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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갯고둥에 숨은 수만년 자연사 비밀

 
조홍섭 2015. 02. 03
조회수 2104 추천수 0
 

좁은 조간대 사는 이동성 적은 연체동물, 대륙이동 따라 전 세계 분포

한반도 댕가리는 빙하기 끝나자 일본서 제주, 남해 거쳐 서해로 확산

 

da.jpg» 갯고동의 일종인 댕가리의 모습. 서해와 남해 조간대에 널리 분포한다. 사진=원용진 외 <생태학과 진화> 

 
먹을 것 없던 시절 한겨울 아이들을 유혹하던 간식거리에 ‘쪽쪽이 고둥’이 있었다. 함지박에 수북이 담아놓은 이 고둥의 꽁지를 조금 잘라낸 뒤 입 쪽을 세게 빨면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속살이 입에 들어온다.
 

요즘도 유원지에서 파는 이 다슬기 비슷하게 생긴 연체동물의 제 이름은 갯고둥과의 댕가리이다. 그런데 이 조그만 동물에 동아시아 환경의 수만년 변천사를 읽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댕가리의 유전자를 분석해 빙하기 같은 과거 지구 차원의 기후변화가 한반도 주변 해양생물에 어떤 진화적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처음으로 밝힌 연구결과가 나왔다. 
 

호 푸엉타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박사과정생 등 이 대학 연구진은 과학저널 <생태학과 진화>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서·남해와 제주도 해안의 댕가리 디엔에이(DNA)에 나타난 변이가 과거 어떤 사건에서 기원했는지를 추적한 결과를 밝혔다.
 

댕가리-빙하기 해안선.jpg» 마지막 빙하기 때 한반도 주변의 해안선 위치(회색)와 해류 방향(화살표). 왼쪽 도표는 6가지 댕가리 집단별 개체수 변동, 막대는 빙하기 절정기, 맨위 곡선은 해수면 변동을 나타냄. 원용진 외 <생태학과 진화>

 

지구에는 지난 250만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찾아왔다. 수만년의 시간대 걸쳐 생물은 달라진 기후와 지형에 따라 이동과 격리, 번성과 사멸을 거듭했다. 한반도 주변의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반도에 마지막 빙하기가 절정에 이른 때는 2만6000~1만9000년 전이다. 기온은 현재보다 8~13도 해수면 높이는 130m 낮았다. 황해는 당시 모두 육지였고 제주도 남쪽까지 이어졌다. 대한해협은 일본과 육지로 연결됐거나 아주 좁은 운하 형태였다.

 

빙하기가 절정을 지나 급속하게 기온이 오르자 바닷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길어진 해안선을 따라 갯고둥이 서식지를 늘려 갔다.

 

da2.jpg» 서해와 남해의 수심. 빙하기 때는 현재보다 100m 이상 해수면이 낮았기 때문에 온도가 낮아지면서 해안선은 차츰 제주도 남쪽으로 후퇴했고 댕가리의 서식지도 이에 따라 변화했다. 그림=원용진 외 <생태학과 진화>

 

댕가리(Batillaria attramentaria)는 갯벌이나 모래밭, 조간대의 바위웅덩이에 서식하며 서·남해는 물론 일본과 중국 동부에 널리 분포한다. 몸길이가 2~3㎝인 이 작은 갯가 생물은 멀리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붙박여 산다.
 

