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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욱 전 한미연합사령관 통역관을 만나다

 
이규정 2015. 06. 19
조회수 113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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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동맹이 올해로 62주년을 맞았다. 한미관계는 기본적으로 상호협력의 관계지만 때로는 치열한 군사외교의 무대이기도 하다. 국가를 대표해 발언하는 대통령, 외교관, 장군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들의 말을 즉각 다른 언어로 바꾸는 통역관의 임무는 그래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김장욱 성신여대 초빙교수는 2002년부터 2011년7월까지, 9년 가까이 한미연합사령관과 주한미군사령관 전속통역관으로 일한, 베테랑 통역관이다. 2011년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 통역관을 끝으로 군사통역관을 그만둔 김 교수는 2012년부터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학에서도 그가 여전히 몰두하고 있는 대상은 영어, 외교무대에서의 수사학이다. 그는 매일같이 유수의 정치인, 장군들의 연설문을 분석하며 이를 수업교재로 활용하기도 한다. 2012년부터 <디펜스21플러스>에 <연설문으로 배우는 외교영어>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9년간 한·미 동맹의 생생한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고 생각되는데 어떤 연유로 통역관으로 군복무를 하게 되었고 한미연합사 사령관 전속 통역관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익숙했다. 1살부터 9살까지 미국 뉴욕과 마이애미에서 살았는데 아버지께서 집에서 영어를 쓰게 하셨다. 한국에서 나온 영어교재 거의 모든 걸 집에 가져다 놓고 그걸 보고 영어로 말을 했기 때문에 익숙했다. 한국에 와서도 영어를 꾸준히 했고 그러다보니 통역장교를 지원하게 된 것이다. 공군학사장교로 군복무를 했는데 이 때 통역장교로 지원해 3년간 공군에서 통역장교로 일하게 됐다. 
  1998년 공군 통역장교로 시작해서 2011년까지 총 12년을 통역관으로 일한 셈이다.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을 20회 정도 참가했고 미국 국방장관, 미 합참의장 등이 방한했을 때 통역도 맡았다. 연합사령관 전속 통역관이 된 계기는 이렇다. 2002년 전에는 연합 부사령관실에 통역장교가 있었고 연합사령관은 이 통역장교를 빌려 쓰곤 했다. 연합 부사령관과 그 통역장교는 한국군 소속이었기 때문에 사령관 입장에서는 불편함을 겪을 때가 있었던 모양이다. 2002년에 토머스 슈와츠코프(Thomas A. Schwartz) 장군이 자기 전속 통역관을 둬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당시 나의 신분은 현지 채용 군속 즉, 한국 군무원이 아니라 미국 군무원 소속이었다. 연합사령관 통역관이 되기 직전 나는 미국 회사에 취직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미국에서 마케팅 업무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미국 MBA 출신이 더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역관 일이 정말 좋았고 잘 할 자신도 있었다.

 

 -총 4명의 연합사령관 전속 통역관이었는데 슈와츠코프, 라포트, 벨, 그리고 샤프 사령관이다. 통역관으로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모습은 남다른게 있었을텐데..  
  =슈와츠코프 장군은 ‘칭찬의 달인’이다. 그 분은 말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 줄 아는 분이다. 본인은 큰 틀을 짜고 세부적인 것들은 참모들이 많이 했다. 라포트 사령관은 정말 인간적이었던 분이다. 한국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저와 따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어를 공부했다. 리언 라포트(Leon J. LaPorte) 사령관이 계실 때는 한국에 엄청난 반미시위가 있었다. 2002년 미군 장갑차가 여중생 2명을 압사한 사건 때문이었다. 라포트 사령관은 진심으로 가슴 아파했고 잠도 못 잤다. 눈이 빨갛게 충혈 된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라포트 사령관은 개인적으로도 슬퍼하고 사령관으로서도 애석해했다. 그때 라포트 사령관이 미군기지 내 성당에서 추모 미사에서 공개적으로 ‘remorse’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어로 하면 ‘애도를 표하다’ 정도인데. 미국식 문화에서 ‘remorse’는 최고의 사죄의 표현이다. 
 버웰 벨(Burwell B. Bell III) 사령관은 전형적인 전사(warrior)다. 2007년 버웰 벨 사령관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이 예산 혹은 정치적 이유로 중단되면 '여기에 맞서 싸우겠다(I'll fight this)'라는 발언을 했다. 그만큼 거침없었다.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사령관은 침착하고 뛰어난 전략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월터 샤프 사령관 재임 기간에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다. 특히 연평도 포격 사건 때 긴장감은 어마어마했다. 저로서는 정말 두렵기도 하고 무서웠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샤프 사령관은 평정심을 유지한 채 수시로 상황을 보고 받았다. 연합사령관 네 분을 9년 가까이 모시면서 리더십에 대한 엄청난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리더십, 비전, 그리고 전략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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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사령관 통역관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 사이에서 통역 중인 김장욱 교수

 

  -한・미 양쪽을 두루 보셨던 것 같다. 한미 양국 사이에 문화적인 차이를 느꼈던 적은 없었나? 이를테면 우리는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미국사람들은 직설적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게 어떤 면에서는 오해다. 국익이 걸려있는 문제를 두고 논하는 자리에서 돌려서 말하는 한국 사람은 없다. 통역 할 때마다 저는 우리 주권이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 특별히 문화적 차이를 느꼈던 것은 없었다. 
  우리 쪽 군인들이나 외교관들도 호통칠 때는 호통 쳤다. 국방부에 파견 나온 한 외교관이 인상 깊었다. SPC(Security Policy Initiative) 미팅을 하고 있는데 그 외교관이 해병대 장군에게 호통을 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위직에 있는 합창의장, 장관들도 팽팽하게 할 얘기 다 한다. 
  또 미군들이 한국의 정서를 상당히 고려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분향식에 가기 전에 사령관들은 어떻게 예를 표해야 하는 지 물어보고, 유가족들에게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통역관의 업무가 단순히 언어에 국한되는 것 같지 않은데 통역관은 어떤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하며 언어 이외에 어떤 것에 통달해야 하는가?

