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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D-19, 50년 지기 남재희의 김종인 ‘대해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3/27 10:24
  • 수정일
    2016/03/27 10:2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근혜의 원조 경제 스승에서 제1야당 대표까지

제1105호
 
2016.03.25
등록 : 2016-03-25 18:06 수정 : 2016-03-2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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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한겨레

김종인(76)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70대의 나이로 정치권의 ‘젊은 피’ 노릇을 해왔다.

2011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꾸린 비상대책위원회에 박근혜 당시 의원을 대표로 앞세우고 외부 인사들을 수혈했다. 새누리당 현역 의원 비서의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연루와 서울시장 선거 완패 등 악재가 겹친 때였다.

이 무렵 한나라당이 단행한 가장 파격적 인사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영입이었다. 그가 당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히 비판해온 재벌 개혁론자였기에 그랬다.

경제민주화를 주창해온 그의 영입을 놓고 중도층을 겨냥한 한나라당의 단순 선거 전략이라는 냉소와 당의 정책적 쇄신 시도라는 기대가 엇갈렸다. 그 뒤 박근혜 경선캠프 선거대책위원장,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서 대선 경제 공약에 관여했지만 박 대통령 및 새누리당과의 불협화음은 끝내 결별로 이어졌다. 박 대통령에게 선거용으로만 쓰이고 버려졌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리고 2016년 ‘안철수 분당’ 사태로 총선을 앞두고 위기를 맞은 더불어민주당이 김 전 수석을 수혈했다. 이번엔 선거대책위원장 겸 비대위 대표다. 아예 당권을 그에게 맡겼다.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쇄신하려는 목적이라고 더민주당은 밝혔다.

그러나 최근 총선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김 대표와의 결별 문턱에서 겨우 수습됐다. 당 정체성 논란은 봉합됐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위태로운 이방인의 길을 걷고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한겨레


4년 전 새누리당에 합류한 김 대표가 당 안팎의 장벽에 가로막힐 조짐이 보일 무렵, 그의 오랜 지기인 남재희(82) 전 노동부 장관은 그에게 ‘명예 예편’을 권고한 적이 있다.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남 전 장관은 “이 기회에 김 박사가 구상하는 경제민주화의 전모를 국민들에게 모두 밝히고 지금 자리를 훌훌 떠나는 것이 보기에 후련할 것이다. 나머지는 국민이 선택할 몫이다”라고 했다.

4년 뒤 김 대표는 정반대편인 더민주당의 맨 앞에 서 있다. 남 전 장관은 대담집 <문제는 리더다>(2010)에서 “(2007년) 대선에서 크게 지고 지금 진흙탕에 빠져 있다. 이게 그렇게 쉽게 극복되지 않을 거다. 정권을 잃고 정신 차리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린다”고 더민주당의 앞날을 내다봤다.

그는 지금 김 대표의 행보와 더민주당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3월23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식당에서 남 전 장관을 만났다. 같은 시각, 김 대표는 사퇴설을 물리치고 ‘당 잔류’를 선언했다. 김 대표와 남 전 장관의 인연은 5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대표와의 인연

김 대표와 1963년부터 친분을 쌓아왔다고 들었다.

그때 난 <조선일보> 민정(民政)당 출입기자였다. 김 대표의 할아버지인 가인 김병로 선생이 민정당 대표 최고위원이었는데, 몸이 불편해 최고위원회 회의를 밤낮으로 서울 중구 인현동 자택에서 했다. 김 대표가 사실상 혼자 할아버지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때부터 친해졌다.

김병로는 일제강점기 변호사로서 6·10 만세운동 등 항일운동 참가자에 대한 무료변론을 맡았고 1948년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5·16 쿠데타 세력 중심의 여당에 맞서 1963년 76살의 나이로 범야 단일정당을 추구한 민정당(民政黨, 훗날의 민정당(民正黨)과 다르다)의 대표 최고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할아버지인 김병로를 꼽는다.

국회의원 활동 시기도 겹친다. 김 대표는 어떤 국회의원이었나.

