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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에 한 푼도 안됩니다"

눈발 속에서 진행된 국회 앞 '제주해군기지 예산삭감 촉구 백배'

12.12.29 22:04l최종 업데이트 12.12.29 22:06l
최경준(235jun)

 

 

제주해군기지 건설저지 전국대책위 등 시민단체 회원과 제주강정마을 주민들은 지난 24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제주해군기지 사업 예산 전액삭감을 호소하는 기자회견과 백배를 드렸다. (사진 출처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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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국회 정문 앞, '제주 사람들'이 팔과 무릎을 차가운 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그들의 머리와 어깨와 등 위로 흰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가 눈을 털고 일어선 '제주 사람들'은 다시 국회의사당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엎드렸다. 다시 흰 눈이 그들을 덮었고, 다시 그들은 일어섰다. 눈 구경하기 힘들다던 '제주 사람들'은 그렇게 국회 앞에서 눈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지난 24일부터 시작된 '제주해군기지 사업 예산 전액삭감 호소 백배 릴레이' 행사가 엄동설한의 날씨 속에서 엿새째를 맞았다. 지난 5년 8개월간, 2119일 동안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는 정부와 해군에 저항해온 제주 강정주민들에게는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그러나 새해예산안을 놓고 여야의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이들의 마음도 다급해졌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저지 전국대책위 등 시민단체 회원 30여 명이 이날 국회 정문 앞에서 제주해군기지 사업 예산 전액삭감을 호소하는 백배를 드린 것도 이 때문이다.

"객관적 검증 없이 사업 예산 한 푼도 배정하면 안돼"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이날 국회 앞에서 백배를 드리기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가 합의한 권고사항이 이행될 때까지 제주해군기지 사업 예산은 단 한 푼도 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지난해 여야 합의로 진행된 국회 예·결산 소위원회 권고사항이 이행되지도 않았는데, 지난 11월 2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새누리당 날치기 통과로 2010억 원 상당의 제주해군기지 사업 예산이 책정됐다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국회 예·결산 소위원회 권고사항'은 지난 2011년 12월 여야가 합의한 '객관적인 설계검증'이다. 당시 국회 예결위는 2012년 해군기지 예산의 대부분을 삭감하면서 정부와 해군에게 "크루즈 선박 입·출항 및 접·이안 안전성 문제를 제3의 기관을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하라고 요구했다. 정부와 해군이 공약했던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의 설계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였다.

실제 총리실 주재로 구성된 기술검증위원회는 '설계오류'를 스스로 인정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해결할 근본적인 설계변경 없이 공사가 강행되어 왔다. 강정주민들과 시민단체는 "해군은 항만구조물 재배치, 항로의 변경, 초강력 예인선 사용 등 공사 중단과 근본적인 재설계 없이 설계를 부분적으로 변경하는 몇 가지 미봉책을 내놓았지만, 이 방식으로 크루즈 선박 입·출항, 접·이안이 가능한 지에 대해서는 전혀 입증된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이를 검증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뮬레이션도 현재까지 실시되지 못했다"며 "따라서 2011년 여야합의가 이행되지 않은 만큼 해군과 정부는 공사강행에 필요한 예산을 요구할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저지 전국대책위 등 시민단체 회원과 제주강정마을 주민들은 지난 24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제주해군기지 사업 예산 전액삭감을 호소하는 기자회견과 백배를 드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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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에 따르면, 기술검증위원회의 설계오류 인정 이후 부분적으로 변경된 설계의 문제점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안전성을 이유로 변경된 크루즈 항로(30도 항로법선)가 천연기념물 421호인 범섬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완충지역)을 관통해 심각한 환경파괴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해군의 부분적인 설계변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5만톤 크루즈선박이 항구 내에서 선회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고 국토해양부가 제시한 기준에도 크게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러한 새로운 쟁점들에 대한 검증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당선인, 제주도민과의 약속 지켜야"

이들은 "박근혜 당선자와 여야 국회의원들은 제주도민들과의 약속을 지켜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에서 "제주도민들이 신뢰할 만한 근본적인 처방이나 객관적인 검증 없이,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하는 해군기지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해군기지 공사예산을 무려 2,000억 이상 책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박근혜 당선자는 대선 기간 동안 제주를 방문하여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을 제가 책임지고 도민들의 뜻에 따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기술적 환경적 결함을 지닌 군항을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책임지고 도민들의 뜻에 따라 추진'하는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미 2011년 여야가 합의하여 '검증 없이 예산 없다'는 기준을 세운 만큼, 국회가 요구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제출된 제주 해군기지 예산안을 전액 삭감해야 마땅하다"며 "다시 한 번 여야의 현명한 선택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저지 전국대책위 등 시민단체 회원과 제주강정마을 주민들은 지난 24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제주해군기지 사업 예산 전액삭감을 호소하는 기자회견과 백배를 드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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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균 강정마을회 회장은 "국민의사를 대변하는 국회는 당리당략을 따지지 말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그러나 새누리당은 그걸 깨뜨리고 (제주해군기지 예산을) 강행처리하고 있고, 민주당은 강력하게 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정현 신부도 "야당측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안타깝다"며 "만약 예산이 통과되면 공사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자칫 (정부와 주민 간에) 긴 싸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무리 예산을 투입하고 공권력을 투입해도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운동은 죽지 않는다"며 "결국은 평화의 깃발이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새 그의 흰 수염에는 더욱 흰 눈이 고드름처럼 달라붙었다.

한편 여야는 새해 예산안에 대해 사실상 큰 틀에서 합의를 한 상태다. 개략적인 합의 내용에 따르면 총지출의 경우 당초 정부가 편성한 342조5천억 원 대비 약 2천억 원 증액된 342조7천억 원선에서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주당이 제주해군기지 예산 2010억원에 대해 전액 삭감을 요구하고 있어 막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오는 31일 본회의를 열고 새해 예산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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