐하지 않고 오히려 철저한 진상규명에 앞장섰다. 올해 초 유엔 아동권리위원회(CRC)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와 관련하여 사상 처음으로 교황청에 대한 청문회를 열자, 교황은 “우리는 어디에 그런 비리가 있는지, 누가 돈을 축재했는지 알고 있고 이는 교회의 부끄러움”이라며 추문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교황의 진상규명 의지는 아동 성추행을 조사하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한 것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지난 6월에는 돈세탁 스캔들과 연관된 마피아의 근거지에 찾아가 미사를 드리며 마피아에 대한 파문을 선언하기도 했다. 교황 바오로 2세에 대한 저격사건 이후에 관례처럼 설치한 전용차의 방탄유리를 떼어낸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세속을 초탈한 듯이 보였다. 자신이 묵은 숙소의 계산을 직접 한다거나 일부러 다른 사제들이 머무는 작은 숙소에서 함께 자는 소탈한 모습은 이전 교황들에게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엄숙한 종교 의례 중에 갑자기 제단 위로 올라온 어린아이의 장난을 받아주고, 순례 중에 기도를 부탁하는 신자들을 꼭 껴안고 있는 교황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정성’을 느꼈다고 말한다. 스캔들에 대한 확고한 진상규명 의지와 소탈한 행보는 교황에게 종교적 아우라를 돌려주었다.
 
그래서 교황의 곁에 다가가기가 이전보다 훨씬 쉬워진 것처럼 보인다.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가 끝나면 많은 신자들이 돌아가지 않고 교황을 직접 만나기 위해 기다리곤 한다. 지난 3월에 교황을 만나 불법 이주자인 아버지의 추방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던 10살 소녀 저지도 교황의 곁이 이전보다 다가서기 쉬워졌기 때문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교황은 다음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이민법 개정을 부탁하였고, 저지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추방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나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교황 맞이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10일, 대전교구 관계자들이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사진 오른쪽)와 17일 아시아가톨릭청년대회 폐막 미사 때 입을 제의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나 이 사건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영향력을 새롭게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현행법에 의하면 추방당할 불법이주자였지만, 교황은 해당 국가의 수장을 만나 딱한 사정을 전하며 법을 개정해주기를 요청했다. 멕시코 출신 불법 이주자의 어린 딸의 이야기를 듣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을 움직였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황의 휴머니즘이 개별 국민국가들의 법들을 넘나들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듯한 믿음을 주었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변화
 
교황에게 보다 다가서기 쉬워지고, 교황의 휴머니즘이 국민국가의 법에 의해 겪는 수난을 해결해줄 수 있을 길처럼 보이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황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구속자 가족들이 바티칸으로 찾아간 것도 이러한 기대 때문이었다. 구속자 가족들은 교황 알현 현장에서 교황이 지나갈 때 이탈리아어로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교황은 멈춰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구속자 가족들은 한국의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이용훈 주교가 써준 편지를 교황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었다.
 
두 달 뒤인 지난 7월, 한국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이들 구속자 가족들을 직접 만나 탄원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자필로 쓴 이 탄원서에서 염 추기경은 이들의 무죄를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용서를 청했다. 염 추기경의 탄원서는 이전의 행보에 비추어 봤을 때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는 추기경으로 선출된 직후에 교황청이 운영하는 일간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대선부정을 비판하던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던 적이 있었다. “맞서 싸워야 할 독재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사제단 신부들의 주장이 완전히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 인터뷰에서 염 추기경은 정의구현사제단이 ‘정권퇴진’과 같은 요구를 계속한다면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날 것이며, 교회에 대한 분열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염수정 추기경이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역사공원 순교성지에서 천주교 순교자 103위 시성 30주년·124위 시복 및 교황방한을 기념하는 순례 행진을 마친 후 기념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대선에서 부정이 있었다면서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사제들의 발언에 비해,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에서 국가전복을 꾀한 혐의로 구속된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요청한 염 추기경의 탄원서가 훨씬 논란을 일으키기 쉬운 것이었다. 실제로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과 같은 교회 내 보수집단들을 즉각 염 추기경을 비판하고 나섰다. 종교지도자가 용서를 구하는 탄원서를 쓴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염 추기경이 ‘종북주의자’로 낙인찍힌 내란 혐의자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그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한국에서 ‘정권퇴진’보다 ‘종북주의자’가 정치적으로 휘발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염 추기경의 입장 변화는 교황 알현과 떨어뜨려 생각하기가 어렵다. 교황의 휴머니즘이 한국의 강고한 반공주의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교황 방한에 기대할 것과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
 
