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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추모 및 재조명 학술회의’ 열려

 

‘조용수, 반세기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다’
진주에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추모 및 재조명 학술회의’ 열려
 
 
2012년 12월 12일 (수) 19:00:14 이계환 기자 khlee@tongilnews.com
 

 

   
▲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51주기를 맞아 ‘추모 및 재조명 학술회의’가 11일 오후 고인의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남강의 푸른 물보다 더 푸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조용수가 반세기만에 고향 진주에 돌아왔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51주기를 맞아 ‘추모 및 재조명 학술회의’가 민족일보기념사업회 및 민족문제연구소 주최와 민족문제연구소진주지회 및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주유족회 주관으로 11일 오후 고인의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에서 열렸다.

원희복,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에 대해 문제 제기

 

   
▲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가 ‘18대 대통령 선거와 민족일보 사건의 의미’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날 학술회의는 오길석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가 ‘18대 대통령 선거와 민족일보 사건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했다.

원 기자는 민족일보 사건의 의미를 언론사적 의미와 정치·사회적 의미로 나눠 분석을 했는데, 전자의 경우 “박정희가 5.16쿠데타의 첫 희생양으로 언론인 조용수 사장을 선택했다”면서 “근대적 신문인 한성순보 이후 지금까지 우리 언론사에서 일제시대 때 필화를 겪거나 정간 폐간은 됐을망정 또한 해방공간에서 신문사 관계자를 체포해 징역을 살게 했어도 발행인이 사망한 경우가 없다”고 상기시켰다.

후자와 관련 “박정희가 왜 조용수를 겨냥했을까”하고 묻고는 “바로 자신의 사상적 문제를 증명하고, 미국으로부터 쿠데타의 정당성을 입증받기 위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원 기자는 민족일보 사건과 12월 대선과의 관계에서는 “이번 대선에는 민족일보 사건을 조작하고 조용수 사장을 죽인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나왔다”면서 “이는 참 공교로운 운명”이라고 지적했다.

원 기자는 “박근혜 씨를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집권 여당 대권 주자의 상식과 역사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의 민주화에 대한 역사인식, 가족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강정구 “조용수의 뜻은 평화통일 대통령만들기”

이어, 토론자들의 토론이 진행됐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는 ‘조용수 선생과 새 시대 과제 : 평화통일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어떤 분을 기린다는 것은 그분의 뜻과 얼을 기리는 것”이라면서 “조용수 사장이 오늘 이 자리에 온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질문하면서 문제를 풀어 나갔다.

강 전 교수는 현시대를 “미국이 망하고 중국이 흥하는 시대인데, 미국이 망하지 않기 위해 중국을 대상으로 한 신냉전을 만드는 시대”로 규정하고는, 동시에 “남과 북이 자주적으로 힘을 합치면 통일의 새로운 적기를 마련할 수 있는 시대”로도 규정했다.

이 같은 시대규정 인식 하에 강 전 교수는 조 사장이 살아 있어 이 자리에 와 실천을 한다면 “첫째 이번 대선에서 평화통일 대통령만들기, 둘째 정전협정 60주년인 2013년을 평화협정 원년으로 만들 것, 셋째 한일군사협정과 군사동맹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대화 “4월혁명 통해 진보와 혁신 성향 발산돼”

또 다른 토론자인 정대화 상지대학교 교수는 ‘민족일보 조용수 선생의 삶’이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조용수의 삶을 변화와 혁신의 관점에서 짚었다.

정 교수는 “조 사장이 처음부터 진보적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보수적이었다”면서 “그런데 당면한 분단, 독재 등 모순과 접하면서 생각이 변화 발전하지 않았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추론했다.

정 교수는 “조 사장은 우익적 성향과 민단 활동에서 볼 때 자유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 성향이 있었는데 4월혁명을 치면서 혁신운동과 통일운동에 몸담았다”면서 “이는 그가 현실의 모순 속에서 삶을 진보와 혁신으로 이끈 것이다. 사회모순에 부닥친 실천적 지식인의 삶과 부합된다”고 평했다.

