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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집에 사는 잡초 요리사 부부 이야기

 
조현 2015. 05. 26
조회수 556 추천수 0
 

 

 

흔한 것이 귀한 것…잡초와 친하니 잡초처럼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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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옥의 불편함과 잡초를 벗삼아 살아가는 권포근·고진하 부부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대안리. 명봉산 아래 마을에 ‘살기 불편한 집’, ‘불편당’이 있다. 모두가 좀 더 편리하게 살기 위해 도시로 나가고, 무리해서 아파트를 사고, 자동차를 산다. 그런 편리함을 위해 죽도록 돈을 버는 세상에 ‘불편당’이라니.


닳고 닳아 희미한 ‘개조심’이 쓰인 나무 대문으로 들어가니, 산업사회로 접어들기 전 전형적인 농가가 수줍게 앉아 있다. 낡은 기둥들과 흙이 드러난 벽체 옆 장독대 너머로 호랑이가 새끼를 까놓아도 모를 만큼 잡초들이 우거져 있다. ‘도시녀’들에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집임이 틀림없다.


이 집 안주인 권포근(56)씨도 그랬다. 한때 목회를 한 목사이기도 한 남편 고진하(62) 시인이 이사 가자고 해 이 집을 와보고는 역시 시인답게 세상 물정 모르는 남편의 안목에 기함을 했다. 치악산 아래 행구동에 세들어 살던 2층 양옥집에 비하면 낡을 대로 낡아 곳곳이 헐리고 파인 이곳은 ‘귀곡산장’이었다. 살림을 해야 할 안주인으로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단식을 불사하는 남편이었다. 그를 살리는 셈 치고 인심 크게 써서 와준 집이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 남편보다 자신이 더 잘 살게 될 줄이야. 더구나 잡초투성이 이 집 때문에 그는 잡초요리사로 데뷔하기까지 했다.


권씨는 최근 <잡초 레시피>(웜홀 펴냄)란 책을 냈다. 3년간 원주 시내에서 밥집을 할 만큼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그가 이 집 마당과 텃밭과 마을 논두렁밭두렁에서 자란 잡초들을 뜯어 밥상에 올리던 것을 정리해 내놓은 것이다.
권씨는 13년 동안 요가를 해온 요기다. 몸수행을 하다 보니 몸에 대해 예민하다. 그는 식물에 대해서도 남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 남편이 처음 목회한 강원도 홍천 시골에서 밭일을 하면서도 배추, 무, 상추, 가지, 오이나 나무, 풀들과 마치 친구처럼 말을 건네곤 했다. 그는 일찍이 몸으로 시를 쓴 시인이었던 셈이다. 이곳에 와서 장독대 주변과 집 뒤켠에 너무도 많이 자란 잡초를 베어내는 게 급선무였다. 그런데 잡초만 베면 이상하게도 기운이 빠지고, 어깨에 무리가 왔다. 마침내 아파서 드러눕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장을 보러 대형마트에 갔는데, 푸성귀들이 너무나 비싸 빈손으로 돌아왔다. 장독대에 앉아 물끄러미 잡초들을 바라보던 그에게 문득 깨달음이 왔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채소들은 사람이 키우지만, 이 잡초들이야말로 하나님이 키운 채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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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있는 옛 물펌프.

 

그래서 세세히 보니, 대부분이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마을이 친환경 마을이어서 제초제 같은 농약을 치는 일이 거의 없는데다 집안에 자라는 것들은 농약 안전지대니 그야말로 유기농들이었다. 몇걸음 밖 들로 나가보니 가뭄으로 농작물들은 노랗게 타들어가는데, 논밭두렁의 잡초들은 푸른빛을 뽐내며 쑥쑥 자라고 있었다. 그날 바로 개망초, 민들레, 돌미나리 등을 뜯어 와 겉절이도 하고 김치도 담갔다. 잡초 비빔밥, 잡초 샐러드, 토끼풀 튀김을 해 내놓으니, 남편도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고 시인은 탁하던 오줌 색이 맑아졌다며 좋아했다. 심혈관에 좋은 비름, 관절염에 좋은 우슬초, 고혈압에 좋은 환삼덩굴이 뒤뜰에 가면 차고 넘쳤다. 환삼덩굴을 먹은 고 시인의 혈압이 좋아졌다. 권씨가 보기에도 남편의 안색이 달라지고, 쭈글쭈글했던 귀가 쫑긋 펴지는 게 눈에 띄었다. 생인손을 앓던 딸은 마당의 토끼풀을 양념에 버무려 먹고는 감쪽같이 나았다. 재료비 0원으로 매일 보약을 먹는 셈이었다. 사람의 손을 타 약해진 농산물보다 스스로 힘을 키워 강한 생명력을 지닌 보약들이 마당과 들엔 지천이었다.