많은 해양생물은 알에서 유생이 태어나면 해류를 타고 멀리 떠다니다가 정착해 성체가 되지만 댕가리는 유생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 따라서 태어난 곳에 주로 머물며 조간대의 좁은 지역에만 서식하기 때문에 해안선 변동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연구진은 지난 빙하기 이후 해안선의 변화에 따라 댕가리의 분포와 유전적 분화가 어떻게 이뤄졌으며 개체수가 얼마나 불어났는지 등을 유전분석을 통해 조사했다. 논문의 교신 저자인 원용진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연구결과를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해안가에 서식하는 해양 무척추동물인 갯고둥류의 댕가리 종은 마지막 빙하기의 절정기(2만6000~1만9000년 전) 이후 개체수가 역사적으로 급격히 증가해왔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서해를 비롯한 동아시아 주변 해역은 수심이 얕은 대륙붕 지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된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해역은 빙하기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고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는 해침 시기에 극심한 해안선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해침에 따라 육지에 붙어 있던 제주도가 섬으로 떨어지고 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이동하면서 서해와 남해와 해안선이 확장되어 들어오게 되는데, 이러한 고해양학적 변화와 시기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시간 순서가 이번 연구 결과 밝혀진 해양동물 댕가리 종의 해역별 분화와 개체수 증가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반도 주변의 댕가리는 빙하기 시기에 남방에 존재했을 조상집단이 북상하면서 제주도에 정착하게 된 후 그 중 일부 집단이 다시 서해와 남해로 갈라져 가며 서식지를 확장해 나갔는데, 이러한 서식지 확장과 동시에 개체수가 10배 이상 증가하는 변동을 겪은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이처럼 갯고둥과의 연체동물은 이동능력이 적어 해안선 변화의 지표 구실을 하지만 동아시아뿐 아니라 동남아와 호주, 그리고 중앙아메리카까지 널리 분포한다. 이동이 어려운 이들이 어떻게 전 세계에 걸쳐 분포하게 됐을까.
 

오자와 토모오 일본 사이버대 동물학자 등은 2009년 세계의 갯고둥 화석과 유전분석 결과를 토대로 이들이 호주, 남아메리카, 남극, 인도, 아프리카 등이 하나로 붙어있던 초대륙 곤드와나가 분열되면서 분포지가 나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오자와_댕가리.jpg» 갯고동과 생물의 세계 분포. 과거 초대륙 곤드와나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이 있다. 그림=오자와 외 (2009).

 

2500만년 전 호주와 동남아 지판이 충돌해 호주의 갯고둥이 아시아로 퍼졌고, 남아메리카의 갯고둥은 310만년 전 파나마 해협이 막혀 남·북아메리카가 이어지면서 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하게 됐다는 이론이다. 원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동아시아에는 이 갯고둥과에 속하는 Batillaria 속에 4종 알려져 있습니다. 화석 기록도 비교적 연구가 많이 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에는 마이오세 후기부터 이 그룹에 속하는 종들이 보고되고 있는데, 이들의 조상이 열대 기원의 남반구 호주 지역에서 북쪽으로 이동하여 점차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호주와 뉴질랜드 주변에는 동아시아 갯고둥과 종들과 공통조상을 공유하는 종들이 살고 있습니다. 갯고둥과의 조상들은 아주 먼 과거에 테티스 해(Tethys Seaway)를 따라 이동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에 따라 동쪽으로는 서태평양 연안까지 도달해서 현재의 갯고둥과 종들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쪽으로는 곤드와나 대륙이 갈라지면서 형성된 바다를 따라 오늘날 파나마 지역에까지 뻗어나간 것으로 확인됩니다. 흥미롭게도 중간에 해당하는 유럽에는 과거 조상의 화석은 발견되나 현재는 갯고둥과 계보들이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남아의 댕가리는 쿠로시오 난류를 따라 일본에 왔고 해류의 북쪽 가지인 쓰시마 난류를 타고 동해에 진출했으나 빙하기 때 동해가 내해가 되면서 고립돼 유전적으로 분화했다. 이번 연구는 쓰시마 난류를 타고 한반도 근해로 퍼진 댕가리가 제주와 남해, 서해로 차례로 확산한 과정을 규명한 것이다.
 

원 교수는 후속연구의 과제로  “이번 연구에선 핵 속의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약 6만년 전의 기간만을 들여다 보았지만 앞으로 핵유전자 좌위의 디엔에이로 분석대상을 넓히면 그 이전 빙하기 때의 사건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huong-Thao Ho, Ye-Seul Kwan, Boa Kim & Yong-Jin Won, Postglacial range shift and demographic expansion of the marine intertidal snail Batillaria attramentaria, Ecology and Evolution, doi: 10.1002/ece3.1374.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002/ece3.1374/abstract
 

■ 이 논문과 관련해 원용진 교수가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이메일 전문
 
-연구 대상 생물인 Batillaria attramentaria를 댕가리라고 하셨는데요. 국내 수산 관련 자료에서는 학명이 B. cumingii로 좀 다르더군요.