김 대표와 민정(民正)당과 국회에서 같이 활동했다. 김 대표에겐 독일 유학의 영향이 좋았던 것 같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것이 김 대표의 경제관과 정치관의 바탕을 이룬 것 같다. 당시 서독 경제담당 장관을 했다가 총리까지 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이 김 대표가 주장하는 경제민주화 정책의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김 대표는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할아버지 밑에서 비서로 ‘정치 수업’을 받은 뒤 독일 유학을 떠났다. 그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독일 뮌스터대학은 김수환 추기경이 신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송두율 교수가 철학을 강의한 대학이다.

김 대표는 저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에서 에르하르트에 대해 “오늘날 독일과 독일 국민이 누리는 부와 번영의 기초는 ‘라인강의 기적’의 아버지이자 설계자인 에르하르트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에르하르트의 정책은 “독일식 신자유주의로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정부가 해야 한다는 논리의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system)에 바탕을 둔 것”이다. 1959년 에르하르트가 주도한 경제정책의 성공으로 보수 정당인 기독민주연합(CDU)은 단독집권에 성공했다.

김 대표를 ‘지적 동료’ 또는 ‘경제이론의 멘토’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김 대표와 얘기를 해보면 정치이론과 경제이론에서 생각이 많이 같다. 그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에 대한 생각도 같고 이견이 별로 없다. 하지만 더민주당 대표를 맡고 난 다음엔 이런 게 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대표의 최근 행보

어떤 점이 다른가.

김 대표가 ‘북한궤멸론’을 언급했는데 일반 국민이 볼 때 속 시원한 얘기일 수 있지만, 집권을 목표로 하는 당의 대표는 언행이 조심스러워야 한다. 북한이 아무리 실패한 체제라 하더라도 그 체제가 궤멸 또는 경착륙하면 북한 백성한테도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지만 남한 국민한테도 그 불똥이 튄다. 정치를 책임지는 입장에선 이걸 연착륙시켜서 쌍방의 희생을 줄이는 가운데 변화를 가져오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는 한두 마디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국·중국·러시아와의 국제관계도 그렇다. 김 대표가 ‘궤멸’의 주체를 떠나서 북한에 대해 ‘궤멸’이란 표현을 쓴 것은 거대 야당 대표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관훈클럽 토론회가 끝난 뒤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김 대표에게 이건 문제가 있다고 직접 얘기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2월9일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이후 한 방송사에 출연해 “(북한 정권이) 국민들의 실생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계속해서 미사일이나 핵개발 같은 데에 모든 자원을 투자하게 될 것 같으면 결국 가서 종국에 가서는 소련과 같은 그런 (붕괴)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있다고 느낀 또 다른 점이 있나.

언론을 통해 접한 바로는, 김 대표가 민주노총에 가서 사회문제에 집착하면 노동운동이 잘못된다는 얘기를 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이랑 야권에서 거부반응을 보였다. 여러 얘기를 하는 중에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실제 사회문제에 너무 관심을 집중하다보면, 노동운동이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돼 있고 정권이 민주노총을 핍박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할 건 아니지 않은가.

김 대표는 3월7일 민주노총을 방문해 “우리나라는 어디까지가 노조 활동의 한계인가 하는 점이 별로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실질적인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지, 전반적인 사회문제까지 넓혀 활동하는지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고 했다.

그는 “노사관계가 원활한 나라를 보면 노조의 기본적 목표는 근로자 권익 향상에 집중돼 있다. 기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선 간혹 관심을 둘 때도 있지만, 거기에 집착하면 근로자의 권익 보호는 소외된다”고 지적했다. 당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혐의(집시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상태였다.

정의당과의 협조 문제도 문재인 전 대표는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는데, 김종인 대표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당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를 댔는데, 당 정체성이 같으면 합당할 일이고 당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협조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지난 대선 투표에서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근소한 표차로 당락이 결정됐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 진영에선 정당 간 협조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제1야당이 제2, 제3 야당한테 무조건 협조하라고 할 순 없고, 총선에서부터 협조관계가 병행돼야 한다. 대선 때는 무슨 명분으로 협조를 구할지 궁금하다. 문 전 대표는 군소 정당과의 협조 문제에 상당히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정의당과의 협조 문제에 부정적 발언을 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원칙론으론 그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김 대표는 3월16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정의당과의 연대 문제에 대해 “정의당과의 연대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정체성이 다른 정당이 연대하는 것이 쉽게 이뤄질 수 없고 일반 국민들도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더민주는 3월23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정진후 원내대표 지역구에도 후보자를 공천했다. 앞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정의당, 국민의당에 지속적으로 연대를 공식 제안한 바 있다.