 


잡초요리사 권포근씨·시인 고진하씨

이 부부가 헌집의 불편함을 벗삼아
하나하나 멋스럽게 꾸며가면서
마당의 잡초를 뜯어먹으며
<잡초 레시피> 출간
불편과 친하니 불행이 멀어지고
근심 걱정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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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서 창밖으로 본 마당.

 

‘흔한 것이 귀한 것이다.’
고 시인은 그 잡초를 보고 이렇게 표현했다. 잡초는 인생 최고의 스승이었다. 가뭄과 같은 역경에 농작물들은 쉽게 죽어나갔지만 잡초들은 달랐다. 질경이는 다른 식물이 살아가지 못하는 길바닥을 서식지로 삼아 살아났다. 개망초, 민들레, 달맞이꽃, 곰보배추 등은 몸을 낮추고 겨울을 이겨냈다.
처음 이 집에 올 때, 겨울이면 외풍이 심하고, 실내에 화장실도 없는 이런 집에서 불편해서 어떻게 살까 하던 근심 걱정도 사라졌다. 잡초와 함께 부부도 잡초처럼 강해져갔다.


특히 전형적인 ‘선비’과인 고 시인도 이 불편당에서 손수 장작을 패고, 진흙을 개어 담에 바르고, 마당을 골랐다. 인도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6년 전에 귀국한 딸을 위해 대문 옆 창고 바닥에 콘크리트를 이겨 붓고 벽을 다듬어 작업실로 개조했다. 노동을 하면서 흐물흐물하던 팔에도 근육이 생겼다. 백면서생 고 시인의 에너지가 머리에서 손발로 내려온 건 장족의 진화였다.
“주로 머리를 쓰는 도시인들은 이기적이 되기 쉽고 제 잘난 맛에 살지만, 노동을 하고 사는 이 마을 이웃들은 가슴이 따뜻하다.”


권씨는 경로당에 가서 마을 어르신들에게 요가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며 마을 사람들과 더욱 친해졌다. 오후에 요가를 가르치려면 몸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점심부터 굶어야 했다. 그런데 요가만 끝내면 어르신들이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선생님, 한잔하세요”라고 권했다. 빈속에 술이 부담스러웠지만, 어르신들과 어울리기 위해 시원스레 들이켰다. 이 마을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착근에 성공할 수 있게 한 생존법도 잡초가 가르쳐준 것이었다.


처음엔 도저히 사람 살 곳으로 보이지 않던 구옥도 ‘고진하 목수’의 손길에 의해 조금씩 틀을 갖추어갔다. 또 남다른 예술적 감각을 지닌 부녀는 조각보로 흉한 곳을 가리고, 멋진 야생화로 장식했다. 그래서 옛것을 싹 쓸어버리고 새로 지은 집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60년의 연륜과 멋을 살렸다.
이 집 살이에 자신감이 생긴 부부는 월세였던 이 집을 2년 전에 샀다. 그래서 하나하나 고쳐가고 있다. 지금도 이 집은 도시인들이 보면 불편하기 그지없다. 밤이면 요강을 들여놓는다. 그러나 그조차 이제 권씨 부부는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본다. ‘한 요강에 오줌까지 섞으니 얼마나 친밀한 가족이냐’는 것이다. 또 요강을 비우면서 오줌 색을 보면 몸 상태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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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로 장식한 부엌 식탁.

 

부부는 이 불편당에서 살면서 그 전에 요가 수행 등으로도 해결되지 못한 많은 문제들이 해소됐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죽음의 걱정도 저절로 사라지더란다. 이제 집 장독대는 잡초를 넣은 된장 고추장 들로 가득 채웠다. 저 양념들에 잡초만 버무리면 반찬 걱정은 없다. 한달에 100만원이면 충분히 살아갈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저 잡초처럼 역경에도 두려움 없이 낮고 푸르고 강하게 자라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삶에 스며들어가고 있다. 어느 수행보다 더 큰 수행은 삶의 노동이었다.
“여보, 오늘은 꽃다지로 화전 좀 부쳐 볼까요?”
포근한 아내 권씨의 말에 고 시인의 얼굴에 야생화 같은 미소가 번진다.


원주/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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