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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간 한 푼 안 주더니…‘반토막’ 예산으로 세월호 진상규명 무력화

 

정부, 특조위에 ‘깜깜이’로 일관…국무회의선 ‘즉석 안건’ 처리

최명규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08-04 22:35:04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예산을 결국 '반토막' 냈다. 지난 5월 진상규명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의 시행령을 강행 처리하면서 특조위의 발목을 잡더니 이제는 예산까지 대폭 삭감해 버린 것이다. 특조위와의 협의는 전혀 없었다.


특조위 예산 160억원→89억원 '반토막'
항목별 삭감률 최대 89%…'세월호참사 조사' 비용도 '3분의 1'로 줄어

기획재정부는 4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 특조위 운영비 등 지급을 위한 '2015년도 일반회계 일반예비비 지출안'을 '즉석 안건'으로 올렸다. 특조위가 청구했던 160억원 규모에서 89억원 정도로 절반 가까이 삭감된 상태였다. 이 예산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최종 확정됐다.

특조위에 따르면 '기관운영비'는 약 114억원에서 75억원 규모로 34%가 줄었다.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직원들이 현장조사를 나갈 경우 지급될 '여비'이다. 특조위는 8억2천만원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약 1억원을 편성했다. 무려 87%가 삭감된 액수이다.

이와 관련해 특조위의 한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기재부에서 시종일관 하는 얘기는 직원들이 안에서 일하면 되는 거지 밖에 나가서 뭘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월급은 줄 테니 가만히 앉아서 일하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월호참사 조사' 등과 관련된 사업비도 특조위가 요구했던 45억8천만원에서 14억2천만원으로 줄었다. 무려 69%가 삭감된 액수로 당초 요구액의 불과 3분의 1 수준이다.

세부 항목 별로 삭감률을 보면 진상규명 분야와 관련해 △참사실태조사·연구 84%(3억2천만원→5천만원) △진상규명실지조사 68%(13억4천만원→4억3천만원) △청문회 및 감정·검증실시 59%(3억1천만원→1억3천만원) 등으로 나타났다.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인 권영빈 상임위원은 "연구비가 대폭 삭감된 것으로 봐서는 과학적 조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전사회 건설 및 피해자 지원 분야와 관련해서도 △안전사회건설 종합대책수립 83%(6억8천만원→1억2천만원) △피해자지원대책점검 55%(8억1천만원→3억6천만원) △자료기록관 설치·운영 89%(5억8천만원→6천만원) 등 큰 폭의 삭감률을 보였다. 안전사회 대책 관련 예산이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깎인 데 대해 안전사회소위원장인 박종운 상임위원은 "이렇게까지 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해상사고만 다루라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요구했던 예산안과 정부의 조정안 비교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요구했던 예산안과 정부의 조정안 비교ⓒ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정부, 특조위 정상적 활동 방해…진상조사 무력화"

특조위는 이번 예산안에 대한 공식입장을 통해 "기재부의 예산 삭감으로 특조위 활동이 현격하게 제한됐다"며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현장조사가 필수적인데도 불구하고 여비를 87% 삭감한 것은 참사 현장에는 가지 말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정부자료나 검토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특조위는 또한 "진상규명을 위해 동원해야 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기법을 활용할 수 없게 됐다"며 "정밀과학조사, 디지털 포렌식 조사 등의 예산이 3분의 1로 줄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는 그냥 감사원, 해양안전심판원, 검찰의 조사 결과를 되풀이하라는 것으로 보인다"고 성토했다.

특조위는 "정부가 예산을 볼모로 특조위의 발목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게 만든 것"이라며 "예산 삭감을 통해 특조위 활동에 방해가 된 정부의 모습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성명을 통해 "사실상 특조위의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겠다는 것"이라며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특조위의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정의철 기자

7개월간 예산 한 푼 지급 안해…여권의 "돈잔치" 비난 맞춰 '반토막'

정부는 지난 1월 1일 '세월호 특별법'(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7월까지 특조위에 예산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특별법 시행령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정부가 강행 처리한 시행령이 5월 11일 공포된 뒤에는 특조위 인원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특조위는 사업비 자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석태 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들과 민간 직원들은 7개월간 월급 한 푼 못 받고 근무했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료를 못 내 공단 측에서 독촉 전화를 받는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사 보증금이나 차량 렌트비, 활동 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해 외상, 후불, 개인 카드 등 갖가지 수단이 동원되기도 했다.

이처럼 예산에 발목이 잡혀 있던 특조위는 지난 7월 21일 일종의 '고육지책'을 택한다. 정부 시행령에서 가장 문제가 돼 왔던 행정지원실장, 기획행정담당관, 조사1과장 등 파견 공무원을 받겠다며 한 발 물러선 것이다. 특조위는 이 같은 입장을 밝히며 조속한 예산 확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후 보수언론과 여권을 중심으로 특조위 예산에 대한 공세가 쏟아졌다. 특조위 예산안은 정부의 '공무원 보수 규정'과 '2015년 예산안 편성 지침'에 따라 작성됐음에도 <조선일보>는 '생일 케이크 값' 등 사실과 거리가 먼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해 흠집내기에 나섰다. '친박'(친박근혜) 핵심인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도 "돈 잔치"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는 지난 1월 논란을 빚었던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청와대 정무특보)의 특조위를 향한 "세금 도둑" 비난의 연장선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반토막' 난 예산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정의철 기자


특조위와 협의도 없이 '깜깜이' 일관하다 '즉석 안건' 처리

정부는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당사자인 특조위와의 협의도 없이 '깜깜이'로 일관했다. 특조위 측은 예산안이 국무회의에 상정되기 전날까지도 정부가 확정한 예산 액수 및 내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특조위 관계자는 "전날까지도 정부가 얼마를 편성했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조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항상 특조위와 전혀 협의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특조위를 제대로 대접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예산 관련해 그렇게 많이 떠들고 외부 언론을 통해 공격을 하면서도 특조위에 직접 케이크 값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등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기재부 관계자는 "중간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특조위와 협의를 하려고 했는데, 기간이 부족했다"며 "특조위에 와서 얘기를 좀 하자고 했는데 협의는 안 됐다. 만남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깜깜이' 전략은 국회를 상대로도 마찬가지였다. 박원석 의원은 "(기재부는) 예산안 확정 관련 사항을 묻는 국회의원의 공식 질의에 철저히 비공개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예산안 안건 처리 자체 역시 비정상적이었다. 국무회의 전날까지만 해도 특조위 관련 예산안은 안건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차관회의도 거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재부는 예산안을 4일 국무회의에 '즉석 안건'으로 상정했고, 이는 신속하게 처리됐다. 이와 관련해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과 맞물려 8월 4일까지 예비비를 지급하도록 돼 있었다"며 "물리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바로 상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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