  
=우리말로 댕가리 종은 Batillaria attramentaria 가 공식 학명입니다. Batillaria cumingi 는 이명(異名: synonym) 으로서 댕가리 종에 붙여진 다른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에 연구자들에 따라 한 종에 대해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서 사용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 누가 제일 먼저 그 종에 대해 학술적으로 기록을 남겼냐는 기준(선취권) 따라 나중에 해당 분류군 전문가들이 다시 재정립을 진행합니다. 한동안 댕가리는 B. cumingi로 사용하던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식 학명으로 B. attramentari가 채택되었습니다. 
 

댕가리는 연체동물문(Mollusca) 복족강(Gastropoda) 갯고둥과(Batillaridae) Batillaria 속에 속하는 종입니다. 연안의 조간대 해안을 따라 한국, 일본, 중국 등에 널리 분포하는 종입니다. 주로 갯벌이나 모래사장 그리고 조간대 바위 웅덩이 틈과 같이 얕은 물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모양은 민물 다슬기와 같은 원뿔모양이며, 백색과 흑색 띠가 교대로 원뿔 둘레를 감아 올라가는 무늬패턴을 나타냅니다. 몸길이는 작고 대략 2~3㎝ 길이, 폭 1㎝ 미만의 크기입니다. 동아시아에는 이 갯고둥과에 속하는 Batillaria  속에 4종 알려져 있습니다. 화석 기록도 비교적 연구가 많이 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에는 마이오세 후기부터 이 그룹에 속하는 종들이 보고되고 있는데, 이들의 조상이 열대 기원의 남반구 호주 지역에서 북쪽으로 이동하여 점차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호주와 뉴질랜드 주변에는 동아시아 갯고둥과 종들과 공통조상을 공유하는 종들이 살고 있습니다. 갯고둥과의 조상은 아주 먼 과거에 테티스 해(Tethys Seaway)를 따라 이동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에 따라 동쪽으로는 서태평양 연안까지 도달해서 현재의 갯고둥과 종들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쪽으로는 곤드와나 대륙이 갈라지면서 형성된 바다를 따라 오늘날 파나마 지역에까지 뻗어나간 것으로 확인됩니다. 흥미롭게도 중간에 해당하는 유럽에는 과거 조상의 화석은 발견되나 현재는 갯고둥과 계보들이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체발생상 댕가리의 발생은 직접발생 방식을 따릅니다. 해양생물들에서 이러한 발생방식은 수정란이 성체로 발달해 가는 과정에서 유생형 형질의 일부 혹은 전체가 생략되고 성체형 형질이 바로 발현되는 발생 양식입니다. 직접발생의 반대는 간접발생이라고 합니다. 유생시기가 상대적으로 길고, 성체와 모양이 뚜렷하게 다르며 변태에 의해 성체로 성장해갑니다. 해양생물들은 대체로 간접발생하는 종류들이 많은 편입니다. 유생은 배(胚)와 성체(成體)의 중간시기에 해당하는데, 배와는 달리 자유생활을 하고 성체와 달리 생식기관이 미발달된 상태입니다. 직접발생에서는 성체와 달리 몸이 작을 뿐인데, 이런 경우 수정된 장소 주변에서 성체가 될 때까지 몸이 자라는 과정을 거쳐 서식지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자유생활을 하는 유생시기가 길면, 해류를 따라 먼 장소로 이동하는 확률이 높아지지만, 반대로 직접발생을 하는 종류들을 이동성이 낮아지면서 서로 떨어진 집단들 간에 유전적인 분화도가 높아집니다. 이 경우 집단간 유전자 흐름이 적다고 말합니다. 문헌상 댕가리의 발생에 대해서 세밀한 연구 논문들은 매우 적은 편이라서, 구체적인 설명은 저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 이 연구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과거 빙하기와 같은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가 한반도 주변 해양생물들에 진화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데에 의미가 큽니다. 특히, 현재 살아있는 생물 집단들이 간직한 DNA 변이 정보를 분석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의 연대측정을 통해 과거에 있었던 진화적 변화의 양상과 발생 시기를 재구성했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댕가리 종을 대상으로 연구한 본 연구에서 의미하는 진화적 변화는 한 종이 서로 다른 두 종으로 나뉘는 종 분화(speciation) 수준의 큰 변화는 아니고, 종 분화 과정의 중간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역의 구분에 따른 한 종 내 집단분화, 그리고 빙하기 기후변화와 연결된 해수면 변동과 지역 해류의 변동과 같은 고해양학적 변화의 영향을 받은 서식지 확장 및 해수온도 변화에 반응하는 개체수 증감 같은 사건들을 포함합니다. 
 