 =우선 통역을 좋아해야한다. “죽음 아니면 통역을 달라” 정도여야 한다.(웃음) 그리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통역관이 사령관 계급장을 달면 안 된다. 간혹 통역관이 자신이 장군의 계급인 것처럼 느낄 수가 있다. 이를 경계하고 항상 겸손해야한다. 
  또 통역관은 자기 앞에서 진행되는 일을 꿰고 있어야 한다. 사안에 대한 이해 없이 통역을 하게 되면 말 그대로 ‘외계어’가 될 뿐이다. 그래서 통역관으로 있을 때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종이에 써 있는 거는 다 읽었다. 공군 통역 장교 처음할 때, 연합사 와서도 그렇고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읽었다. 
  전방의 어떤 고지에서 통역을 하는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부사령관이 제게 호통을 쳤는데 고지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그때 부사령관에게 ‘작전요무령’이라는 책을 받았다. 거의 그 책을 외우다시피 했다. 
  실수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한번은 이런 적도 있다. 사령관이 애국가 가사를 보고 싶다고 요청한 적이 있다. 너무 긴박할 때라 제가 급하게 2절까지만 번역된 애국가를 찾아서 사령관에게 들고 갔다. 보고하기 마지막 순간에 보니까 애국가가 아니라 북한 국가였다. 
  사령관이 연설에 애국가를 인용하려고 찾아오라고 한 거였는데 만약 내가 그대로 건냈다면 대형사고가 될 뻔했다. 북한 국가인 줄 알자마자 도망쳐 나왔다. 통역관으로서 크게 실수한 적은 없지만 할 뻔한 적은 있다. 그 뒤로 꼼꼼하게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또 중요한 건 체력과 집중력이다. 회의 중에 집중력이 흐려지면 그런 망신이 없다. 또 사령관의 스케쥴을 따라가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소모가 크다.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UFG), 독수리 훈련(Foul Eagle), 키리졸브 훈련(KR)할 때는 1~2주를 꼬박 밤을 샌다. 보통 2월 말 ,8 월말에 훈련이 있는데 훈련이 끝나고 나면 계절이 바뀌어 있다. 지금도 야전의 퀘퀘한 곰팡이 냄새를 잊지 못한다. 2월 말, 8월 말 되면 뭔가 훈련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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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을 잘하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로버트 케네디 미 대통령

 

  -통역관으로 12년을 거쳐 4년째 학교에서 가르치며 본지에 <연설문으로 배우는 외교영어>를 연재하고 있다. 수많은 연설문을 보셨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연설가가 있는가? 또 외교영어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디펜스21플러스>에 실을 연설문은 최근 이슈를 담고 있는 것으로 고른다. 또 너무 미국 연설문에만 편중되지 않게 아시아권 연설문도 찾아본다.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는 수사학적인 분석을 하니까 <디펜스21플러스>에 기사로 나가는 연설문을 고를 때의 관점과는 다르다. 
  요즘은 2차 대전 전승일을 기념해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수전 라이스 전 국무장관, 존 케리 국무장관 등의 관련 연설문을 분석하고 있다. 
  연설을 잘 하는 정치인을 꼽자면 미국은 단연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이다.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이들은 정말 공감대 형성을 잘한다. 또 이야기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다. 말로 길을 가는 과정을 설명한다고 가정해보자. 굽은 길, 돌부리 등에 대해 실감나게 묘사를 한다. 노 대통령은 가슴에 와 닿는 연설을 잘 하는 것 같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건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 신인 시절 때 한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지 연설이다. 그때도 잘했지만 대통령 8년 차인 지금 오바마 대통령은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수사학’이다. 즉석에서 어떤 말을 해도 고급스러운 수사학이 나온다. 
 국방 관련 연설문은 수업시간에 많이 쓴다. 군인들은 형식과 의식을 굉장히 중요시 한다. 그리고 애국심, 결의 이런 표현이 다양하다. 지휘관 이임사 같은 경우도 그냥 흘려 볼 게 아니다. 이임사에는 지휘관이 사령부에 쏟았던 애정, 부하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이런 연설문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레 안보의식을 습득할 수 있다고 본다.

-외교 국방 그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분야에서의 통역이라는 게 단순히 영어만 잘해서는 통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나는 다시 태어나도 30대에는 통역관을 하고 40대에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 군대에서는 리더십과 대인관계를 배웠다. 그런데 왜 그만뒀냐면 사실 어떤 면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졌었기 때문이다. 전역하기 몇 달 전 미국에서 최고위층 인사가 북한도발과 관련된 내용을 상의하러 온 적이 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제가 그만 졸고 말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면서 통역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지금은 그래서 후학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합동참모대학에서 4년째 강의하고 있다. 군에서 배웠던 지식을 나누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더 큰 무대에서 후배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이규정 디펜스21+ 기자 okeygu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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