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없는 독립적인 진상규명을 보장하기에는 불충분하고 미흡한 방안.”

4.16 참사 희생자·실종자 가족대책위가 지난해 11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세월호특별법 합의안’에 대해 내놓은 입장이다. 가족대책위는 당시 여야 합의안을 수용하면서도 여당추천위원이 위원회 인력과 예산에 개입하도록 한 것이 성역 없는 조사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5개월이 지난 현재, 유가족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27일 입법예고한 특별법 시행령안에 대해 유가족은 물론 이석태 특위 위원장까지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시행령이 특위의 시행령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특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과 정부의 합작품이다.

인력부터 줄었다. 특위는 특위 사무처에 125명(120+정무직5)을 요구했으나 시행령은 특위 인력을 정무직 5명(위원장 등 상임위원)을 포함해 정원을 90명으로 줄였다. 특위는 사무처에 3국 1관(진상규명국·안전사회국·지원국·기획행정담당관)을 두자고 했으나 시행령은 기획행정담당관을 기획조정실로 격상시키고 안전사회국과 지원국을 과로 격하시켰다. 예산도 특위가 책정한 192억 원에서 130억 정도로 감축될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과 인력 조정은 애초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현재 청와대 정무특보로 활동 중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 특위를 ‘세금도둑’이라고 비난했다. 세금도둑 발언의 근거는 특위 조직 구성안이었다. 이 내부 문서는 여당 추천 조대환 특위 부위원장의 지시로 해수부 공무원이 작성했고 조 부위원장이 김 의원에게 전달했다. 협의 없는 단독행동이었다. 

   
▲ 세월호 특위가 제안한 시행령안과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시행령안 사이의 인력규모 및 인력구성 비교. 세월호 특위 제공.
 

“기획조정실장이 운영하는 세월호 특별조사위”

정부 시행령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기획조정실이다. 공무원이 임명될 기획조정실장은 위원회 업무를 종합·조정하고 각 소위원회 업무 분야를 종합 기획·조정할 수 있는 기능과 권한이 주어진다. 나아가 기획조정실장에게는 조사신청의 접수 및 처리를 총괄할 기능과 권한까지 주어진다. 

권영빈 특위 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이 29일 기자회견에서 “기획조정실장이 운영하는 특별조사위”라고 비판한 이유다. 파견 공무원인 기획조정실장의 권한이 워낙 막강해 특위 위원장과 각 소위원회 위원장인 상임위원의 권한이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위원회 업무와 사무를 구분하자는 조항도 삭제됐다. 특위는 각 소위원회 위원장이 해당 국 업무를 지휘 및 감독하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업무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상호 배제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삭제되면서 공무원들이 대거 포진한 사무부서가 특위 업무 기능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기획조정실장 외에도 주요 요직에 공무원들이 배정된다. 기획총괄담당관, 운영지원담당관, 조사1과장, 안전사회과장 등등. 특위는 파견 공무원 대 민간비율을 50대 70으로 설정해 독립적인 조사활동을 보장받으려 했으나 시행령은 이 비율을 42:43으로 구성했다. 비서, 기사업무를 수행하는 민간인원을 제외하면 42:39로 공무원 숫자가 더 많다. 실무를 맡을 6~7급 공무원 중 공무원은 6급, 민간 인원은 7급으로 민간인원을 하급직위로 배치시킨 것도 문제다.

정부가 파견한 공무원들이 주도하는 조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특히 공무원 파견인력 중 해수부가 가장 많은 9명(21.4%)이다. 해경이 소속된 국민안전처는 8명(19.0%)이다. 세월호 참사의 주무부서인 해수부와 구조를 담당한 해경이 속한 국민안전처 공무원들에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맡기는 셈이다.

   
▲ 세월호 특위가 제안한 시행령안과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시행령안 사이의 조직구성 비교. 세월호 특위 제공.
 

정부, 새누리당 추천 위원의 제안을 ‘초이스’했다?

정부의 시행령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 추천 특위 위원 5명은 지난 2월 12일 특위 전체위원 간담회에서 특위의 시행령안을 표결할 당시 이에 반대해 퇴장했다. 그리고 2월 14일 정부에 별도의 시행령안과 예산 관련 의견을 전달했다.

이 소수안의 내용 다수가 정부 시행령에 포함됐다. 사무차장을 신설하자는 의견은 ‘기획조정실장’으로 반영됐고, 실무자 중심으로 진상조사 인력을 확충하자는 의견은 ‘3국의 1국 2과 축소’로 이어졌다. 특위 독립성의 핵심 조항인 ‘업무·사무 분리’ 삭제도 여당 추천 위원들 의견이었다.

이석태 위원장은 29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우리 안(특위)과 5인 소수안이 있는데 5인 소수안을 ‘초이스’(선택)했다고 표현했다”고 밝혔다. 3월 10일 정부와 특위 위원들 간의 첫 비공식 협의 자리에서 정부 쪽 인사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 이 위원장은 “정부가 공식 기구인 특위 안과 소수의견을 동등하게 보고 선택했다는 표현을 썼다는 것 자체가 정부가 특위를 뭘로 보는지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당 위원들은 세월호 특위가 운영되는 내내 특위를 안팎에서 흔들었다. 조대환 부위원장은 공무원에 내부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거나 파견 공무원들의 철수를 지시하는 등 공무원들을 기획·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황전원 위원은 특위 설립준비단 해체를 주장하고, 반대 기자회견을 하면서 분란을 만들어냈고 차기환 위원 등은 특위 회의 중에 반대 의견을 내거나 퇴장하는 식으로 발목을 잡는 역할을 했다.

   
▲ 30일 오후 4·16가족협의회,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농성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세월호 특별법까지 무시한 정부 시행령?

정부 시행령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세월호 특별법의 입법목적과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점이다. 특별법 제1조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해·재난의 에방과 대응방안을 수립하여 안전한 사회를 건설·확립하며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 제5조는 세월호 특위의 조사대상을 ‘세월호 참사의 원인규명 및 구조구난 작업에 대한 정부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라고 한정짓고 있다. 조사대상을 정부조사 결과 또는 자료에 한정시켜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기존 정부조사에 면죄를 부여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안전사회의 범위도 축소됐다. 특별법 5조는 특위 업무로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 마련 등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을 제시한다. 하지만 시행령 6조에서는 그 업무가 ‘4.16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재해·재난 예방’ ‘4.16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고재발 방지’ 등으로, 즉 세월호 참사에 관한 사항으로 축소됐다.

박종운 세월호 특위 상임위원이 시행령의 국무회의 통과 이후 “위법 무효 확인소송 및 각종 여러 가지 법적 절차들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30일 오후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16시간 농성을 선포했다.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단식과 농성을 반복했던 유가족들에게 또다시 잔인한 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