=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해안가에 서식하는 해양무척추동물인 갯고둥류의 댕가리 종은 최후최대빙하기(Last Glacial Maximum: 2만6000~1만9000년 전) 이후 개체수가 역사적으로 급격히 증가해왔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서해를 비롯한 동아시아 주변 해역은 수심이 얕은 대륙붕 지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된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해역은 빙하기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고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는 해침의 시기에 극심한 해안선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해침에 따라 육지에 붙어 있던 제주도가 섬으로 떨어지고 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이동하면서 서해와 남해와 해안선이 확장되어 들어오게 되는데, 이러한 고해양학적 변화와 시기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시간 순서가 이번 연구 결과 밝혀진 해양동물 댕가리 종의 해역별 분화와 개체수 증가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반도 주변의 댕가리는 빙하기 시기에 남방에 존재했을 조상집단이 북상하면서 제주도에 정착하게 된 후 그 중 일부 집단이 다시 서해와 남해로 갈라져 가며 서식지를 확장해 나갔는데, 이러한 서식지 확장과 동시에 개체수가 10배 이상 증가하는 변동을 겪은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한국의 댕가리 개체수 증가 양상은 일본 주변의 광범위한 집단들에서도 매우 일치된 결과였는데, 이 시기 동아시아 전역에서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고 서식지가 확장되면서 댕가리가 생존하기에 좀 더 양호한 환경이 조성된 결과라고 해석됩니다. 동아시아 해양생물들을 통틀어서 본 연구 이전에는 마지막 빙하기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본 연구결과가 이러한 과학적 질문에 대한 최초의 보고라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가장 최근의 빙하기 영향을 댕가리 종이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이 생물이 갖고 있는 독특한 발생양식과 서식환경에 따른 것으로 해석됩니다. 댕가리 종은 직접발생으로 개체발생을 하기 때문에 태어난 곳 근처에서 성체가 되고 성체 또한 이동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떨어진 집단들 간에는 유전적 분화가 축적되어 갈 가능성이 큽니다. 또 해안가에 서식하고 있는 폭도 조간대 좁은 지역에 한정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해침에 따른 해안선 변동이 있을 경우 해안선 위치를 따라 이동해 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해안선 변동의 역사를 잘 반영하는 생물이었다고 추론됩니다. 지금의 서해는 과거 빙하기 시기엔 존재하지 않았고, 이후 기후가 온난화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이렇게 해서 새롭게 형성된 서해안은 댕가리 종에겐 매우 광활한 서식지 확장이 되었을 거고 개체수도 그에 따라 증가했을 것입니다. 
 
한편 빙하기는 동해가 주변 바다로부터 고립되는 시기이기도 했는데, 필리핀 남부에서 북상하는 쿠로시오 난류가 동중국해에서 갈라져 대한해협을 따라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길이 해수면 하강에 의해 형성된 육로에 의해 막히면서 쿠로시오 난류권에 놓인 남방 계열의 댕가리와 지리적으로 고립되는 시기를 갖게 됩니다. 동아시아 전체에서 댕가리는 크게 일본 북쪽의 북방계(쓰시마 계열)와 나머지 남쪽의 남방계(쿠로시오 계열)로 구분되어 있는데, 본 연구에서 이 두 계보가 갈라진 시기가 약 40만 년 전으로 처음으로 측정되었습니다. 거시적으로 살펴봤을 때 남방기원의 댕가리 종이 북상하면서 동해에 정착한 후 과거 여러 번의 빙하기 영향을 받아 나머지 해역과 고립되어 지리적 분화가 촉진되었음을 시사하는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동아시아와 한반도 주변 해양생물 전반의 과거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최근 과거 해양생물들에서 일어났을 법한 사건들의 개연성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생물들의 특성이 다르므로 동일한 역사적 환경변화에 대한 개별 종들의 진화적 반응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댕가리와 같은 생물학적 특성이 있는 해양생물들은 그에 상응하는 진화적 변화의 사건들이 있었음을 시사했다고 봅니다. 현재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해양생물들 가운데 일부지만 그들의 지리적 분포와 유전적 다양성의 기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 연구라고 생각됩니다.  