정의당과의 연대 문제에 대해 김 대표가 문 전 대표와 다른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그건 아마 대선을 겪어본 사람과 대선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김 대표도 총선 이후 대선까지 바라보고 있는 듯 한데.

자신이 직접 후보로 나가는 것과 다르다. 난 김 대표가 대선까지 더민주당을 일정 부분 책임지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대선 후보로 나갈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문 전 대표는 대선 후보로서 선거를 치러봤으니 선거에서 1∼2%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할 것이다.

 

김 대표의 비례대표 공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한겨레

당내외에선 김 대표의 필리버스터 중단과 비례대표 2번 ‘셀프공천’을 두고 비판이 거셌다.

그 두 가지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충분히 했고 효과도 충분히 거뒀다고 생각한다. 당시 선거법 통과가 안 되면 선거를 못 치를 상황에서 중단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고 본다.

당수가 2번에 셀프공천을 한 건 이해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본다. 진두지휘할 사람이 몇 번에 가면 어떠냐. 2번에 가면 상징적 효과가 있는 것이고, 예전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아슬아슬한 번호에 가서 득표율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효과가 있는 것이다. 둘 다 일리가 있는 것이라 난 이의가 없다. 다만 전체 비례대표 공천이 잘됐냐는 건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면 김 대표의 비례대표 공천은 뭐가 문제라고 보나.

친노와 운동권에 대한 일방적 공격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친노가 죄를 졌나? 친노를 죄인 취급하는 보수언론의 보도 태도부터 문제가 있다. 그런 태도가 상식화돼 야당이나 김 대표한테까지 암암리에 침투한 게 아닌가 싶다.

친노가 패권적 행태를 보이는 건 문제가 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를 같이 한 게 왜 문제가 되나. 한명숙 전 총리가 당권을 쥐고 공천했을 땐 친노 패권적 행태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비판받아야 하지만 친노라고 무조건 매도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운동권 출신이라고 매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운동권적 행태는 지금 시대에 안 맞지만 운동권 출신이란 점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민주화운동을 한 게 왜 죄냐, 칭찬을 받아야지.

이런 것들이 혼동돼서 아무런 논리성도 없이 친노와 운동권을 배제하는 움직임이 이번 공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보수언론과 보수층이 만든 이상한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야권을 지배한 결과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더민주 중앙위원회의 항의가 있을 만했다. 오히려 대체적으로 김 대표가 잘못 짠 명단이 시정된 것이라고 본다.

김 대표는 지난 1월17일 언론 인터뷰에서 당내의 친노 패권주의와 낡은 이념·운동권 정치의 청산을 공언한 바 있다. 김 대표의 더민주는 총선 공천에서 이해찬·이미경 의원 등 친노 성향 의원들을 배제하고 박경미·최운열 교수 등 전문가 그룹을 비례대표 후보로 올렸다. 이에 중앙위는 반발했고 결과적으로 중앙위 투표를 통해 애초의 명단이 일부 수정됐다.

보수언론들은 이를 두고 김 대표와 친노세력의 권력투쟁으로 묘사했다. 김 대표가 친노세력이나 운동권 자체에 선을 긋고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김 대표는 또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흠결도 없는데 친노라고 무조건 교체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안 맞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종인의 중도화

김 대표 영입부터 이번 공천까지 더민주의 움직임을 이른바 ‘중도화’라고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평가한다면.

가령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중도는 애초에 방향이 잘못됐다고 본다. 안 대표는 개인적 인기로 자신을 앞지를 사람이 없으니까 정책적으로 새누리당과 야당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중간 정도를 하고 양쪽 표를 적당히 모으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건 대선 전략으로서 중도를 내세운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선 전략이 아닌 정책적 중도화란 건 애매한 얘기다. 나는 우리 현실에 대담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대기업과 그 산하 기업들 말고는 중산층 이하들은 죽을 맛이다. 대담한 개혁이 필요한데 여기에 뜨뜻미지근한 중도 어쩌고 하는 건 아무것도 안 하겠단 말이다.