이처럼 교황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이 국민국가 내의 법이 지닌 한계와 모순을 이겨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다보니 교황 방한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특히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기로 하자, 세월호 특별법 입법 등 진상규명에 보다 큰 힘이 실릴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섞인 예상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일례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한상봉 주필은 ‘박근혜 정부의 패착’이라는 글을 통해 “한국 교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교황이 시복식 중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장에 직면할 것이고, 그 자리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맞닥뜨린 현재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교황 방한에 대한 이러한 기대는 일면 자연스럽기도 하다. 유가족들은 수사권을 지닌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기존의 사법체계를 흔들 수도 있다며 유가족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이 단식 농성을 폄훼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유가족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수많은 사상자를 만든 끔찍한 참사의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유가족들은 거리에서 오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황 방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법도 하다. 이전의 교황 알현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국민국가의 법이 지닌 한계와 모순을 넘어서 교황의 휴머니즘이 발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이러한 기대는 누구보다 유가족들에게 절실할 것이다.
 
하지만 교황 방한에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기대하기 어려운 것 또한 분명하다. 교황이 시복식 중에 유가족들의 농성장을 발견하고 차에서 내려 유가족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황이 그 자리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함께 외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이전에 그러했듯이, 교황은 유가족들을 안고 위로하는 기도를 하겠지만 해당 국가의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 교황의 휴머니즘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국민국가의 정부를 직접적으로 대적했던 적은 없었다.
 
도리어 장밋빛 기대와 반대로 교황 방한이 너무 큰 위로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것을 조심해야 한다. 교황의 방한 중에 벌어질 행사가 주는 스펙타클을 통해 그간 힘들게 싸워온 유가족들이 위로를 받은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면, 교황 방한은 진상규명의 계기가 아니라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결말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방한 첫날 교황과 만날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하는 보도는 이러한 우려를 키운다.
 
교황 방한 이후의 한국 가톨릭교회가 풀어야 할 숙제
 
이례적으로 소탈하고 사회개혁적인 교황의 방한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교황 방한에 너무 많은 관심이 쏠리다보면 생길 문제도 적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교황 방한 자체보다는 교황 방한 이후에 대해 고민할 것이 더 많아 보인다. 교황 방한 이후에도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이 지역에서 나름의 역할을 계속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는 교황의 방한을 통해 스스로 살펴볼 수 있을 숙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한국 가톨릭교회의 쇄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염 추기경이 유가족들의 방문을 받아들여 교황과 만남을 주선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과의 면담은 염 추기경이 단식 농성장에 찾아가서 성사된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의 방문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염 추기경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미사를 드리는 것은 여태껏 단 한 번에 불과했다. 이러한 태도는 유가족들의 고통에 연대한다고 말하기에 너무도 소극적이다. 일선의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농성하는 유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모습과 사뭇 대조적인 태도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둔 10일 오후 광화문 인근 거리에 교황 시복식 미사와 관련해 교통 통제를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또한, 가톨릭 사회운동 내부의 정리도 필요해 보인다.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농성장에는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성직자들이 동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대한문 앞에서는 평신도를 중심으로 하는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미사를 열고 있다. 평신도운동을 둘러싼 입장차와 미사라는 형식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각각 다른 방식의 연대를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2008년의 촛불시위 이후에 가톨릭 사회운동이 개인들의 자율적인 결합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산발적인 모임들끼리 입장을 공유하지 못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소명
 
교황 방한을 앞두고 교황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높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이 프란치스코 교황 한 사람에 대해서만 머물고 말지도 모른다. 교황이 오고 간 자리에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부조리를 호소하려는 사람들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바티칸으로 날아갔던 것은 사실 그 지역의 가톨릭교회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교황이 직접 온다. 그가 알릴 기쁜 소식(福音)이 무엇일지 기대된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곳에서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들은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준비할 소명 또한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으며, 그들이 곧 한국의 가톨릭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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