 

-연구 방법론이 궁금합니다.
 
=본 연구에서는 댕가리 집단 샘플로부터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인 COI유전자 DNA 서열 정보를 얻은 후 이 자료를 분기집단유전학(divergence population genetics) 분석을 통해 과거 제주도, 남해, 서해 해역 사이에서 일어났던 종내 분기역사를 재구성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석방법을 통해 한국 댕가리 종의 과거 조상집단과 현재 집단들 사이에서 일어난 분기연대와 개체수를 측정할 수 있었고 그 크기를 비교해서 증감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방법과 병행하여, 동아시아 지역별 그룹들을 6그룹(제주도 남부, 제주도 북부, 서해, 남해, 일본 북방, 일본 남방)으로 구분해서 각 지역에서 일어났던 개체수 증감의 역사를 베이시안 스카이라인 플롯(Bayesian Skyline Plot) 방법으로 분석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분석 방법은 개체수 증가의 양상과 그 시기가 상호 일치하는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두 방법은 모델 기반 집단유전학연구 방법으로 최근에 개발되었습니다. 복잡한 생물들의 과거 사건들을 비교적 단순한 모형(models)들의 틀로 해석하는 접근법인데, 샘플들의 DNA 자료에 담긴 집단변이 정보로부터 선택한 모형에 내재되어 있는 주요 파라미터 값(예를 들어 개체수의 크기, 분기연대, 집단 간 유전자 흐름 정도 등)들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후확률적 분포(posterior probability distribution) 추론하는 방법들입니다. 2000년대 이전 과거에는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던 복잡한 진화적 사건들에 대한 정량적 추정이 집단유전학 이론정립, 모델개발, 컴퓨터 시뮬레이션 융합을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 댕가리가 일본에서는 구로시오와 쓰시마 집단으로 나뉘고, 쓰시마 집단은 다시 한반도 근해에서 황해, 남해, 제주 북부, 제주 남부 등으로 형질이 분화했다고 이해했는데요. 일본에서 분화가 일어난 40만년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반도 근해 집단의 지리적 형질 차이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한반도 해안이 다 연결돼 있는데, 경계지역에서 잡종화는 일어나지 않는지요.
 