하다못해 복지정책도 증세할 건 해야 복지를 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도 정책으로는 엄청나게 많고 교육, 의료, 노동 등 각 분야에 개혁할 데가 많다. 예를 들어 지금 정부의 노동개혁은 쉽게 말하면 노동계층을 더 쥐어짜고 기업에 더 이윤을 남겨주자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뜨뜻미지근하게 중도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중도화는 안 대표의 단순한 선거 전략이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더민주의 경우엔 어떤가.

비례대표의 인적 구성에서 더민주가 전 공군참모총장을 넣은 건 안보 분야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지만, 수학교육과 교수를 1번에 놓은 건 어떤 이유와 정당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앞서 말한 친노나 운동권들을 배제하고 가는 건 보수화나 중도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비례대표 명단엔 경제민주화가 잘 보이지 않는 면도 있다.

다만 똑같은 정강·정책을 갖고 있더라도 선거 때는 부동층과 중도층을 흡수하기 위해서 약간 탈선을 한다. 원칙적으로 이 나라엔 엄청난 개혁이 필요한 때지만, 선거 때 득표 전략상 약간의 중도화 컬러를 내세울 필요성은 정당들의 항시적인 이해였다. 어떤 게 본질이냐는 조금 더 선거가 진행되면서 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예상치 못했던 김 대표의 최근 중도화적 발언들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의 경제민주화 구상

김 대표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신조가 야당의 정책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김 대표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에 대한 연구가 깊다. 아주 깊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뒤에도 근래까지 매해 몇 달씩 독일에 가서 연구한다. 김 대표가 독일 모델에서 따오는 정책들은 야당으로선 참고와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다만 정책은 현실과 타협을 어느 정도 할 수밖에 없다. 김 대표의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에서도 얼핏 드러나듯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우려처럼 ‘노동 없는 경제민주화’로 가면 곤란하다. 너무 타협해서 경제민주화에 알맹이가 빠져버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앞으로 두고 볼 문제다.

김 대표는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에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든 해소해야 한다. 거대 경제세력이 돈을 벌어 그중 일부를 기부하는 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경제민주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거대 경제세력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재벌개혁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과 남북한 문제까지 아우르는 과제여야 한다.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고 이를 뒷받침할 인력이 필요하다”고 썼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칼럼 ‘‘바닥을 향한 질주’를 되돌릴 수 있을까?’(<한겨레> 3월23일치)에서 “국내외의 극히 절박하고 시급한 의제가 토론은커녕 거론조차 되지 않는 이런 선거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다. 중도당으로 변신한 더민주가 총선에서 선방을 한들 그게 과연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까? 김종인의 ‘노동’이 빠진 경제민주화, ‘북한궤멸론’은 완전히 70년대 식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 대표가 더민주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실제 구현할 수 있을까.

김 대표가 예전 보건사회부 장관(1989년)과 청와대 경제수석(1990년)은 했지만 나라 경제를 거머쥐는 재무부 장관이나 경제부총리를 못했다. 보건사회부 장관은 경제 주무 장관이 아니고, 경제수석은 참모다. 아마도 경제관료의 주류가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유학 코스를 밟은 이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 대표는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다녀왔는데 그런 점에서 소수파 중에 소수파다. 경제관료들이 관료주의가 유난히 강해서 그걸 휘어잡기가 어렵다. 김 대표가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데 그런 점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반면 경제관료를 평생 한 이들을 보면 대개 재벌과 유착관계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 김 대표는 재벌과의 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것이다. 미국 유학파가 아니기 때문에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거다. 그런 비판적 인식과 안목의 차원에서 강점이 있다.

먼 얘기지만 김 대표가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더민주당이 집권한다면 그의 구상은 실현 가능할까.