조용수의 경우, 인간이 갖고 있는 복잡한 생각 중에서 하나가 4월혁명을 통해 발산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재일동포 이춘웅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일본지회장은 1951년부터 1960년까지 10년간에 걸친 조용수의 일본에서의 운동적 삶을 △조봉암 사형반대 구명운동 △재일동포 북송반대운동 △주일대표부 유태하 공사 추방운동 등으로 나눠 설명한 뒤 “조 사장은 생각만이 아니라 솔선수범해서 행동하고 운동한 분”이라고 평했다.

이외에도 토론자로 나선 최상한 경상대학교 교수는 ‘조용수와 민족일보 그리고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은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을 보는 후배기자의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진주 소재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산학협력관 강당에서 개최된 행사에는 참가자들이 개최지인 진주를 필두로 멀리 서울, 대구, 부산 등지에서 참여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주요 인사로는 학술회의와 추모제 발표자들 외에도 박종철 열사 부친인 박정기 선생, 김병태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 김수업 대구가톨릭대학교 전 총장, 한기명 전민련 전 의장, 장두석 광주민족학교 이사장 등이 참여했으며, 특히 고 양수정 민족일보 편집국장의 아들인 양세양 부산대학교 교수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 학술회의 폐회 후 주요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송기인 신부 “진실화해위에서 첫 번째 망치를 두드린 사건이 바로 조용수 사건”
 

 

   
▲ 학술회의에 앞서 조용수 51주기 추모제가 거행됐다. 추모제 개제 선언 이후 헌작 장면이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날 학술회의에 앞서 조용수 51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조용준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진주에 왔다.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엘 왔다. 그런데 옛날 친구들이 있나 찾아봤는데 못 찾겠다. 그게 세월이 무상하다는 걸 느낀다”면서도 “고인의 출생지인 고향에서 추모제를 하는 게 이뤄져 뜻깊다. 게다가 제가 인사하게 된 것도 감사하다”고 세월의 무상함과 추모제의 고마움을 함께 전했다.
 

 

   
▲ 송기인 신부는 격려사를 통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첫 번째 망치를 두드린 사건이 바로 이 조용수 사건”임을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송기인 신부는 격려사를 통해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을 때 보도연맹 건으로 일찍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얘기를 하며 “조용수처럼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이 이 나라에 100만 명은 된다”면서 “과거사 해결을 완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송 신부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제가 첫 번째 망치를 두드린 사건이 바로 이 조용수 사건”이라면서 “당시 심사위원 모두가 찬성했다”며 2006년 11월 28일 진실화해위원회가 민족일보 사건에 대해 재심 권고 결정을 내린 것을 상기시켰다.

이어진 추모사에서 강창덕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은 “우리가 서대문형무소에 감금당했을 때 사회당 소속인 나는 7년 징역을 받았고 민족일보 사장인 당신은 사형을 선고받았다”면서 “하지만 수감된 우리는 당신이 그렇게 유명을 달리 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형무소 생활을 회고했다.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은 “4.19혁명 공간에서 민자통 활동을 하면서 조용수와 자주 만났다”고 회고하면서 “억울한 죽음이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가 나서 원을 풀었지만 아직 일부분일 뿐”이라며 아쉬워했다.

이철 전 의원은 “소위 인혁당 민청학련 사건의 한 주역으로써 죽음을 항상 머리맡에 두고 서대문에서 인고의 세월을 살았던 애송이 청년이었던 이철이가 이제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고 위엄을 이어받고자, 선생의 고향이자 이 못난 젊은이의 고향인 이곳 진주에서 결의를 다지고자 모였다”고 추모했다.

후배 언론인으로 추모사를 한 남두용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진주지부 위원장은 “남이든 북이든 민족의 분열을 방치하고 평화통일을 저해하는 모든 권력에게 쓴 소리를 마다 지 않았던 선배님의 기개를 기억하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 추모제에서 해원무를 하고 있는 장순향 한양대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날 추모제는 이기동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의 사회로 시작됐으며, 서금성 전 부산.경남와이티엔 회장의 약력보고와 권영란 시인의 추모시 낭독 그리고 장순향 한양대 교수의 해원무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장 입구 로비에는 인혁당 열사들의 사진전시회를 열어 추모 분위기를 돋웠으며, 추모제는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 추모제 후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행사장 입구 로비에는 인혁당 열사들의 사진전시회를 열어 추모 분위기를 돋웠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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