=본 연구의 대상인 댕가리는 한국과 일본 모두 한 종입니다. 다만 지리적인 구역에 따라 서로 종내 차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령 쿠로시오와 쓰시마 집단은 일본의 북쪽과 남쪽에 지리적으로 구분되어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에 따른 것으로 보여지며, 앞서 설명했듯이 빙하기 해수면이 하강했을 시기 쿠로시오 난류의 한 지류인 쓰시마해류가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대한해협에서 막히면서 동해쪽 그룹인 쓰시마 집단이 분리되어 나타난 유전적 차이로 해석됩니다. 물론 해류 한가지 영향만으로 두 그룹이 나뉘었다고 보는 것은 아니고요, 이 종의 이동 능력이 매우 낮기 때문에 거시적 지리 그룹 간에는 연결성이 약해지면서 차이가 축적되어 갔을 것이고, 특히 빙하기 시기는 지리적 고립을 더욱 촉진했을(reinforce)거라고 봅니다. 앞서도 설명드렸듯이 유생시기가 일부 생략된 직접 발생하는 댕가리의 경우 먼 거리 이동이 매우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역 집단들 간에도 유전적 분화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해안선이 연결되어 있는 서해와 남해 간에도 서로 유전적 타입들의 빈도가 달라지는 분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 집단 사이에 유전적 타입의 빈도가 달라지는 것은 서로 왕래가 적다는 것의 다른 표현입니다. 쉽게 설명드리면, ABO혈액형 빈도가 집단들 간에 다를 수 있는데, 이 경우도 유전적 분화가 있다고 표현합니다. 즉 지리적 형질 차이는 사실 없지만, 집단유전학에서는 단순히 빈도가 달라도 분화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거시적으로 40만 년 전에 대표적인 두 계보 사이의 분리가 있는 것으로 계산이 되었는데요, 저는 이 시기를 전후로 해서 남방기원의 댕가리가 동해 쪽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해간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을 살펴보면 남쪽 쿠로시오 타입의 집단들에서 다양성이 훨씬 높게 관찰됩니다. 이는 과거에 북쪽이 아닌 남쪽에 조상집단들이 대거 서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실제로 화석자료들과 댕가리과 계통수(Ozawa et al 2009 Zoologica Scripta, 38, 5, pp 503-525) 연구에서 동아시아 갯고둥과 종들이 남방기원이라는 밝혀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잡종화(hybridization)는 서로 다른 두 종이 교배하여 자손을 낳을 때 이런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나의 종인 동아시아 댕가리 종은 그래서 이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유전적으로 독특한 집단 간에도 교배가 일어나며, 그에 따른 유전적 재조합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경우 백인과 흑인 사이처럼 말이죠.  제주도 남부는 특이하게 미토콘드리아 COI 유전자 타입에 쿠로시오 타입이 일부 관찰됩니다. 이는 제주도가 한반도 다른 지역에 비해 좀더 남쪽에 위치한 결과 과거 쿠로시오 타입의 개체들의 유입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빙하기 시기 제주도 남쪽에 퇴각해 있던 해안가로 규슈 지역에 서식했을 개체들이 유입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아쉽게도 모계유전을 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조사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유전적 그룹 간에 교배가 된 타입은 식별할 수 없었습니다 (A 아니면 B로 판별되지 AB 타입은 없습니다). 추후 핵유전자를 사용하여 조사를 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빙기와 간빙기는 250만년 전부터 시작돼 여러 차례 되풀이됐는데요. 이 연구에서와 같은 분화가 그때마다 일어난 건가요, 아니면 특정 시점에만 일어난 건가요.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먼저 간단히 말씀드리면,  현재의 자료로는 6 만 년 전 과거 이상에 대한 의미 있는 개체수 크기 정보는 추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를 들여다볼 창이 폭이 매우 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데이터의 해상력이 낮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먼 과거의 역사와 사건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다수의 핵유전자 좌위에서 DNA 서열정보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진화유전학자들은 과거를 들여다 보는 창을 늘리기 위해서 보다 많은 데이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 가운데는 좀 더 많은 수의 유전자 DNA 서열정보를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LGM(2만6천~1만9천년 전) 이후의 시기에 폭발적 개체수 증가가 측정되었는데요, 본 연구에 사용된 미토콘드리아 DNA 자료로는 6만 년 이전의 과거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추정해보면, 아마도 LGM 이전의 빙하기는 서식지의 감소와 추운 날씨로 인해 개체수가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개체수가 줄게 되면 병목효과(bottleneck effect)가 일어나서 그 이전에 조상들로부터 유전된 유전적 변이의 상당량이 소실됩니다. 멸종위기종이 이런 특성이 있는데,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낮은 이유가 바로 이런 병목현상과 같은 개체수 감소입니다. 그래서 다시 과거를 조심스럽게 재구성을 해보면, 과거 여러 번의 빙하기 시기를 거치면서 상당한 과거의 유전적 변이가 소실돼서 6만 년 이전의 과거를 알려줄 정보가 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는 없다고 보입니다. 그와 대비되어, 병목 이후 간빙기 온난화에 따른 개체수가 10배 이상 증가하는 사건이 있게 되면(우리 연구에서 관찰한 LGM 이후 개체수 팽창) 상대적으로 개체수 팽창의 신호가 매우 분명하고 강하게 잡히는 것으로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달리 바라보면, 댕가리 종의 생물학적 특성이 고해양학적 환경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이라고 가정한다면, 먼 과거의 사건들이 남긴 집단유전학적 변이 흔적은 그 이후 중간에 존재했을 빙하기 시기 개체수 감소와 같은 사건들의 영향으로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대적으로 먼 과거의 정보를 추출하려는 방편으로 앞으로 핵유전자 서열정보를 추가하여 분석하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론유전학자의 도움을 받아 여러 번의 빙하기 조건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현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DNA 변이에 영향을 끼칠지를 핵유전자 실험 관측치와 비교해보는 공동연구가 뒷받침되어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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