어려운 문제다. 가령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실장을 했던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실토한 내용을 보면 경제관료들이 전부 재벌과 연계돼 있어서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노무현 정부도 삼성과의 유착관계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장담할 순 없지만 김 대표가 재벌과의 유착이 비교적 없고 금융자본으로부터 비교적 독립적인 점 때문에 조금은 낫겠다고 보는 거다. 정책을 실현할 때 선택지의 폭이 아주 좁다는 전제를 인식해야 한다. 복지를 하려면 증세를 해야지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증세를 하면 조세 저항이 있고, 법인세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는 것이 자본이 해외로 도피할 수 있기 때문이어서, 더더욱 폭이 좁다. 예를 들면 세금 인상의 폭을 갑자기 늘리긴 어려운 문제란 얘기다.

다만 김 대표의 평생을 보면 독일적 체질에 익숙한 사람이어서 미국적 체질에 익숙한 사람보다는 그래도 경제민주화에 진실되고, 이른바 독일 모델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점에 이른바 개런티(보증)가 되는 거다. 어느 사람이 갑자기 경제민주화나 복지사회를 떠드는 것보다 그의 평생 경력이 개런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서강대 교수 시절 박정희 대통령 재임 때 자문교수단에서 의료보험제도 도입(1977년)을 자신이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헌법 제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도 김 대표가 처음 제안했다. 그때 나도 같은 당에서 헌법개정위원으로 있었지만 그 조항은 김 대표가 제안했다. 그런 일들을 보면 김 대표는 소신 있고 일관성이 있다. 이제 76살이니 변절하진 않을 거라고 본다. 그 일관성은 믿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행동파다. 김 대표한테 직접 들은 얘기지만, 김 대표가 독일 유학 시절 신나치패들의 강연회에 갔다. 김 대표가 단상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뺐고 강연회를 방해했다고 한다. 한국도 아니고 남의 나라 독일에서 그랬다. 열혈 청년이란 얘기다. 그만큼 행동파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2012년 10월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참여정부의 실수로 재벌개혁 실패, 비정규직 양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꼽았다. 그는 개혁 실패의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의외로 정권의 핵심에 개혁 인사가 많이 들어가지를 못했다. …기득권층이 아주 두텁고 힘이 세다. …외부에서 들어간 개혁파가 적다보니 주로 정책,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것은 경제관료들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새누리당 김용갑 상임고문은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 “(1987년 개헌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을 헌법에 명시한 데 대해) “김 대표가 경제민주화에 대해 마치 자신이 저작권자처럼 얘기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당시 민정당에서 경제민주화를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남재희 정책위의장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남 전 장관은 해당 조항은 김 대표가 입안해 삽입한 조항이라고 수차례 언급해왔다.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새누리당이든 더민주든 집권당이 실질적인 경제민주화 구상을 실현하려면 어떤 조건이 뒷받침돼야 하나.

나는 앞으로 국민의 저항이 강화될 거라고 본다. 어떤 형식으로 되느냐 예측할 순 없다. 꼭 폭동이 일어난다는 게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SNS에서 설왕설래하는 글에서도 나타날 수 있고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청년실업을 비롯해 빈곤과 실업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저항이 어떤 형태로든 삐져나오면 집권당이 어느 당이 됐든 그에 대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넓은 의미에서 경제민주화나 독일 모델로의 전환, 또는 버니 샌더스가 말하는 방향의 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더민주가 집권한다면 그런 상황에서 김 대표가 역할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다만 김 대표가, 득표 전략인 줄은 모르겠지만, 벌써 조금 보수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김 대표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같은 이른바 ‘합리적 보수 인사’로 이름 붙일 수 있는 인물이 야권의 간판이나 핵심 참모 역할을 하게 된 배경은 뭐라고 보나.

이데올로기의 붕괴부터 시작하는 얘기다. 야권 이론의 바탕이 전부 흔들리는 맥락이 있고, 그러다보니 건전한 보수들의 얘기를 흡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야권의 색깔 자체가 희미해졌다.

같은 맥락에서 야당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의 이유는 뭐라고 보나.

여야 통틀어 대재벌과 미국의 손바닥 위에서 게임하고 있으니까 비슷비슷해지는 거다. 대기업 이해관계에 거스르지 않고 미국에 불리한 소리를 점차 안 한다. 결국 이슈가 별로 안 되는 시시한 문제로 싸운다. 결국 일반 서민들만 저리 동떨어져 있게 됐다.

 

진보정당의 중요성

진보정당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는데, 이유는 뭔가.

나도 정치를 오래 했고 정치를 관찰하다보니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 방법이 가장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법 없이는 백년하청이다.

원내교섭단체에 진보정당이 진출하면 그들 정책과 시대적 명제를 계속 이슈화할 수 있다. 원내교섭단체도 못 꾸리면 이슈화가 약하다. 현재 국민들 중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비중만 놓고 보면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표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하지만 1선거구 1인 선거제 때문에 그게 안 되고 있다. 비례대표가 국회의원의 절반만 돼도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할 수 있다. 그러면 모든 정책을 전국적으로 이슈화할 수 있다. 더민주당이 날고 뛰고 개혁한다고 해봐야 한계가 있다. 진보정당이 계속 문제를 제기해줘야 한다. 진보정당의 집권은 통일 전에는 생각지도 않지만 원내교섭단체는 최소한 꾸려야 정치 발전이 있을 거라고 본다.

김 대표가 구상하는 독일 모델 경제민주화도, 독일의 기독민주연합만 있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사회민주당과 연립하니 메르켈 총리와 최저임금 협상이 가능한 것이다. 강력한 사민당과 좌파정당이 있으니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그런 모델이 가능한 것이다. 한 사람만 뚱딴지같이 경제민주화를 얘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독일 사회민주당(SDU)은 대연정을 조건으로 집권당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연합(CDU)에 최저임금 도입을 주장해 관철했다. 지난해부터 독일의 모든 직종에서 시간당 8.5유로(약 1만1천원) 최저임금제를 처음 도입하기 시작했다.

 

총선 이후의 더민주

김 대표가 총선 이후에도 더민주를 이끌까.

현재 야당 내에 김 대표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안 보인다. 우선 총선까지로 본다. 총선이 끝나면 알 수 없는 것 같다. 총선까지는 가야 옳고 총선 이후 판도가 달라지니까 비대위 체제가 아닌 본격 체제로 탈바꿈하자는 얘기가 나올 거다. 더민주당에 격변이 일어날 거다. 김 대표 체제는 그대로 못 간다. 더민주당도 살아 있는 정당이라면 빌려온 리더가 아니라 자생적 리더의 형성 과정을 겪을 거 아닌가. 빌려온 리더로 만족한다면 그 당도 망하는 거다.

2007년 대선 이후 더민주당이 진흙탕에 빠졌고 그 상태가 꽤 오래갈 거라고 말한 적 있다. 더민주당은 어떻게 하면 진흙탕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까.

총선이 끝나면 신진 리더들이 좀 나타나서 각축전을 벌여야 한다. 두세 명의 새로운 리더가 파벌도 만들고 각축전을 벌일 때 정당이 생명력 있고 발전한다. 문 전 대표가 대선 후보를 따놓은 당상이 아니다. 문 전 대표와 대권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그래야 문 전 대표도 강화되고, 국민의 관심도 집중되고, 정책도 개발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정치권에서 유승민, 김부겸 같은 사람들이 소중하다. 유승민, 김부겸은 벌써 고지에 올라왔다. 유승민, 김부겸 같은 사람이 당선만 되면 당권 경쟁을 할 거다. 정당이 원래 패거리 아닌가. 패거리 싸움을 해야 한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유승민 의원에 대해 ‘싹수가 있다’고 표현했다. 어떤 맥락인가.

어느 당이든 당내에서 당의 권위에 습복만 하지 않고 거기에 도전하는 발언도 할 수 있는 인물이 나와야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크는 거 아닌가. 정치사로 볼 때 당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이 차세대 지도자가 됐다.

유진상이 신민당 당수로 있을 때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들고나왔다. 당시 기자들이 보기에도 생소하고 웃기고 까부는 얘기였다. 정당사를 보면 기성 권위에 대해 자기 의견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이긴다.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대통령 판박이만 나올 순 없는 거 아닌가. 더 개혁적인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지. 유승민 의원 하나 말고 더 없지 않나. 그런 사람이 더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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